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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그대눈꽃이여)6편

김병국 2016. 01. 08. 오후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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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눈꽃이여) \"미안합니다, 차가 빠졌어요. 좀 도와주세요. 벌써 몇 시간 째 예요.\" 그녀는 운전석 차창 옆에 서서 사정했다. 준석은 그녀의 간절해 보이는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차창문을 스르르 열었다. 눈보라가 확 몰려들어 얼굴을 급습하고 따스한 실내공기를 잡아먹듯 찬바람이 엄습했다. 그녀의 행동은 정중했지만 떨리는 듯 톤을 높인 목소리가 상황이 매우 다급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고장인가요?\" \"아니요, 눈에 빠졌어요. 헛바퀴만 돌아요. 조금 밀면 될 것 같은 데......\" 준석은 하이빔을 켜 주위를 더욱 밝게 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눈위의에 흔적이라곤 그녀발작뿐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준석은 차문을 열어 젖혔다. 준석은 그녀의 발작을 따라 앞장서고 그녀는 다소곳이 준석의 뒤를 따랐다. 차 빠진 곳을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바퀴가 좀 눈에 묻히긴 했지만 조금 밀면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타세요. 한번 해 봅시다.” 준석은 차를 밀면서 소리쳤다. \"출발하세요.\" ‘윙-이잉’ ‘윙-이잉’ 차는 헛바퀴만 돌고 바퀴는 점점 더 빠져만 들어갔다. 뒷바퀴에서 튕기는 눈세레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온힘을 다해 밀었다. 세찬 눈보라가 준석의 행동을 움츠리게 했지만 준석은 계속해서 맨손으로 눈을 퍼내며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준석의 행동을 바라보다 말고 슬며시 내려 준석의 옆에 섰다. \"이리 잠시 손 좀 녹이세요.\" 그녀는 털장갑을 준석에게 내밀었다. 준석이 머묻 거리자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안되겠어요 차에 잠시 들어와 몸 좀 녹이세요” 그녀는 차문을 열고 준석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눈발이 휘날려 차 안으로 준석과 같이 휙 빨려 들었다. 그녀의 차안에선 자스민향과 함게 Spring, summer winter & fall 이라는 팝송이 흘러 나왔다. 준석은 그녀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시는 길을 방해한 것 같아서...미안합니다.\" 그녀는 준석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괜찮습니다. 혼자 무서웠겠어요?\" \"예, 눈보라가 몰아 칠 땐 소름이 끼쳤어요. 그래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있었어요.\" 그녀의 눈동자가 커지며 혼자 있었던 상황을 상기하듯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가 안 빠지면 어떻해요?\" \"해 봐 야죠, 몸이 풀렸으니 다시 해봅시다. 신호를 보내면 2단 기어를 넣고 악세레다를 천천히 밟으세요.\" 준석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더 세차게 불어와 그의 귀를 매섭게 때렸다. 귀가 시렸는지 자라목처럼 고개를 기울이고 소리쳤다. “자, 밟아요.” ‘부응,붕’ “조금만 더, 더.” 준석은 끙끙거리며 차를 밀었다. 차는 움직일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만 갔다. 바퀴의 공회전으로 준석은 온통 눈을 뒤집어썼다. 혼자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이마에 묻은 눈과 땀을 옷깃으로 닦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준석의 옷에 묻은 눈을 보고는 차에서 얼른 내려 준석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미안합니다. 어쩌죠? 고생만 하시고. 옷이 다 젖겠어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겠네요. 제가 마을에 들러 사람들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준석은 옷에 묻은 눈을 맨손으로 털면서 차에 올라가 히터를 틀었다. 막 출발하려는 데 그녀가 차 창문을 두드렸다. 창 너머로 보이는 생머리의 그녀는 안스러워 보였다. \"저기요. 용평 스키장까지만 태워 주시면 안 될까요? 사례는 충분히 할게요. 부탁입니다.\"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끌리 듯 준석은 흔케이 응하고 말았다. \"...그러세요. 가는 길인데....