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설화목 (제 31편)

김병국 2016. 08. 23. 오후 08:04
4068
그녀의 무기력해진 위장엔 생식이 부담이 가긴해도 고비만 잘 넘기면 좋은 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준석은 자신도 정인이와 같이 생식을 시작했다. 산에 올라 약초를 캐야만 하는 준석은 생식밖에 할 수 없는 그녀 앞에서 다른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엔 허기가 져 하늘이 노랗고 헛것이 보일 정도였다. 그 보다도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정인이가 피를 토해낼 때였다. 그녀가 느끼는 통증만큼이나 준석의 가슴도 어느새 이상 징조가 오기 시작 했다. 그들은 열흘 정도가 지나서야 생식에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다. 준석은 매일같이 산에 올라 반천하수를 담아오고 여러 가지 약재를 찾아 다녔다. 그의 몸은 온통 찔레와 멍가 가시에 찔리고 긁혀 항시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생활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준석은 나무를 올라가는 연장을 빌리러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 한 분이 준석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분은 젊을 때부터 약초를 캐서 생활하시는 분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산과 더불어 살아오셨는지 온몸이 산악에 잘 적응되어있었으나 등은 약간 구부정했다. 그런 관계로 평지를 걸을 땐 걸음걸이가 보통사람과 달리 엉성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엉성이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정인이가 통증에 시달리다 잠이 들 때면 준석은 엉성이 할아버지께 내려가서 약재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할아버지는 오랜 경험으로 문헌에도 없는 진귀한 약초를 많이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치질에 좋다는 지취와 바위취, 간에 좋은 엉겅퀴 풀뿌리하며 결석에 좋다는 닭 풀, 소화 불량이나 위통에 좋은 자주쓴 풀 관절에 좋은 마가목이나 한삼덩굴 등 그 중 준석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암에 좋다는 이름 모를 나무뿌리였다. \"어떻게 생겼어요?\" \"줄기에 가시가 나있고, 빨간 열매에 잎은 삼 잎처럼 생겼는데 좀 두꺼워.\" \"그럼 멍가 아니예요.\" \"멍가는 내가 알지, 가시 오가피처럼 줄기에 가시가 많아, 줄기가 너무 강해서 잘 끊어지지 않지.\" \"내일은 아침 일찍 그 뿌리를 찾으러 가야겠어요.\" \"김 선생은 잘 모를 테니 나와 같이 갑시다. 그보다 그렇게 약한 몸으로 산을 탈수 있을지 모르겠군.\" 엉성이 할아버진 준석이 많이 고생 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돕고 싶었다. \"등산을 자주해서 따라 다닐 수 있을 거예요.\" \"산이란 그렇게 얕잡아 보면 안 되는 거야, 체력이 딸려 처지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어 그러니 서로들 수시로 나무를 두둘겨 소리로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며 다녀야 되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준석은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시는 엉성이 할아버지가 참으로 고마웠다. 그는 다음날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산에 올라 여기저기 정인이가 먹을 산나물도 캐며 지칠 줄 모르고 뛰어 다녔다. 그러나 정작 찾아야 할 암에 좋다는 그 뿌리는 찾지 못했다. 실망한 듯한 준석의 표정을 본 할아버지는 그를 위로했다. “다음엔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보자구.” “괜찮아요. 할아버지가 힘드실 테니 다음엔 저 혼자 찾아보겠습니다.” “난 50 년을 산에 다닌 사람이야 그 나무는 내가 잘 아니 같이 가자구, 그런데 김 선생은 어쩌면 그렇게 산을 잘 타나, 마치 날다람쥐 같구먼.” “할아버지만 따라 다녔는데요?” “아니야 동네에서 힘깨나 쓰고 산을 잘 탄다는 건장한 산골 청년들 보다도 더 잘 타는 걸” “몸이 가벼워서 그럴거에요” 사실 준석은 정인이를 고쳐보겠다는 간절함에 힘 드는 줄도 모르고 산을 헤메고 다녔던 것이다. 준석은 잠시도 쉬지 않고 다음날에도 또 그다음날도 산을 두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까치가 오두막 앞마당에서 깡충깡충 걸어 다녔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란 기대감에 준석은 산을 올랐다. 준석은 정인이 몰래 싸온 점심에 먹으려던 주먹밥 한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먹으려는 순간 그의 눈에서는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정인이도 이런 주먹밥을 웃으며 같이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준석은 낙엽송 과 잡목이 어우러져 바닥엔 낙엽송 잎과 참나무 잎이 쌓여 푹신 거린 곳에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보고 누웠다. 준석이 누워있는 머리 쪽에서 새소리가 '짹 짹' 들리고 가을햇살은 나무를 비집고 그를 비추고 있었다. 너무나 조용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좌청룡 우백호의 가운데 자리하고 누웠던 자신을 발견하고 한 곳에 시선을 멈추었다. 수십 년이 된 아름 들이 소나무 옆에 마치 우산을 펼친 것 같은 방사형 잎은 4구 5엽 과 5구 5엽으로 보이는 두 그루의 산삼을 발견했다. 