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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그대 눈꽃이여)8편
김병국 2016. 01. 25. 오전 10:06
4291
김병국 2016. 01. 25. 오전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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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덜 말라 척척했지만 행동은 훨씬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서로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윈도우 부러쉬 자국으로 간신히 보이는 바깥 풍경, 밖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라이트 불빛에 반사된 눈이 차창으로 들어오는 착시현상(錯視現狀)을 일으키며 마구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옷도 다 말랐는지 그녀는 옷을 입느라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힐끗 보이는 그녀의 깊숙한 다리는 다시 한 번 준석을 자극하고 있었다.
왜 자꾸 그녀에게로 시선이 가는지 그의 본능은 이성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녀가 엉덩이를 들고 바지를 올릴 때, 레이스가 달린 팬티 입은 앞모습을 그는 보았다.
그는 설레임으로 일렁이는 가슴을 억누르려고 숨을 깊게 드려 마셨다.
옷을 다 입은 그녀는 안심이라도 한 듯 준석을 보며 가까이 다가 앉았다.
정인은 눈 웅덩이에서 헌신적으로 자신을 구해주려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마치 오래사귄 연인처럼 신뢰가 생겼다.
'눈(雪)을 닮은 사람!' 그렇다 그는 분명 눈을 닮아 있었다.
그의 마음은 너무도 미약해서 작은 온도에 녹아 버릴지도 모르는 그런 천진스런 눈을 닮아 있었다.
\"저기요. 저... 술 한 잔하고 싶어요.\"
정인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불쑥 튀어 나왔다.
\"... 그럴까요? 하지만 저는 한잔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걸요.\"
\"저도 그래요. 하지만 오늘은 와인이라도 한잔 하고 싶어요.\"
처음 만난 사람끼리 눈 웅덩이 사건은 그들을 거리감 없이 친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온 생각 저편엔 각자의 생활이 깔려 있었다.
가도 가도 눈 덮인 도로 위, 용평 쪽으로 나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주위에 모든 표지가 될 만한 것은 눈에 덮여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길이 나있는 곳으로 한없이 가야만 했다.
\"우리 그냥 경포대 쪽으로 가요.\"
정인은 준석과 아무 데라도 가고 싶었다.
가끔 눈에 바퀴가 빠져 그녀가 운전을 하고 그가 밀기도 했지만 하나도 힘든 줄 몰랐다.
그들은 서로를 알리기 위한 얘기를 잠깐 나누었다.
그녀의 취미는 여행과 음악을 즐겨 들으며 사업을 한다고 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사업이라니......'
준석은 그녀의 차에서 짐을 옮겨 실을 때 보았던 검은 가방에 삐죽이 나와 있었던 만원권 지폐를 떠 올렸다.
무슨 사업인지 궁금했지만 준석은 꼭 알고 싶진 않았다.
어느덧 험준한 시골길을 벗어나 강릉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새벽2시에 가로등만이 깜박일 뿐 도로에는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아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다.
이따금 길옆에 들어선 그리 높지 않은 빌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준석은 이런 눈 내리는 고요한 밤... 옛날 아버지의 일을 도와 밤새 장부정리 할 때가 생각났다.
사업이 번창해져 미처 직원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시던 아버지를 잠시 도와 드렸는데, 지금처럼 이런 고요한 시간에 밤새워 일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한창 젊은 나이에 꿈에 부풀어 들떠있어 천방지축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했던 때가 그립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네-에, 아버지 생각을 좀 했어요.\"
\"부모님은 다 계신가요?\"
\"네, 두 분 모두 계세요. 아버지는 젊었을 때 부터 효자 셨대요. 효자는 하늘이 알아준다고 피난 때는 많은 덕을 보았대요.\"
\"준석씨도 효자시겠네요. 아버님처럼.\"
\"전 그렇지 못해요. 아버지를 닮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마음 같지 않아요. 연로하신 아버지를 뵐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그 옛날처럼 아버지에게 야단도 맞고 종아리도 맞고 싶은데......“
\"저도 그래요.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알 것 같은 데도 그게 마음대로 안돼요.\"
\"사람은 다 그렇게 사는가 봐요.\"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미쳐 모르다가 막상 돌아가시면 그 때 후회들을 하니...... 인간은 그렇게 미련한 존재인가 봐요.\"
정인은 잠시 눈시울을 붉히는 듯 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의 아버지는 몇 년 전에 중풍(中風)이 오셔서 지금 까지 고생을 하고 계셔요.\"
\"거동을 못하시나요?\"
\"병원에 다니고 계시지만 정상인 같진 않아요. 조그만 일이 생겨도 울기부터 하세요.\"
\"중풍은 약과 운동으로 정신과 근육이 굳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런가 봐요. 병원에서도 별다른 약이 없대요. 그래서 지금까지 물리 치료만 하러 다니세요.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도 제가 대신 맡아서 해요.\"
\"아! 네, 아까 사업하신다는 게 그 얘기였군요. 아버님은 혈 요법으로 기가 막히지 않도록 하셔야 할거예요.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빠르게 굳어져서 움직이기조차 힘들게 됩니다.\"
\"침에 대해서 잘 아시나 봐요?\"
\"네, 조금.\"
\"그럼 한의원하세요?\"
\"네. 아현동에 원장님이 연세가 많아 모든 일을 제가 맡고 있습니다.\"
\"어머! 그래요, 그리로 치료를 받으러 가면 되겠네요.\"
\"거리가 멀어 불편하시니 가까운 곳에서 치료를 받으세요. 환자가 너무 힘들어도 좋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부모님얘기로 서로 친근감을 더하게 되었다.
