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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두리를 아시나요?
울고 있는 사람아.
그대,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가.
눈물이란
지나온 생의 골짜기에서 솟아나는 샘물
과거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남의 슬픔에 주저앉아 울기에는
오늘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행복의 비밀은
무엇을 잃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얻었는가를 기억하는데 있다.
우리는 모두
지구별 여행자다.
나그네는
스쳐 지나갈 뿐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간직하지 말라.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간다.
리네트!
그제는 수시로 희끗희끗한 눈발이 흩날리더니 어제는 구름 한 점 없는 쨍한 하늘에 햇살이 고왔습니다. 연유를 알 수 없는 우울이 내 안에도 고스란히 스미어 많이 쓸쓸했던 어둔 밤을 지나 부신 햇살 속에 서니 새로이 받은 하루가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나는 까닭모를 슬픔이 내 안에 가득해지면 때때로 그 슬픔의 이면을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만남과 이별, 사랑과 미움 같은 것들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빛과 어둠처럼 개별적이지 않고 똑같은 질량과 무게로 공존하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느끼는 슬픔이나 우울, 허무 저 편에 똑같은 무게와 질량을 지닌 기쁨과 환희, 생생한 활력이 존재함을 생각합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게 마련이고 골이 깊으면 바람도 긴 법이니까요. 그런 의미로 많이 슬플 때는 그 슬픔만큼 큰 기쁨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을 믿고 내가 기쁨에 환호할 때 세상 어딘가에 소리내어 울고 있을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혹시 '옹두리'란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옹두리란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한 자리에 결이 맺혀 혹처럼 크게 튀어 나온 자국을 이르는 말입니다. 어제 저녁엔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다가 여기저기 가지를 잘리운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해에 강한 나무라 해서, 생명력이 강한 수종이라 해서, 거리를 지키고 선 플라타너스 가로수만큼 상처가 많은 나무도 다시 없지 싶습니다. 도로변의 플라타너스는 어느 것 할 것없이 크고 작은 혹을 셀 수 없을만큼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옹두리마다 상처의 순간과 고통의 기억들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하면 무심히 그 나무들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참혹하다 싶을만큼의 상처 투성이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바라보면서 내 안에도 존재할 수많은 옹두리를 헤아려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귀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는 동안 우두자국처럼 마음에도 결이 맺혀 옹두리가 되었을 상처의 기억들. 어쩌면 그 옹두리들이 때때로 나의 삶을 옥죄고 아프게 하는것은 아닌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크고 작은 옹두리들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아뜩한 현기증이 일기도 합니다.
산다는 것이 늘 아슬한 경계에 서는 일이긴 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론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견디는 게 생이라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 모든 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당연시 해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눅눅한 습기에 젖어듭니다.
잿빛 하늘 때문이었을거에요. 분명 난분분 날리는 눈발 때문이었을 거에요. 갑작스레 찾아든 우울, 나의 이야기가 자꾸 무거워지는 것도, 안팎의 경계가 흐려져 마음의 빗장이 헐거워서 창 밖의 습기가 내 안으로 스며서 그랬을 거에요.
분위기도 바꿀 겸 해서 그 플라타너스 옹두리를 보다가 생각난 흐뭇한 사랑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리는 것으로 오늘의 편지를 맺으려 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은 척추장애자였습니다. 속된 말로 꼽추였던게지요. 그 모세 멘델스존이 청년이 되었을 때 그의 앞에 프롬체라는 어여쁜 처녀가 나타납니다. 모세는 그녀를 보고 한 눈에 반해 버렸지만 척추장애자였던 그는 혼자 가슴앓이를 할 뿐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장애인이 정상인과 결혼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모세는 몇 번이나 그녀를 잊어보려 노력도 해봤지만 도무지 그녀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모세는 되든 안 되든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전하고 그녀의 결정을 받아 들이리라 생각하고는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프롬체, 당신은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다는 말을 믿나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세는 그 순간을 놓칠세라 얼른 이렇게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믿습니다. 어느 날 하늘이 내게 하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
\"하늘이 뭐라 했는데요?\"
\"하늘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야, 너는 이 다음에 커서 아주 이쁘고 현명한 신부를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곱추가 될 것이다. 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하느님께 간곡히 말했습니다. 나의 어여쁜 신부가 곱추가 되는 것만은 받아 들일 수가 없습니다. 정히 꼭 곱추를 만들어야 한다면 차라리 저를 곱추로 만들어 주십시오.하구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프롬체는 아무 말없이 모세의 뺨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세 멘델스존은 예쁘고 현명한 프롬체를 신부로 맞아 들이게 되었답니다. 사람이 나무보다 나은 게 있다면 자신이 지닌 상처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넘어서서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모세 멘델스존처럼 말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아픔을 견딘 후에 찾아오는 기쁨입니다.
댓글 4개
난 분분한 눈발 그리고 잿빛 하늘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누가 맞아서 상처가 날지도 모르는 돌맹이를 나만의 만족으로 던지는 오늘의 사람들의 언어의 환란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옹두리를 남기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잘 일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말 한 마디 건넬 때에도 꽃 한송이 전하듯 기쁜 마음으로 전한다면 그만큼 사람들의 가슴에 옹두리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미움과 원망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세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눈물이 참 많은 저였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그렇고 세상이 떠나가도록 울어본 적도 있었고 눈물은 쉬이 마르지 않았는데 지난 아픔들을 뒤로하고 지금은 때로는 눈물 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 될 수 있도록 살려고 한답니다. 누구나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들이 있을 거에요. 한때 저도 우울함에 빠져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우울하지만은 않네요.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했던가요. 전 정말 요즘은 너무나 하루하루가 참 즐겁습니다. 가끔 저도 모르게 어떤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아직 제 감성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것으로만 해석하고 다시 웃게 됩니다. 어떤 분은 날씨 때문에 왠지 모르게 우울하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러니 향기님들께서도 늘 좋은 생각, 좋은 하루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누군가에게 혹시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말을 가려서 해야겠지요. 오늘도 좋은 향기로 하루를 보낼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누군가는 눈물이 남아 있는 것은 아직 가슴속에 착한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눈물은 슬픔의 흔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탁한 마음을 정화시켜주기도 하지요. 하늘이 맑으면 맑아서 좋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날씨가 좋다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린 삼백 예순 날 좋은 날씨 속에 살 수 있습니다. 늘 좋은 생각으로 가득 차서 한껏 감성을 키우는 비꽃님이 부럽습니다. 오늘도 향기로운 날 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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