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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세월은바람같이 )5편
김병국 2016. 01. 04. 오후 12:34
4184
김병국 2016. 01. 04. 오후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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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석은 작은어머니 있는 곳까지 한발로 찌-익 하고 브레이크를 길게 잡으며 들어왔다.
이미 경숙에게 들키고 말았다는 생각에 멋들어진 제동을 길게 걸었다.
준석을 본 작은어머니는 다시 한 번 감탄을 하며 정말 멋지다고 박수까지 치셨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경숙이가 나타나지 않자 작은어머니는 준석을 불렀다.
\"스케이트 타는 걸 봤나 봐,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애라.\" 하시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준석에게 찾아보라고 했다.
준석은 경숙을 찾으러 링크를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정인이란 여학생이 준석을 보더니 아는 체하며 인사를 했다.
\"야! 멋지다.\"
그들끼리의 말소리를 뒤로 하고 준석은 계속 경숙을 찾아다녔다.
경숙은 링크 옆 긴 의자에 앉아서 얼음판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풀 죽은 경숙을 보는 순간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경숙 앞에 다가가서 손을 슬며시 내밀었다.
\"작은 어머님이 오시래요.\"
\"......\"
경숙은 마치 모르는 사람을 쳐다보듯 그를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땅으로 떨구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장난이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 몹시 미안 해 했다.
“제가 좀... 하여간 미안합니다.”
그의 철없는 장난이 경숙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한 것 같아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개 숙인 경숙을 보고 준석의 오만 가득한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한 곳에 모인 그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본 작은어머니는 손짓을 하며 불렀다.
\"자, 자 그만 가지, 어디 가서 식사라도 하자 구.\"
\"예 그러지요.\"
준석은 작은 어머니의 제의가 너무나 반가워 얼른 대답하고 따라 나섰다.
\"제가 장난이 너무 심했나 봐요. 미안합니다.\"
식사를 하면서 그는 경숙에게 좀 전의 일에 대해 정중히 사과를 했다.
경숙은 괜찮다며 시골처녀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 사건들은 그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었으나 그는 그 일로 경숙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준석은 가끔 안부전화를 해주고 신경을 써주는 경숙이가 고마웠다.
그들은 그렇게 가끔 만나 데이트도 하며 서로를 알아 가던 중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과거를 듣게 된 준석은 자신이 그녀를 감싸주겠다며 과거를 묻어 둔 채 그 이듬해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엔 많은 하객들이 몰려왔는데 그중 낭걸이도 있었고 철민이 형제도 와 있었다.
어릴 때는 으르렁대던 사이였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모든 것이 추억으로만 생각이 되어 그들 형제와 준석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낭걸이 와는 몇 년 만에 만난 것인지 참으로 반가웠다.
“아니 너 머리가 왜 그래?”
낭걸은 원형탈모로 고생을 한다며 준석에게 머리를 들이 밀었다.
예식장 상데리아 불빛은 낭걸의 정수리를 비추어 번들거렸다.
“아버지도 탈모로 고생하셨는데 약초로 만들어 쓰시고는 지금은 머리가 저렇게 많으셔 내가 그 약을 만들어 달래서 줄게 한번 써 봐 참, 전에 하던 일은 잘되고 있냐?\"
준석은 바뿐 와중에도 낭걸이 와 둘이 그 동안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도와 드리고 있어. 요즘은 일거리가 많아 거기서 살다시피 하는 걸\"
“그래 목수 일도 괜찮지 뭐. 미군부대라면 영어를 잘해야 되잖아?”
“응, 부대에서 살다시피 하니까 자연히 말하게 되던데.”
\"결혼 축하한다.\"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이 준석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감사합니다.\"
준석은 아버지 옆에 서서 손님들에게 인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여, 축하한다.\"
\"어! 명진 선배!\"
\"결혼 축하! 잘살아\"
\"네. 고마워요. 이렇게 와 주셔서.\"
명진은 준석이 평소 좋아했던 학교 선배였다.
명진이 식장 안으로 들어가자 준석은 다시 낭걸이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가까운 시일에 나 한데 한번 찾아와.\"
준석은 낭걸이에게 명함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응, 그래. 한번 갈게.\"
\"어머닌 안녕하시지?\"
준석은 낭걸이 어머님 얼굴에 나 있던 흉터자국을 떠올리며 말했다.
\"으... 응\"
낭걸은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철민이가 그들의 대화를 막고 나섰다.
\"준석아, 신부가 굉장히 예쁜데! 좋겠다. 자 자 들어갈 준비해.\"
그는 준석에게 입장할 준비를 하라며 채근을 했다.
