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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낮게 드리운 잿빛 하늘이 키를 낮추며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아침입니다.
거리에 서면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음을 일깨웁니다.
그리운 것은 등 뒤에 있다던 어느 시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자꾸만 뒤로 도는 고개를 어쩔 수 없는 것은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길어진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울수록 따뜻한 모닥불이 더욱 간절해지듯이 겨울나무처럼 쓸쓸해지는 마음 탓인지
요즘은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향나무처럼 사랑할 수 없었다'는 시인의 솔직한 고백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란 정의를 무색케합니다.
사랑 앞에서도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치부를 드러낸 듯한 고백 앞에서
나는 오래 전 초의선사를 사랑했던 니지현순이란 비구니의 동백꽃 같은 단심(丹心)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니지현순은 무안의 한빈한 선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도박에 미친 오라비에 의해 늙은 갑부의 첩실로 팔려가다가 출가하던 초립동이 초의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는 야반도주 하여 초의가 있는 운흥사 아래 마을의 주막에 몸을 의탁하고는
초의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환속을 권하지만 초의는 그녀의 사랑을 뿌리칩니다.
시회(詩會)에서 초의를 다시 만난 뒤로 몸을 감추고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합니다.
그리고는 대둔사 가까운 곳에 암자를 짓고 일지암으로부터 날아오는 초의의 향기를 맡으며 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단 몇 번의 스친 인연만으로 평생을 두고 사랑한 니지현순.
그녀를 생각하면 막무가내로 사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유를 만들어내며
자기합리화에 전전긍긍하는 요즘의 이기적인 사랑이 부끄러워집니다.
리네트!
아기 예수의 은총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사랑이 넘쳐나는 하루 지으시길 빕니다.
좋은 하루!
댓글 4개
양희은님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음악 가사가 떠오르네요^^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전 마음속에만 담은 사랑이라 아무것도 바랄 수가 없는데 그렇담 막무가내로 사랑을 한 것이었겠죠.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하며 꿈을 꾸고 희망을 이야기했던 저였는데 물론 한편으로는 위에 아침향기님께서 올려주신 노래 가삿말처럼 사랑한다는 그 일은 참 쓸쓸할지도 모릅니다. 문득 한 사람을 평생토록 사랑했다던 소설가가 생각납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그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오늘이 아무리 화려하고 편안하고 행복하다 해도 내일이라는 미래가 없다면, 오늘의 그 행복도 일회적인 것으로 끝날 뿐이며, 영원 없는 불안으로 변해 버릴 것이요, 비록 오늘 어떠한 고난과 불행이 있다 해도 내일의 찬란한 꿈과 희망이 있다면 오늘의 불행이 결코 절망적일 수는 없는 것이며 사랑 또한 그러하리라 믿는다.' 전 살아 숨 쉴 수 있는 내일을 생각하며 앞으로도 꿈을 꾸며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슬픔보다는 기쁨이 넘쳐나는 날이 될 수 있도록 미소를 잃지 않고 살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어느 것 탓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바라지 않는 진실된 마음으로요, 전 사랑은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바라고 요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사랑은 오래가지도 못할 것이기에.
아침향기님이 불러주시는 노래가 이 아침을 향기롭게 합니다. 사랑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말은 없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수 밖에 없지만, 그리하여 노랫말처럼 사랑이 끝난 뒤엔 모든 것이 빛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만은 분명하지 싶습니다. 아침향기님, 고맙습니다.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여럿이란 말처럼 같은 풍경을 보고도 사람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마음의 스텐스를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행복할수도, 불행할 수도 있겠지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하고자 하는 비꽃님은 성모마리아 같은 마음을 지니셨네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지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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