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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와 여행가방

백승훈 2012. 12. 19. 오전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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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트!
 이른 아침 날아온 문자메시지엔 놀랍게도 초등학교 동창의 부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소식에 잠시 멍해져서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그만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이란 여정 속에서 삶의 태도가 어찌해야 하는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차를 한 잔 마시며 책장을 살피다가 무심코 펼쳐 본 책 속에서 찾아낸 글귀 하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수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고 눈가림도 안 통할테니 도리어 걱정이 안 된다. 걱정이란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할 때 생기는 법이다. 이게 저의 전부입니다.  나를 숨겨준 여행가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 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 주시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 
                                - 박완서의 기행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 중에서 -
 
2011년  1월, 눈 내리던 새벽에 문학계의 큰 별인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이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했던 노 소설가는  80년의 이승의 여행을 마치고 먼길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2005년에 펴낸 '잃어버린 여행가방' 속의 글은 마치 마지막 말씀 같아 숙연해집니다. 8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그녀는 여행가방 속에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겨 놓았습니다.

1970년 장편소설 '나목(裸木)'으로 소설가로 데뷔하여 '휘청거리는 오후' '엄마의 말뚝1.2'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너무도 쓸쓸한 당신' 같은 장편소설 외에도 산문집과 동화등 일일히 손꼽을 수 없을만큼 수많은 작품들을 여행가방 속에 남겨 놓았습니다.
 마흔이란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주옥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박완서 선생은  우리 문학계의 큰별이자  게으름 피지 않고 열심히 사는 법과 의미 있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준 인생의 큰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목숨 지닌 존재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죽음의 신이 나를 데리러 올 때 나는 과연 나의 여행가방 속에 무엇을 남겨 놓게 될까 생각하니 문득 아득해집니다.
 
오규원 시인은 '죽고난 뒤의 팬티'라는 시에서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뒤로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음을 고백한 적 있습니다. 죽고난 뒤의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자신의 버릇을 통해 죽고난 뒤의 부끄러움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것은 사후에라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시인의 조용한 외침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 이승에 남겨진 여행가방 속에  자신을 증명해 줄 무언가를 남겨 놓는 삶을 살 수도, 죽은 뒤의 부끄러움을 걱정하여 팬티가 궁금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리네트!
그대는 어떤 삶을 살고 계신가요?  

댓글 2개

비꽃 2012. 12. 19. 오후 03:49

누군가의 부음을 듣고 나면 한순간 정신이 멍해질 때가 있습니다. 저도 어제 문자메시지로 누군가의 부음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보다 오래전에도 초등학교 동창 둘이 사고로 생을 달리했다고 했을 때 너무나도 빨리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에 누구라도 한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언제 우리의 삶이 끝이 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을 삶을 살아야겠지요. 그렇다고 오 시인처럼 그런 부끄러움은 아닙니다. 죽고 난 뒤에 저 자신을 증명해 줄 무언가를 꼭 남겨야된다는 생각은 아니거든요.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 저를 기억해 줄 수만 있다면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해도 슬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당장 어떤 일이 있어서 제 삶이 끝난다 해도 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만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싶고 언제일지 모르는 그날이 온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싶네요.

백승훈 2012. 12. 20. 오전 11:34

분명한 것은 누구도 한치 앞의 생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삶의 유한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자신의 생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지닌 것 또한 사실이지요. 언제라도 생이 끝날 수 있다는 전제를 할 때만이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 신이 나를 불러 생의 바구니를 보여달라 한다해도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삶을 우리 모두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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