\" 준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무도 없는 이런 곳에 여자 혼자 두고 간다는 게 마음에도 걸려 승낙을 했다. \"고맙습니다.\" 준석의 대답이 떨어지자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꾸뻑 하고는 바쁘게 짐을 옮겨 싣는 그녀를 도와 준석도 짐을 날랐다. 그녀 차에 있었던 검은 서류가방을 드는 순간 만원짜리 지폐가 삐져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준석은 잠시 멈칫했다. 별다른 일 없다는 듯 침착하게 보따리들을 뒷좌석에 그득하게 실었다. 옆 좌석에 앉은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이 좀 전의 생각과는 전혀 달라있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지나는 길이라도 한번쯤은 만난 듯한 느낌에 준석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짐이 많으시네요?\" \"네, 일주일정도 있을 거예요. 태워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꼼짝없이 여기서 밤을 새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차들은 왜 한대도 안 오는 거죠?\" \"눈이 많이 와서 인지 차량통제를 하나 봐요.\" \"오시는 데 힘들었겠어요?\" \"네, 조금.\" “전 월동장비를 준비 못했어요. 이렇게 눈이 많이 올 줄 몰랐거든요. 태워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두 사람 사이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 밟히는 쁘드득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이세요?\" 준석은 서먹한 분위기에 말을 걸었다. \"서울 대치동에서 출발했어요.\" \"아 그러세요. 저의 친척도 대치동에 사는데...\" \"전 이사 온지 얼마 안됐어요. 어릴 때부터 태능에서 살았어요. 스케이트장 바로 옆에...\" \"스케이트장이요?\" 준석은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네\" 그녀는 의아한 듯 준석을 쳐다보았다. \"아, 아닙니다. 낯설지가 않아서 혹시 어디서 뵌 분인가 해서요.\" 준석은 다시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스케이트를 잘 타세요?\" 그녀는 계속말의 꼬리를 물고 있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배우려고 스케이트장에서 살았어요. 그런데도 운동신경이 둔한지 아직도 잘 타진 못해요.” 준석은 좀 전에 보았던 검은 가방에 삐죽히 나와 있던 만원짜리 지폐?? 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나 문득 아내를 처음 만날 때 스케이트장에서 경숙과 의 생각이 떠올랐다. 부딪쳐 넘어진 인사성 바른 단발머리 여학생의 얼굴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있을 때 그녀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혹시 처음 스케이트를 배울 때 많이 넘어 지셨나요?\" \"예, 친구랑 갔는데 너무 많이 넘어져서 부끄러웠어요. 그 땐 하도 많이 넘어져서요. 엉덩이에 불이 났었죠.\" 엉덩이를 들썩이는 그녀의 우스꽝스런 행동에 준석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스케이트 잘 타는 사람이 몇 번씩 일으켜 준적도 있으시죠?” 그녀는 준석을 힐끗 쳐다보다가 갑자기 무슨 신기한 것이라도 찾아낸 듯 두 손을 마주 잡고 소리쳤다. \"혹시? 아! 맞아요. 제가 스케이트를 사서 처음 배울 때 어떤 분이 몇 번씩 일으켜 줬는데...그분은 너무 잘 타서 부러웠어요. 그 분이 혹시......\" 그녀는 준석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준석도 확신이 생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사람이 바로 저 같은 데요.\" \"어머! 그래요. 맞아요. 맞아!\" 그녀는 너무 반가워 자신도 모르게 준석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잡은 것이 부끄러웠는지 슬며시 손을 빼면서 말했다. \"참 신기하네요. 세상은 넓고도 좁은가 봐요. 어쩜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요?\" \"인사성이 밝아서 저도 기억에 남았었나 봐요.\" \"이렇게 또 도움을 받네요. 정말, 정말......\"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스케이트장에선 가끔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곤 하죠. 몇십년 만에 이렇게 만나기도 하고요.\" 준석은 갑자기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우연(偶然)과 필연(必然)의 열매이다.' 라는 데모크리토스의 명언이 생각났다. \"그 후에도 아주 우스운 일들이 있었어요.\" 그녀는 얘기도 꺼내기 전에 입을 가리고 ‘쿡쿡’ 거렸다. 준석은 그녀를 보며 따라 웃었다. \"한번은 스케이트를 타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옆에 서 있던 아저씨의 추리닝 바지를 붙잡았는데, 그만 아저씨의 바지가 벗겨졌어요. 