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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 (세월은바람같이)3편
김병국 2015. 12. 27. 오후 01:01
3986
김병국 2015. 12. 27. 오후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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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석은 무척 화가 났지만 슬슬 피하며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준석은 철민이 덩치도 크고 힘이 쎄 보여 여차직하면 말려 줄 사람이 나타날 때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 두 분이 골목 입구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준석은 갑자기 철민을 향해 온몸을 날려 철민을 붙들고 나뒹굴었다.
준석은 오른쪽 겨드랑이에 철민의 목을 감싸고 왼손으론 목이 빠지지 않게 오른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곤 그의 특기인 구렁이식 목조르기로 들어갔다.
철민은 캑캑거리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두 다리는 버둥거리고 팔은 허우적거렸다.
철식은 맥풀린 형 철민과 아주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며 어리벙벙하고 있었다.
\"쟤가 사람 죽이겠네, 얘, 얘, 이 손 좀 풀어라.\"
지나던 아주머니들은 달려와 준석과 철민을 간신히 떼어놓았다.
구렁이식 목조르기에 혼이 난 철민은 한쪽에 서서 목을 실실 만지며 겁에 질려 있었다.
철식은 그것보라는 듯 형에 어깨에 손을 얹어 놓고 있었다.
낭걸은 의기양양하듯 퉁부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준석에게 다가가서 존경의 눈초리로 준석을 바라보았다.
준석은 꽈배기 봉지를 집어 들고는 꽤재재한 손으로 봉지를 벌려 꽈배기 하나를 꺼내어 낭걸에게 내 밀었다.
심부름시킨 누나에게 야단맞을 것을 알면서도 낭걸에게 준것이다.
그런일을 알리없는 낭걸은 꽈배기를 먹으려고 입을 벌리다 입이 안벌려지자 손에들는 준석이 옆에 바짝 붙어 연신 싱글벙글 거리지만 부르튼 입술은 도무지 웃는 모습이 아니었다.
낭걸은 배를 내밀고 팔자걸음으로 준석의 뒤를 따라가다 낼름 집으로 들어갔다.
싸움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다.
그 후 철민은 아이들을 괴롭히지 못했고, 철식이 역시 주눅이 들어 아이들이 모여 놀 때 잘 끼지도 못했다.
그러나 준석은 철식이가 외톨이로 노는게 불쌍해 보여 가끔 술래잡기놀이에 끼워 주기도 했다.
그후로 철식은 낭걸이와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낭걸이는 그 후 더욱더 준석을 따랐고 그는 힘이 없었으나 준석의 빽으로 늘 부 두목 역할을 하곤 했었다.
준석은 그런 중에서도 서울에 있는 D 중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
시골에서 서울 D 중학교는 대단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해 겨울 준석의 가족은 서울 종로 5가에 마당이 넓은 디귿자 형태의 한옥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의 부모는 서울에서 기반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바쁘게 일을 하셨다.
아침 새벽에 나가서 밤 통금이 임박해서 들어오시곤 했다.
전쟁으로 인해 학교를 늦게 들어간 준석의 누나 명자는 두 살 아래인 준석의형 준원이와는 같은 학년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살을 예는듯한 영하의 날씨에도 그들은 학교 공부를 마치고 과외공부를 하느라 밤늦게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전쟁으로 안정되지 않은 핍박한 살림살이에도 교육열은 대단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준석은 집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혼자서 노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그는 엄마가 준 용돈을 모아 나무에 쇠 날이 달린 끈으로 묶는 스케이트를 하나 샀다.
그는 스케이트를 사고 얼마나 좋았는지 밤새 어루만지며 이불을 깔아 놓고 타는 시늉도하니 이불이 다 튿어져 엉성한 바누질 솜씨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어디에서 탈것인지 궁리를 하다 준석은 넓은 집 안마당을 생각하고 다들 자는 사이 살며시 나가 마당에다 물을 잔뜩 뿌려 놓았다.
아침에 누군가가 넘어져 소란을 피우기도 했지만 준석은 방안에서 킥킥거리며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가정부가 일찍 일어나 미끄럼을 방지하려고 연탄재를 뿌려놓기도 하고 뻘겋게 달은 연탄집개로 녹이며 깨기도 했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물은 계속 뿌려 졌다.
이제 안마당에 얼음은 누가 감히 손을 댈 수 없게끔 두껍게 얼어붙어 아예 방치한 상태였다
드디어 준석은 식구들이 없는 틈을 타 나무스케이트를 신발에 묶었다.
스케이트를 타기에는 좀 좁았지만 처음 타는 어린준석에게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신기하게도 넘어지지 않고 일어서서 조금씩 지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주일 만에 준석은 자신이 붙었다고 생각해서 집 근처에 있는 서울 운동장 스케이트장을 찾아갔다.
나무에 쇠가 붙은 스케이트를 울러 메고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스케이트장을 들어선 준석은 줄행랑을 치듯 집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모두 가죽구두에 달린 진짜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가 죽은 어린 준석은 그 해 겨울 안마당 선수가 되어서 매일같이 혼자 빙빙 돌기만 했다.
의지력이 강한 그는 아마 그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신인 선수상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
피난시절 죽음 같은 고생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그의 어머니는 남들이 좋다는 거는 다 자식들에게 해주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쩌면 전쟁으로 인한 피맺힌 한을 자식을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 해 겨울이 채 끝나기 전 그의 엄마가 중학교 입학선물로 사준 외제 스키를 메고 두 살위 형을 따라 대관령 횡계 스키장에 갔을 때였다.