'신랑 입장' 이라는 스피커 소리에 철민은 준석을 떠밀듯 들여 보냈다.
철민은 마치 준석의 가족들이 하듯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세심하게 챙겨 주었다.
준석이 결혼 한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동네에서 우연히 철민을 만났다.
\"아니 여긴 어떻게...\"
\"응, 나 이 동네로 이사 왔어!\"
철민은 준석에게 아리랑 담배를 꺼내 권했다.
\"나 담배 끊었어.\"
\"나도 끊으려 했지만 잘 안 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는 거야?\"
철민은 담배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참는 거 말고는 다른 게 있겠어, 나 지금 바쁘니 다음에 집으로 놀러 와.\"
\"그래 다음에 보자.\"
그런 후부터 철민은 준석의 집에 가끔 찾아와 놀고 가곤 했었다.
그가 가고 나면 거실에 담배 냄새를 빼느라 준석은 문을 열어 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준석은 아침에 잊어버리고 나왔던 서류를 가지러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는 교회에 갔을 것 같아 그는 열쇠로 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경숙이 있었다. 경숙은 당황한 듯 준석을 피해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서류를 찾으러 방으로 들어간 준석은 작은 접시에 담긴 담배꽁초 몇 개피를 발견했다.
아리랑 담배 휠터는 질겅질겅 씹은 듯 뭉그러져 있었다.
준석은 경숙에게 무슨 말인가 해야 될 것 같았으나,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어 서류만 찾아 들고 그냥 나와 버렸다.
'도대체 누가 왔을까?'
순간 준석은 철민을 떠올렸다.
'그가 피운 담배도 아리랑이 아닌가! 휠터를 씹는 버릇도......'
준석은 눈에 불이 번쩍하며 분노로 가슴이 이글거렸다.
왜? 그가 안방까지 들어 왔을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냥 놀러 왔겠지?, 별일 없었겠거니' 하며 생각하다가도 준석의 가슴은 진정되지 않고 계속 쿵당 거렸다.
'그런데 왜, 안방까지 그를 불러 들였을까?'
준석은 경숙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수없는 생각으로 자문자답을 했다.
가끔 경숙이 이유 없이 집을 비우기도 했는데, 그것도 이상한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날이후 경숙은 준석을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준석도 자연히 경숙과의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잊으려하면 할수록 철민의 느끼한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그들은 한 집에서 각자의 생각대로 생활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춘기에 접어든 두 딸을 두고 14 년째 살고 있으나 그들 사이의 대화는 꼭 필요한 몇 마디의 말이 전부였다.
경숙을 처음 만나 스케이트장에 갔을 때 왜 경숙이 왜 그렇게 측은해 보였는지......
자신의 오만이 불러온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는 그의 인생을 여기 까지 몰고 온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그의 얼굴엔 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준석은 대외적으로는 남편의 위치를 지키려고 무척 노력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저세상사람이 된 아내가 그렇게 쉽게 떠날 줄은 정말 몰랐다.
준석은 갑자기 철민을 떠올리며 경숙이 혹시 교통사고를 가장한 타살이 아닐까?
준석은 좀 전 집에서 받았던 이상한 전화와 연결시키고 있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준석의 기분이 뒤죽,박죽 되고 말았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리고 눈 덮인 길은 지나는 차들에 의해 다져져 번들거렸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비탈길에서 갑자기 차가 빙판에 미끄러져 내려갔다.
재빠르게 핸들을 안정시킨 그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톨게이트를 막 지나자 라이트에 비친 눈 덮인 도로가 곧게 뻗은 것이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 같아보였다.
무엇이 준석에게 천국이란 생각을 하게 했는지?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끌어 들이고 있었다.
눈길이 너무 위험해 돌아가려 했던 조금 전에 생각은 씻은 듯 사라지고 준석은 눈앞에 펼쳐진 쌔 하얀 천국의 길을 거부 할 수가 없었다.
차량들은 드문드문 후미에 빨간 차폭 등만 이따금씩 보였다.
고속도로 노견(路肩)에는 눈을 맞으며 바퀴에 체인을 끼우느라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언덕길에선 오르지 못하는 차들이 지그재그 대각선으로 쏠려 있었다.
준석의 차는 미끄러지지 않고 언덕을 잘 올라갔다.
그는 모처럼 느끼는 자유로움과 음악 가득히 차에 싣고 달리는 자신의 모습이 어느 외국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져 잔뜩 흥분되어 있었다.
한참 기분을 내며 얼마를 갔을까?
