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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
백승훈 2013. 02. 12. 오후 06:12
4567
백승훈 2013. 02. 12. 오후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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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시다니......정말 뜻밖이네요.\"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는 기색이 완연했지만 말꼬리가 가늘게 떨렸다.태양이 바다로 떨어지며 붉게 물들여 놓은 하늘가로 차츰 먹물 같은 어둠이 수평선으로부터 피어나고 있었다. 바다에 넋을 놓고 있다가 우연히 마주친 얼굴에서 읽어지던 낯익음.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의 서먹한 당혹감이라니. 나도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겨우 말없는 눈인사를 건네었다.
\"살아 있으니 또 만나게 되네요.\"
찻쟁반을 소리나지 않게 내려놓으며 맞은 편 의자로 가라앉는 그녀의 몸가짐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밀감빛 노을이 묻었는지 그녀의 뺨이 발그레하게 홍조를 띠고 있다.
처음 그 곳을 찾아갔던 것은 3년 전의 겨울 들머리였다. 겨울로 접어드는 환절의 길목은 스산했다. 바다로 떠나던 날, 출근길에 바라 본 길 가의 수양버들은 초록의 잎을 매단 채로 윤기를 잃고 있었고 룸미러에 비친 나의 얼굴은 서리맞은 배추잎처럼 피곤에 절어있었다. 갑자기 바다가 보고싶어졌고 파도소리가 귓바퀴에 살아났다. 떠나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은 어디론가 떠날 때에만 살아 있는 것 같군요.정지하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바람처럼\"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며 전화를 걸었을 때 아내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바다가 그리웠을 뿐 마음속에 점 찍어둔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바다로 가는 길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한밤중이 돠어서야 다다른 바다는 여인의 치마폭 같은 예쁜 해안선을 끼고 있는 작은 포구였다. 조금 무렵이어서인지 밤바다는 갯벌을 길게 드러낸 채 어둠 속에서 해조음을 육지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짭쪼름한 바다의 냄새가 맵고 찬 해풍에 묻어났다. 수평선 끝에 걸려 있는 고깃배의 불빛이 아스라히 멀었다.바닷바람에 귀와 뺨이 얼얼해질 때까지 바다를 향해 서 있다가 찾아 든 카페가 바로 여기,[겨울바다]였다.
여닫을 때마다 짤랑짤랑 소리가 나는 작은 종을 달고 있는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오프라 하노이의 무반주 첼로곡이 흐르고 있었다. 어림짐작으로도 채 열 개가 넘지 않을 듯한 테이블이 놓인 작은 카페였다. 그나마도 색깔양초에 불이 켜진 테이블은 겨우 하나 뿐. 카페 안은 심연의 바다처럼 깊은 침묵에 잠긴 듯이 보였다. 하기사 찬바람만 뺨을 치고가는 추운 겨울에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이 작은 바닷가를 일부러 찾아 올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혼자 오신 모양이네요.\"
하얀 김이 피어 오르는 엽찻잔을 내려 놓으며 말을 걸어 왔을 때만 해도 난 그저 손님에 대한 인사치레려니 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다. 서른은 지난 듯 했고 마흔은 아직 멀어보이는 여자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몸을 틀어 나는 창밖의 바다를 향해 앉았다. 엽차를 한 모금 마시자 얼었던 몸이 풀리는지 얼굴이 점점 화끈거려 왔다.
\"바닷 바람이 제법 차지요?\"
찻쟁반을 들고 와 커피를 내려놓으며 그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그녀는 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맞은 편 의자에 걸터 앉았다.일렁이는 촛불 너머로 그녀의 얼굴선이 뚜렷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크고 검은 눈, 오똑한 콧날,작지만 도톰한 붉은 입술, 가늘고 긴 목선을 지닌 그녀는 옅은 화장 밑에 숨긴 잔주름이 드러나 보였지만 대단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오늘 같이 손님이 뜸한 날은 아무에게라도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말을 거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시작된 그녀와의 대화는 가게 문을 닫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고 이야기를 하는 쪽은 그녀였다. 그녀는 가슴 속에 이야기 샘이라도 숨겨 놓았는지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해도 퍼낼수록 맑아지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시종 차분하고 나지막했으나 한 마디 한 마디가 묘한 울림을 지니고 있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가 있어요.사랑이 시작될 때 찾아오는 사람과 사랑이 끝났을 때 찾아오는 사람, 그리고 선생님처럼 삶이 막막해져서 찾아오는 사람이지요.하지만 겨울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잃었거나 자신의 삶이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져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스물세 살에 결혼을 해서 아이 하나를 낳았고 스물 일곱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청상이 되었다는 그녀는 1년 전에 이 곳에 까페를 차렸다고 했다. [겨울 바다]라는 까페이름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한동안 말을 끊고 나를 바라보았었다.
\"함께 겨울 바다를 보러 가던 길이었지요.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아이를 낳은 뒤로 남편과 자주 다투었어요. 아이가 정신박약아였거든요.처음엔 서로 노력하여 아이를 어떻게든 치료해보려고 노력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남편은 내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어요.그렇잖아도 아이 때문에 속 상한데 남편이 짜증을 내기 시작하니까 자주 부딪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겨울바다였죠. 남편을 처음 만난 곳도 바다였으니까요.겨울바다에 가서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거든요.왜 겨울이 와도 바다는 얼지 않고 푸르게 출렁이는지 남편에게 꼬옥 보여주고 싶어서요. 그래서 나선 길이었는데... 사고를 당한 거지요.나와 아이만 겨우 살아났지요. 이 곳에 까페를 열면서 이름을 뭘로 할까 생각하다가 그에게보여주려 했던 바다가 생각이 나서 [겨울바다]로 지은 거에요.\"
쓸쓸해지면 홀로 바닷가를 거닐며 파도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는 그녀는 쓸쓸히 웃었다. 그날 나는 무수한 이야기를 그녀로부터 들으면서 나의 삶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내가 무료해 하고 막막해 하는 삶이란 사실은 얼마나 윤기나고 살진 삶인가를. 나보다 더 쓰린 가슴을 안고 절체절명의 위기감으로 바다를 찾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의 겨울 바다행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그런 생각들을 하며 삼 년 전,그 곳을 떠나왔었다.
훌쩍 지나버린 삼 년의 세월만큼 그녀의 눈가에도 잔주름이 늘었으련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왔다. 굳이 이 곳을 찾아오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쩐지 그녀를 다시 만나면 쑥쓰러움에 얼굴 붉힐 것 같아 그냥 차나 한 잔 마시고 일어설 생각이었는데 그녀에게 들키고 만 것이었다. 삼 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겨울바다]에서 난 다시 삼년 전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 그녀와 카페문을 닫는 시간이 올 때까지 많은 이야길 나누었다.
이 번엔 내가 주로 이야길 했고 그녀는 듣는 쪽이 되어
.
댓글 2개
김문숙
2013. 02. 16. 오전 01:42
좋은 글들에 추천이 없네요. 한 표 드려도 화 안내실 꺼죠 . 그게 뭐---사실 아무 소용도 없는데 추천의 바다가 너무 말라 보여서 요 다시 겨울 바다를 그리고 이제 새 봄을 다시 바다에서 확인하고 싶어 졌읍니다. 제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졌구요.김시힙ㄴ;디 평강하소서
김봉길
2013. 02. 26. 오후 02:54
굴곡진 삶의 편린이 편하게 흐르는 글들로 인해 오래동안 시선을 머물게 하네요. 즐거운 봄 맞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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