그런데 글쎄 그 아저씨 알몸이 드러났지 뭐예요. 저는 너무나 놀라고도 웃으웠지만 아저씨가 당황해하며 엉거주춤거리는 모습과 표정을 보고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어요. 아저씨는 어쩔 줄 몰라하며 한 손으로 앞을 가리고 한 손으론 바지를 치켜올려 잡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갔어요. 아저씨가 사라지자 친구와 둘이서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한편으론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웃음도 나오지만 그 아저씨한테 미안했어요.\" \"정말 미안했겠네요.\" \"예, 정말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나 들으며 갈까요?” “네 좋아요. 참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이정인이예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저는 김준석입니다.” \"요즘은 가끔 스키 타러와요. 눈을 가르고 내려올 땐 정말 짜릿해요.\" \"전 중학교 때부터 탄걸요. 어, 어-어\" 순간 차가 눈에 빠지는 듯 한쪽으로 쏠리며 헛바퀴가 돌다 간신히 빠져 나왔다. \"운전을 참 잘하시네요. 저 같았으면 차가 빠졌을 거예요.\" 그녀의 칭찬에 준석은 우쭐했다. “오늘 아침 일찍 식구들이 콘도로 먼저 떠났는데 저는 공장 일을 좀 보다가 늦었어요.\" \"공장이요?\" \"네, 그냥 자그마한... 년말이라 바빳어요.\" \"눈이 너무 많이 오네요\" 준석은 그녀가 공장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안은 것 같아 고개를 조금 돌려 차창을 내다보며 말했다. \"어머! 너무 아름다워요.\" 그녀는 차 창 밖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설경에 탄성을 질렀다. 산 전체가 눈으로 덮여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은 차 지붕 위에도, 차창에도 달라붙어 차체는 무거웠고, 좁은 실내를 압박하여 귀가 먹먹하여 작은 잡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준석은 눈뿐인 적막한 밤길에 생각지도 않은 길동무를 만나, 그것도 젊은 여자와 단 둘이 가고 있다는 것이 그에겐 야릇함 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눈길에 그는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차량이라곤 오직 그가 운전하고 있는 차 뿐, 도로 위엔 그 어떤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온통 눈으로 가려져 어디가 어딘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어 한참을 헤메고 있었다. \"저기요. 저리로 가세요. 저기가 나가는 길 같아요.\" 준석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차 바닥이 눈에 '북 북' 글키며 준석은 간신히 마을길로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주위엔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둡고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눈 쌓인 길은 갑자기 좁아지더니 아예 오솔길로 바뀌어 버렸다. \"길을 잘 못 들어선게 아닐까요?\" 그녀는 걱정이 되었는지 얼굴을 차창 가까이 대고 내다보고 있었다. 준석도 그녀 말대로 길을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 길밖에 갈 수가 없었다. 차량이 한 대 간신히 갈 수 있는 오솔길 모퉁이를 도는 찰나였다. \"아! 아니, 아!......\" 눈앞에 펼쳐진 기막힌 설경에 준석의 입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라이트에 비쳐진 곧게 뻗은 눈 터널을 보는 순간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경치는 이제까지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광경이었다. 준석은 어릴 적 보았던 동화책 속의 눈 나라에 초대 된 것 같았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sweet people 의 sunset dream 음률이 허밍으로 화음 되어 차 안에 웅장하게 퍼졌다. 음악은 눈앞에 펼쳐진 설경과 어우러져 그들의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고 있었다. 아름다운 천국에 온 듯 황홀감에 그들의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여기가 천국일까?’ 준석은 이곳으로 올때 느꼈던 천국의 길을 떠올렸다. 하늘에선 계속 눈이 내렸다. 제설 작업으로 길 양옆으로 쌓아 놓은 눈 무덤이 가슴만큼 높이 쌓여 있어 눈으로 싼 성벽처럼 되어 있었다. 그 담 사이 사이에 길 양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있는 가로수 위에도 눈이 많이 쌓였다. 