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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지(曲枝)와 깃발나무

백승훈 2012. 12. 20. 오전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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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트! 
어제는 고향에서 선거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고향 뒷산을 올랐습니다. 고향에 머물 때는 집만 나서면 바로 뒤가 산이어서 자주 오르내렸던 산입니다. 친구와 함께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산을 오르기도 했는데, 홀로 가면 홀로 가는 대로, 친구와 함께 가면 함께 가는 대로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바삐 걸으면 금세 등어리에 땀이 배이고 숨이 가쁠만큼 운동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천천히 걸으며 생각에 잠기길 즐깁니다.  느린 걸음으로 산을 오르며 길섶의 나무들의 표정을 살피기도 하고 가끔 뒤돌아 먼 곳의 풍경을 감상하기도 합니다. 매일 보는 산이 뭐 새로울 게 있겠는가 싶어도 볼 때마다 새롭고 신비로운 게 산이요, 숲 속의 초목들입니다.

 
산이 늘 새로운 것은 숲 전체가 살아 있는 거대한 생명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해도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가 모두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보니 우리가 감지하지 못할 뿐 그들도 사람 못지 않은 치열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을 오를수록 그들이 들려주는 침묵의 소리야 말로 가장 생생한  가르침이란 걸 느끼게 됩니다. 이른 봄날, 그들이 소리없이 피워 내보이는 꽃 한송이, 몰래 내어놓는 연록의 새순들은 경이롭기까지 하지요.
 
산을 오르며 나무들의 표정을 살피다 보면 그들이 묵묵히 살아낸 세월이 읽혀집니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자라 울울한 숲을 이룬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이리 휘고 저리 굽어서 안쓰러운 생각마저 들게 하는 나무도 눈에 띕니다.  토질이 좋고 경사가 완만한 저지대엔 곧게 자란 나무들이 많은 반면에   바람 거세고 바위 투성이인 높은 곳으로 갈수록 굽은 나무들이 많습니다. 그 모습은 저마다 주어진 환경에 몸을 맞추어 살아낸 흔적입니다.
 
곡지(曲枝)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굽은 가지를 이르는 이 말은 산등성이나 바위틈에서 이리저리 뒤틀린 나무를 가리킵니다. 누구라도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에 휘어진 가지를 늘어 뜨린 푸른 소나무를 보고  한두 번쯤은 탄성을 질러 보았을 것입니다.  그 휘어진 가지가 바로 곡지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이 수려한 모습은  그저 아름답다고 탄성만 내지를 수 없는 나무들의 고난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모든 식물들은 한 번 뿌리 내린 곳이 곧 제 삶의 터전이자 무덤이 됩니다.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삶의 터전을 옮길 수 없는 나무들은 한 번 뿌리 내린 곳이면 그곳이 어디이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운명으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거기에 몸을 맞추어 일생을 삽니다. 바람이 세차면  바람이 덜 부는 쪽으로 가지를 뻗고  햇볕이 부족하면 햇살쪽으로 몸을 비틉니다. 뿌리를 뻗다가 바위를 만나면 옆으로 틀기도 하면서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이리저리 뒤틀린 모습이 되기도 하는게지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은 못난 사람을 위로할 때 쓰는 말이지만 나무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억울한 말입니다. 나무들은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수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제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몸을 맞춰 사는 것일 뿐이니까요. 설악산이나 백두산 같은 고산 지대에 가면 깃발나무란 것이 있습니다.
깃발나무란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은 나무를 가리킵니다. 항시 바람이 거센  높은 곳에 자라다 보니 사방으로 고르게 가지를 뻗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는 것이지요. 나무들이 지닌 최고의 미덕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입니다. 어떤 환경이 주어져도 그 환경을 원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그 환경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록키산맥에 가면 수목한계선인 해발 3,000미터  부근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휘어져 무릎꿇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꼿꼿이 서서는 도저히 바람을 견디고 살 수 없기 때문에 무릎을 꿇듯 몸을  굽힌 채 살아간다고 합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선 최소한의 성장을 하면서 한껏 키를 낮추고 사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집안에 자연을 들여놓기 위해 나뭇가지에 철사줄을 친친 감아 만든 분재도 이와 같은 나무의 생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분재로 만든 나무들을 잘라보면 하나같이 나이테가 없습니다. 철사줄로 마구 감아 이리 비틀고 저리 휘어 못살게 구니 나이테가 생길 수 없는 것이지요. 명품 바이올린은 수목한계선 부근에서 자라는 휘어진 나무로  만드는데 그 이유는 목질이 단단해서 울림이 좋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어려운 환경을 견뎌낸 나무가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지요.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어제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생각하느라 정작 중요한 지금을 놓치고 사는 우리보다 나무들이 오히려 더 현명하단 생각도 듭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수납하며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무의 지혜를 배운다면 우리들의 행복지수도 한결 높아지지 않을까요?
리네트!

오늘도 좋은 하루!     

 

댓글 2개

비꽃 2012. 12. 20. 오후 03:56

자연에 순응하며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묵묵히 살아내는 나무, 많은 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진정 나무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나무를 보면서 나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산에 올랐을 때 흙이 아닌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를 볼 때도 있는데 하필이면 왜 그런 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을 다해가는 나무를 볼 때는 오랜 세월 잘 살아내었겠지 싶고, 나무를 보면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도록 더 많이 보고 느끼며 삶의 지혜를 배워나가야겠지요. 고맙습니다. 늘 좋은 하루 되셨으면 합니다.

백승훈 2012. 12. 21. 오전 10:38

나무의 가장 큰 덕목은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수납하고 현실을 인정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곤 합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고 설파했던 니체의 가르침을 사람보다 더 제대로 이해한 나무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합니다. 비꽃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것 같네요. 좋은 하루 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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