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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향기(세월은 바람같이) 제 1편
김병국 2015. 12. 19. 오후 03:35
4013
김병국 2015. 12. 19. 오후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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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은 바람같이)
중부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부근에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듯 색깔도 선명한 푸른색 5 층 건물이 있다.
건물입구에 ‘영산(霙山) 한방 종합 병원’ 이란 글씨가 아치형으로 큼직하게 걸쳐 있다.
그 아래쪽으론 ‘관절염 무료 침구 시술기간’ 이란 붉은 글씨의 프랑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약간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병원 앞쪽으로는 활처럼 휜 강줄기의 끝자락이 멀찌감치 내려다 보이고, 뒤편으로는 나지막한 산이 건물을 병풍처럼 감싸듯 서풍(西風)을 막고 있다.
오른쪽 툭 트인 시야에 중부 고속도로가 길게 뻗어 있어, 영동지역으로 빠지는 차량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자연석과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늑한 저택의 정원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다.
하늘은 눈이라도 내릴 듯 잿빛으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이 밑둥에 볏짚을 두른 채 적당한 간격으로 열병식을 하듯 서 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빛바랜 낙엽들만 이리저리 마당을 뒹굴고 잿빛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 지자 눈발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회오리치는 눈발은 첫눈의 기상을 한 것 뽐내듯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기승을 부린다.
첫눈을 맞으려는 아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눈이다 눈이 온다’ 소리치며 강아지처럼 병원 밖으로 뛰쳐나가고 두터운 옷을 겹쳐 입은 환자들과 가족들은 눈보라를 피하느라 서둘러 병원 안으로 들어선다.
병원 안은 갑작스레 몰려든 인파로 술렁거렸다.
가끔씩 들려오는 의사를 찾는 실내 방송 소리와, 바삐 지나는 간호사들의 움직임 소리가 병원 분위기에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한쪽 켠 병실 어디선가 가늘게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비좀은 복도를 타고 시냇물 흐르듯 병실곳곳으로 스며든다.
50여 개의 병실을 보유한 이 한방 병원은 원장인 김준석이 지은 병원이다.
그가 이 병원을 짖기 까지는 파란 만장했던 그간의 세월이 있었다.
그의 평생 숙원이던 이 병원이 완공 되던 날 익명(匿名)을 요구한 한 독지가로부터 많은 돈을 기부 받은 상태라 실비로 운영하는데도 별로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준석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기억 상실증으로 몇 년간의 기억을 깡그리 잃어 버렸다.
간혹 실낱같은 과거가 환각처럼 그의 뇌리를 스치곤 하지만, 그는 그 기억의 끈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준석은 병실을 일과처럼 둘러보고 그의 방 원장실로 들어섰다.
조금 마른 체구에 단아한 입술은 흰까운에 받쳐져 더욱 예리해 보였다.
유난이 힌 얼굴에 뚜렸한 이목구비는 냉정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그가 웃을 때는 장난꾸러기 같은 천진스럼이 배어 있었다.
잘 정돈된 조금 넓은 듯한 책상 앞에 앉은 준석은 다음 주 초 세미나에서 발표할 원고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검은 얼굴의 중년 남자가 꾸부정한 어깨에 망태기를 둘러메고 헐레벌떡 들어섰다.
그는 준석의 지시로 고산에서 자생하는 약초를 캐러 다니는 지난달에 입사한 약재 과 직원 강길보였다.
그의 행동으로 보아 무슨 특별한 약초를 캐 온 모양이다.
\"원장님, 이 뿌리좀 보세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그 약초 같아요.\"
그는 흙이 잔뜩 묻은 나무뿌리를 허름한 망태기에서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잎은 없었으나 온통 가시가 나 있는 줄기와 뿌리의 형태로 보아 준석이 찾고 있던 그 약재였다.
준석은 나무뿌리를 들고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두툼한 입술을 씰룩거리며 칭찬을 기다리듯 쳐다보는 강길보에게 준석은 미소 뛴 얼굴로 말했다.
\"결국 캐셨군요. 그 약초가 맞네요.\"
준석은 몇 달 전 말기 위암(胃癌) 환자에게 이 약초를 복용시킨 적이 있었다.