멀리서 눈이 반쯤 덮인 휴게소 팻말이 보일 때 준석의 배에서 시냇물이 흐르듯 쪼르륵 소리가 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소사휴게소 주차장에 들어선 그는 짐을 실은 대형 트럭과 크고 작은 차들이 주차장에 꽉 들어차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것 같았다.
차들 지붕엔 눈이 수북히 덮인 것이 주차한지 오래된 듯 보였다.
그리 넓지 않은 휴게소 안으로 들어서자 언 살갓이 스르르 풀리며 피로감마저 들었다.
일회용 용기를 든 사람들은 이리저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시장기로 우동 한 그릇을 금새 비우고 커피 한 컵을 집어 들었다.
준석의 옆에 서서 우동을 먹고 있던 젊은 청년들이 하는 얘기가 들렸다.
\"진부나 대관령을 가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거야.\"
\"그러지 말고 여기서 눈이 그친 다음에 가는 것이 어떨까?\"
\"그래, 날씨를 좀 살피다 가기로 하자, 중간에서 길이 막히면 오도가도 못 할 테니.\"
\"제설작업이 끝나려면 여기서 밤을 새울 수도 있어.\"
\"너무 늦으면 안 돼. 내일 까진 집에 들어 가야하는데.\"
\"집엔 뭐 꿀이라도 발라 놨나!\"
\"실은 어제 마누라와 싸웠거든, 그래서 내일은 꼭 들어가야 돼.\"
그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으려고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준석은 그들처럼 쉬었다 가고 싶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친구인 한섭이가 있는 진부라 눈이 더 쌓이기 전에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섭을 만난다 생각하니 고등학교 시절 생각이 났다.
한섶은 등록금마저 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힘든 때가 있었다.
공부는 잘 했지만 내성적이라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섭이와는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에게서 한섭이의 사정을 전해들은 준석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사정얘기를 했더니 그의 어머니는 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선뜻 등록금을 내주셨다.
그 후 남달리 한섭에게 관심을 가졌다.
한섭과 친하게 지내자 준석을 좋아하던 친구들도 자연히 한섭이와 친하게 되었다.
한섭은 준석의 가정생활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매우 친한 친구였다.
한섭과 알레르기에 대한 의논도 하고 문병도 할 겸 출발한 것이 이렇게 많은 눈 때문에 힘들지 몰랐다.
휴게소를 나오니 눈보라가 더욱 세차게 불어왔다.
'이런 눈쯤이야' 하며 준석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스피커에선 '제임스라스트' 오케스트라의 BARCAROLE 연주곡이 경쾌하게 흘러나와 준석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으니 경찰관들이 빨간봉을 저으며 통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위험하니 국도를 이용하라며 우회시키고 있었다.
고속도로 옆 국도로 핸들을 돌리니 뿌드득 소리를 내며 핸들이 무겁게 움직였다.
라이트에 비친 도로 옆에 움직이지 못하는 소형차들은 모두 똑같아 누구 차가 누구 차인지 구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조금만 더 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준석은 아무도 진입하지 않는 도로를 혼자 들어섰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과 한적한 도로는 적막감마저 들었다.
언덕을 간신히 올라가면 다시 내리막에 조심해야하는 연속적인 긴장감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가로등도 없고 도로가에는 잡목이 우거진 길옆 풍경은 한적한 시골 오솔길이었다.
이따금씩 보이는 길가 집에서 창밖으로 새어 나온 불빛만이 온화한 고향 풍경을 연상시키며 도로의 경계를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는 벌써부터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넣고 찐 고구마 껍질을 벗기면서 친구와 마주 앉아 학창시절 얘기로 들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길가에 집들이 뜸해지고 불빛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이 준석의 친구가 되고 있었다.
밖엔 아직도 쉼 없이 눈이 내리고 주위는 캄캄한 산중이라 무서우리만치 조용했다.
그렇게 얼마를 갔는지 저만큼 떨어진 언덕 중턱에서 차량 한 대가 비상등을 깜박이고 있었다.
그 차와 점점 가차와지는 것만으로도 준석은 반가웠다.
거리가 좁혀지자 차에서 한 여인이 밖으로 뛰쳐나와 정지신호를 보냈다.
빨간 점퍼를 입은 스키복차림의 여인은 손을 아래위로 마구 흔들어 댔다.
눈길에서 정지 하면 다시 출발하기도 어렵지만 요즘세상이 어수선하여 간간히 강도로 돌변하는 예가 있어 그냥 지나쳐 갈까 했다.
그러나 여인의 다급한 행동은 진실인 것 같았다.
두려움에 떠는 그녀의 눈동자를 본 준석은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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