그런 사이 차는 강릉 시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낮엔 북적거렸을 거리가 마치 만화 속에나 나올법한 유령도시처럼 조용했다.
상점들은 문을 굳게 닫고 이따금 덧문 없는 윈도우에 털옷 입은 마네킹만이 외로이 이 밤을 지키고 있었다.
이따금 도로가 반질반질해 차가 한쪽으로 미끄러지면서도 시내를 빠져 나와 어느덧 경포대까지 왔다.
달이 세 개나 뜬다는 경포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호수가 얼어서 눈이 쌓여 하얀 들판이 되어 있었다.
눈덮인 호수에 비친 달은 흐릿했지만 그 빛은 은은한 신계빛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호수가의 마른 갈대위에 덮인 눈이 고혹스런 달빛을 받으며 비추고 있었다.
준석은 마음속 화폭에 가득 그림을 그려 넣으며 정인에게 말했다.
\"우리 저기 들어갈까요?\"
정인은 나이트 크럽을 가리켰다.
그들은 호수 옆 클럽 간판에서 깜박이는 화려한 네온의 불빛을 따라 크고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그 곳으로 들어갔다.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들의 사진이 복도 양옆에 걸려 있어 삼류 클럽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제복 입은 웨이터가 '어서 옵쇼' 인사말을 뒤로 하고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현란한 음악이 흘러 나왔지만 홀에는 서너 명의 남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정신을 빼 놓듯 현란한 음악은 그들의 흥을 부추기고 있었다.
준석은 삼페인을 시켰다.
웨이터는 생일이면 축하곡을 틀어 준다고 한껏 우쭐대며 거드름을 피웠다.
준석은 오른손을 약간 들어 정중히 거절했다.
웨이터가 들고 온 샴페인 병을 들고 막 따려 할 때 테이블위에 그냥 놔달라고 했다.
준석은 그들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게 웬지 싫었다.
음악은 쎅스폰 연주로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고 흐릿한 조명등과 음악이 어우러진 그들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드가 있어 보였다.
좀 전 홀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이 들어와 시끄럽게 소리치며 떠들기 시작했다.
준석도 삼페인을 흔들어 될 수 있는 한 소리를 크게 내고 싶었다.
'뻥' 소릴 내며 샴페인은 분수처럼 솟구쳤다.
옆자리에 앉은 그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술 취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군중심리로 그러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와의 만남을 자축이라도 하듯 빈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흐릿한 홀 실내등은 쎅스폰 연주와 혼합하여 끈적거리며 음침하기까지 했다.
술잔을 비운 준석은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둘은 홀에 나가 스텝 없는 춤으로 그냥 한발 한발 내키는 대로 움직였다.
서로들 몸의 밀착만으로 그들은 행복해 했다.
블루스 곡이 끝나고 신나는 디스코 곡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돌변한 기분으로 둘은 마구 흔들며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으로 흔들었다.
그녀는 천진스런 모습으로 막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도 음악에 취해 열정적으로 정열을 발산하고 있었다.
신비스럽기까지 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그는 신이 들린 듯 했다.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자제로 추는 그의 춤은 음악 바로 그 자체였다.
그들은 정신없이 몇 곡을 추다 보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어 마치 17.8 세 소년 소녀 같았다.
곧 이어 불루스 곡이 흘러 나와 그들은 자연스레 부여안았다.
그녀에게서 풍겨 나온 싱그런 땀 내음과 화장품 냄새가 어우러져 묘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텅 비어있던 테이블엔 어느새 10여 팀이 자리를 하고 있었고 그들은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마 그들이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을 때 들어온 모양이었다.
넓은 훌로워에 준석과 그녀 둘만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한꺼번에 사람들이 단체로 온 걸 보면 합숙 훈련 중인 운동 선수들 같았다.
준석은 그들에게 구경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갑자기 쑥스러워졌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훌로워를 빠져 나와 그들 테이블 사이로 걸어 나왔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이며 찬사를 보냈다.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준석은 어안이 벙벙했다.
한 사람이 술병을 들고 쫓아와서 술을 권하기도 했다.
그녀와의 만남이 그에게는 가슴이 벅차 그저 그렇게 옆에만 있어도 좋고 흐뭇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자 조금 전 환호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음악에 끌리듯 훌로워로 몰려나갔다.
그녀는 피곤한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그만 일어날까요?“
준석이 정인의 손을 잡고 일으키려할 때였다.
“준석아 !” 누군가가 준석을 부르며 다가왔다.
철민이 준석의 앞을 가로막으며 여긴 웬일이라며 길을 막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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