환자는 통증의 강도와 횟수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 환자 가족들은 더 복용하길 원했으나 약재를 구하지도 못했고 성분 등 확실한 분석이 되어있지 않아 중단한 상태였다.
그래서 준석은 다시 한 번 실험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다음에 이 나무를 찾으면 표시만 해 두고 캐지는 마세요.\"
\"네? 예 알았습니다.\"
준석의 뜻하지 않은 말에 강길보는 의아한 표정으로 원장을 쳐다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자생(自生)하는 이 나무는 이제는 멸종(滅踪) 위기라 정말 암에 좋은 약재로 밝혀졌을 때 약초가 없어 질 것을 염려해서 준석은 그에게 당부했다.
\"뿌리에 노란 라벨을 붙여서 7번 약재 창에 갖다 놓으세요. 진액은 하루가 지나야 많이 나오니까요.“
“네”
강길보는 짤막한 대답을 하고는 얼른 망태기를 벌려 나무뿌리를 주섬주섬 밀어 넣고 있었다.
“잠깐, 거기 작은 풀은 뭡니까?\"
준석은 망태기 속에서 살짝 삐져나와있는 파릇한 풀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예, 이건 바위에서 캤는데, 그냥 잡초 같아요. 겨울인데도 잎이 파래서 캐 봤어요.\"
\"이리 좀 줘 보세요.“
강길보는 대수럽지 않다는 듯 무직한 손으로 덥석 꺼내어 준석에게 내 밀었다.
준석은 풀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잔뿌리가 끊어져 있어 그는 강길보에게 말했다.
”약초를 캘때는 잎과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정성들여 캐셔야 합니다. 약초를 다룰때도 조심히 하시구요.“
“네 알았습니다.”
강길보는 킁킁거리며 어께를 움찔거렸다.
준석은 잎의 생김새가 낯설지는 않았으나 무슨 풀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준석은 그 풀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정신이 몽롱해 짐을 느꼈다.
준석은 순간적으로 아무표정 없이 모든 행동이 멈춰 버렸다.
그의 눈가에는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무언지 모르는 이상한 감정이 준석을 에워싸고 있었다.
‘무순 기분이 이리도 야릇한가?‘
준석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풀을 들고 허수아비처럼 서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버릇처럼 잔뿌리 하나를 잘라 눈을 지그시 감고 혀에 대 보았다.
뜹뜨름하니 아리지도 않고 독성은 없는 것 같았다.
준석은 볼 근육이 툭 나오도록 어금니를 질끈 물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준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숨에 손을 얹고는 무엇인가 기억을 하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미간을 찡그렸다.
잠시 후 미간을 풀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준석의 그런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강길보는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원장님”.
“아, 네 ” 준석은 강길보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강길보를 쳐다보았다.
“이것도 7 번창에 같이 넣어두세요.”
그러면서도 준석은 마지못해 말한 듯 그 풀을 선뜻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 풀은? 이 풀은?”
준석은 연신 눈을 감고 서성거리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원장실엔 침묵이 흘렀다.
한참을 그러던 준석은 강길보를 쳐다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수고했습니다. 그만 나가 보세요”
강길보는 망태기 속 깊은 곳에서 더덕 서너 뿌리를 꺼내놓으며 말했다.
“더덕 덩굴이 보이 길래 캤어요. 고추장 찍어서 드세요. 향이 죽여요.” 강길보는 아까운 듯 어깨를 움찔거리며 ‘킁킁’ 거리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나갔다.
강길보가 나가자 준석은 등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보라가 제법 창가를 두드리며 창틀 모서리에 눈이 쌓여있었다. 어느새 나무가지에도 눈이 소복히 덮이기 시작했다.
준석은 인터폰을 눌렀다.
“원무괍니다.”
볼멘 여자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흘러 나왔다.
“주 과장 좀 올라오라고 하세요.”
“주 과장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신데요.방송을 하겠습니다.”
병원 안 스피커를 통해 주낭걸 과장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댓글 1개
사색의향기
2015. 12. 23. 오전 11:29
흥미진진한데요. 연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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