그의 형은 스키선수였고 준석도 형처럼 선수를 만들기 위한 엄마의 배려였는지도 몰랐다.
그 때는 스키장에 지금처럼 리프트가 없어서 사람이 스키를 신고 마치 게처럼 옆으로 눈을 다지며 힘들게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산 위 정상에 오르면 다리가 후들거리며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오줌을 보면 금새 고두름이 되버리는 그 추운 날씨에도 두터운 스키복을 벗어 던질 정도로 땀을 흠뻑 흘려야만 정상에 오를수 있었다.
정상에 올라 옷을 벗으려고 하면 못 벗게 말리던 그의 형 준원이, 그 때 준석의 눈엔 고등학생인 형이 무척이나 어른스러워 보였다.
통나무와 나무판자로 지은 산장이 보이면 그 곳이 스키장 정상이다.
그 곳 정상은 아주 잘 타는 사람들만 올라가는 곳인데 어린 준석은 그 때 겁도 없이 그의 형을 따라 그 곳 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그의 형 준원은 자봉틀로 촘촘히 누빈 스키복 작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 있는 돈을 꺼냈다.
한 장을 펴서 입에다 물고 나머지 몇 장의 파란돈은 다시 접어 그 작은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준석을 보고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형이 사준 오뎅 한 꽂이와 국물을 마시며 산장 가운데에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 앉아 만족해하는 어린 준석, 지나는 사람들이 '그놈 참 잘생겼다' 며 한 번씩 머릴 만지고 지나가곤 했다.
그 곳엔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주인공으로 나온 예쁜 여배우도 있었고, 얼굴이 검고 덩치가 큰 스키 선수들도 있었다.
모닥불 옆으로 어린 그를 끌어당기며 불을 쬐라던 영화배우 누나,
그 누나의 몸에서 풍기는 화장품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도망치듯 금새 빠져 나온 준석, 땀이 다 마르지도 않은 채 형에게 끌려가 가파른 비탈길에 세워진 깃발아래,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정상에서 준석을 비탈로 밀어내려 보내곤 '양도,양도' 소리치며 그를 앞질러 내려가는 형을 따라 뜻도 모르고 '양도,양도' 를 읊어 댔다.
그 때 그 시절...... 자연설 위에서의 활강과 잘 다져지지 않은 슬루프, 여기 저기 눈 쌓인 소나무와 이따금 낭떠러지임을 알리는 경고문이 꽂혀 있는 것들이 어린 준석에겐 그저 신비스럽게만 보였다.
준석은 몇 번씩 반복되는 활강으로 다리에 힘이 빠진 채, 그렇게 기술 없이 내려오다 그만 나뒹굴고 말았다.
가녀린 다리가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도 어린 준석은 쌍꺼풀 진 예쁜 두 눈만 멀뚱멀뚱, 형을 원망도 없이 쳐다보곤 했다.
그 땐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서인지 그 시절 활강(滑降)은 무척 환상적이며 꿈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그의 추억 거리가 되었다.
그가 어릴 적 추억을 더듬고 있을 때 T V 에서 방송도중 자막과 함께 아나운서의 말이 흘러 나왔다.
강원도 지방에 대설 주의보가 내려 졌다는 것이다.
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준석에게 그 날의 무료함을 달래기엔 기분 좋은 뉴스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거실 커튼을 활짝 열어 저치고 밖을 내다보았다.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설경에 신비감마저 느끼며 준석은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집과 지붕들, 제각기 뽐내던 각자의 색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선진국이 아니면서도 선진국처럼 소비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올림픽을 치른 지 몇년이 지난 지금에도 언제나 그렇듯 한발 앞서 가고, 빨리 빨리 문화는 여전한데, 오늘은 이렇듯 모든 세상을 하얀 눈으로 덮어 사람들의 급하고 들뜬 마음을 포근히 잠재우고 있었다.
이웃집 창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다른 집 지붕 위를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다.
그윽하고 고운 그 빛깔은 푸르고도 하얗고 유난히도 고와 그는 그 색의 이름을 하나 지어 보았다.
파란 듯 파랗지 않고 하얀 듯 하얗지 않은 신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묘한 색이란 뜻에서 '신계빛' 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는 앞으로 이런 빛을 신계 빛이라 부르기로 했다.
준석은 안방으로 들어가 격자(格子)문양 창을 반쯤 열었다.
순간 찬바람이 그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흩날리는 바람결이 준석의 안면신경을 자극했다.
아! 눈 냄새가......
그는 차고도 신선한 바깥공기를 심호흡으로 깊게 들여 마셔 보았다.
준석은 얼굴을 조금 앞으로 내밀어 눈 냄새를 맡으려 했다.
함박눈이 무슨 시위라도 하듯 펑 펑 쏟아지고 있었다.
함박눈 한 송이가 방안으로 날아 들어와 그의 얼굴에 와서 앉고는 금새 녹아 버렸다.
예민한 준석은 볼에 닿는 눈의 촉감이 산뜻해 한 번 더 기다려 보았지만, 눈송인 더 이상 방안으로 날아들지 않았다.
상큼하고도 싱그러운 그 눈 한 송이의 여운은 기분 좋은 준석을 신비의 눈 세상으로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순간 전화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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