나무 가지는 눈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서로 의지하며 맞닿아 있었고 그 위로 눈은 가득 덮여있었다. 그 나무들은 눈 지붕이 되어 있어 어느 것이 어느 쪽 가지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들 엉켜 있었다. 솜으로 만들어 놓은 동굴을 연상하며 눈 터널 속으로 그의 차는 미끄러져 들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눈 터널, 온 세상이 다 그의 것 인양 준석은 천국에온 꿈을 꾸듯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행여 나무 위에 쌓인 눈이 떨어질까 조바심하며 준석은 숨소리마저도 가느다랗게 쉬고 있었다. 눈과 함께 듣는 음악은 몽롱함마저 불러 일으켜 준석은 그야말로 완벽한 행복감에 젖어 온 몸이 붕 붕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저 만치 앞에 먹을 것을 찾는 듯한 회색 빛 산토끼가 눈 속에 다리가 빠진 채 불빛을 쳐다보며 측은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차가 가까워지는 데도 산토끼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나무 위에 쌓인 눈 뭉치가 '퍽' 소리와 함께 차 윈도우에 떨어졌다. 눈이 떨어지자 \"앗\" 하고 깜짝 놀라는 그녀의 외마디 소리에 그는 그 때서야 옆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는 것을 의식했다. 준석은 브러쉬를 빠르게 작동 시켰다. 간신히 브러쉬 자국만 내며 보이는 시야는 더욱 좁아져 마치 TV화면을 보듯이 작은 화면으로 보였다. 옆에 앉아 있는 그녀도 설경에 취한 듯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혹시 저 토끼가 먹을게 없을 까요?\" 준석은 토끼가 움직이지 못해 굶어죽을 것 같아 염려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감자나 당근 같은 거 있어요.\" “식구들 카래 해줄려고 마련한게 있어요.” \"음- 당근이 좋겠네요.\" 준석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뒷좌석에 있는 작은 보자기에서 당근 두 뿌리를 꺼내어 토끼에게 던져 주었다. \"토끼가 잘 찾아 먹을 수 있을까요?\"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차는 눈 언덕을 간신히 오르고 있었다. \"너무 황홀해요. 눈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들은 경이로운 자연의 조화 속에 빠져 있었다. \"저도 이런 경치는 처음입니다.\" 그들은 황홀감에 들떠 설레이고 있었다. \"저기요. 저 언덕 위에 차를 좀 세워 주실래요?\"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온 걸 처음 봤어요. 한번 밟아 보고 싶어요.\" 그는 언덕 정상에서 조금 내리막에 차를 세웠다. 왼쪽은 가파른 산이고 오른쪽은 낭떠러진지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조심하세요.\" \"네 에.\" 그녀는 문을 열고 길옆으로 몇 발짝 걸어갔다. \"아,악\" 순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준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낭떠러지에......’ 아무도 없는 깊은 산골이라 준석은 더럭 겁이 났다. 그는 짧은 시간인데도 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혹시 그녀가... 귀신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며 그의 등골은 오싹했다. 그러나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준석은 순간 튕기듯 차 문을 밀치고 튀어 나갔다. 주변은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었고 그의 시야엔 그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준석의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반사적으로 트렁크를 열어 손전등을 꺼내 들고 그녀가 걸어간 어두 컴컴한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눈은 발목 위를 덮어 구두위로 녹은 눈이 슬며시 양말 속으로 젖어 들었다. 발자국을 따라 손전등을 비추며 이리저리 살펴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절벽 쪽으로 없어졌다는 생각에 준석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정인씨! ----\" 그는 소리질렀다. 눈이 와서인지 허공인데도 메아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인씨, 어디 있어요.\" 그녀가 대답이 없자 정신나간 사람처럼 여기저기 마구 방향을 바꿔가며 소리쳤다. “정인씨--- 어디 있어요. 정인씨---정인씨---” 준석은 손나팔을 만들어 계속 소리쳤다. \"여기예요---\" 적막을 깨고 그녀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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