하늘이 내려준다는 명약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준석은 옷매무새를 바로하고 산삼을 향해 넙죽 절을 하곤 두 손을 모아 나팔을 만들어 정인이를 향해 외쳤다. \"정인아 ! 심봤다. 정인아 ---\" 준석은 뛸 듯이 기뻤다. 그는 조심스럽게 맨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구린 냄새가 확 풍기며 긴 뇌두가 보이자 준석은 다시 한 번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잔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파헤치니 엄지 손가락만한 산삼 몸통이 햇살에 비쳐져 신비스러울 만치 영롱하게 빗을 발하고 있었다. 준석은 산삼 두 뿌리를 상하지 않게 베낭에 넣으며 어쩌면 정인이의 병이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준석은 갑자기 희망에 부풀어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산신령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준석은 중얼거리며 산을 내려왔다.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미끄러져 넘어지기를 반복하다보니 무릅과 팔꿈치에선 핏멍이 들어 쓰렸으나 준석은 마냥 신이 났다. 마침 산 중턱에서 쉬고 계시는 엉성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준석은 너무나 반가웠다. 나이가 들어 기름기가 없어서인지 할아버지의 얼굴에 주름살은 골이 더욱 깊어 보였다. \"할아버지, 산삼을 캤어요. 이거 보세요.\" 준석은 신이나서 메고 있던 베낭을 벗어 엉성이 할아버지께 자랑을 했다. \"아니, 어떻게 이 귀한 것을 캤어? 한 50 년은 된 것 같은데.\" 할아버진 손을 약간 떠시며 산삼을 들었다. 쭈굴쭈굴한 손을 보니 아버지의 손을 연상하고 갑자기 할아버지가 측은 해 보였다. \"그건 할아버지 드세요.\" 준석은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산삼을 드시라고 했다. \"다 늙은 게 이 귀한 것을 먹어서 무얼 하겠나. 색시를 먹이게, 그러면 병이 확 달아날 걸세.\" \"한 뿌리만 먹이면 돼요. 그건 드세요.\" 엉성이 할아버진 극구 사양하시며 들고 계시던 망태기 속에서 하얀 실 같은 것을 꺼내서 준석의 배낭에 넣어주셨다. “이게 뭐예요?” “이건 송라라는 것인데 암환자에겐 무척 좋은 것이 라네” “말로만 들었던 그 비싼 송라 아니에요?” 소나무에서 기생하는 송라는 매우 귀한 약재였다. “이 귀한 것을 직접 보니 기분이 묘하네요?” “어서 내려가서 환자에게 다려주게” \"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럼 저 먼저 내려갈게요.\" \"저런, 저런 조심해서 내려가게, 그러다 다치겠네.\" 엉성이 할아버진 준석이 뛰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준석은 너무나 기뻐 베낭을 덜렁거리며 한달음에 오두막으로 뛰어 내려갔다. 준석은 산삼 뿌리를 맑은 물에 살 살 흔들어 흙을 씻어 내어 잘게 썰었다. 산삼 담은 접시를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가 누워 있던 정인을 일으켰다. \"물이 될 때까지 꼭꼭 씹어 먹어!\" \"이게 뭐예요?\" \"응, 약이야.\" 정인은 조금 씹더니 준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인삼 같아요.\" \"응, 산삼 캤어.\" \"아니! 산삼을요?\" 정인은 놀란 듯 토끼 눈을 하고 준석을 쳐다보았다. \"그런가 봐, 산신령님이 우리 정인이 빨리 나라고 내게 주셨나 봐, 이걸 먹고 빨리 나야지!\" \"당신도 같이 먹어요.\" \"아니, 난 괜찮아 건강하잖아.\" “싫어요. 그럼 안 먹을래요.” 할 수 없이 준석은 아주 작은 뿌리를 집어 입 속에 넣었다. 삼 냄새가 입안 가득한 게 향이 너무나 싱그러웠다. 정인은 그 때서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더 드세요.\" \"어서 먹어. 또 캐면 그 때는 많이 먹을게. 빨리 나야지!\" 준석은 남은 것을 정인이 입에 집어넣었다. 산삼 한 뿌리를 먹고 난 정인은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푹 자는 것 같았다. 다음날에 엉성이 할아버지가 준 송라와 나머지 산삼을 넣고 주전자에 하나 가득 달였다. 미숫가루에 타서 그녀에게 먹였더니 대낮부터 깊은 잠에 취해 있었다. 그녀의 식사는 산에서 캐 온 산나물 이긴 것 과 생 곡식으로 만든 미숫가루, 감자와 채소류 즙, 인삼 물, 홍경천 다린 물 그리고 손가락 과자 등이 전부였다. 산삼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그녀의 통증이 덜한 것 같았다. 조금씩 좋아지는 그녀를 바라보면 준석은 불뚝불뚝 힘이 솟았다. 하지만 준석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암을 치료할 신비스런 약이 어딘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한 가닥 희망을 가져 보지만 역시 생각뿐이었다. 준석은 매일같이 산에 올라 여러 가지 산나물과 약재를 찾아 다녔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한다고 무엇인가 특효약을 계속 구해야만 했다. 오후 늦게 한섭이와 지혜가 오두막에 찾아왔다. 오랜만에 도시사람을 만나니 반가웠다. 먹을 것을 잔뜩 싸 들고 왔지만 정인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길 찾느라고 한 시간은 헤맸어, 여긴 공기가 진부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아니! 네 손이 왜 그래?\" 한섭은 마치 두꺼비 손처럼 거칠어진 준석의 손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지혜는 한섭이의 말을 듣고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준석의 손을 보았다. 순간 지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지혜는 정인이 옆에 앉아서 혈압과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정인씨 많이 좋아 진 것 같아요.\" \"그렇지? 많이 좋아졌지?\" 준석은 정인에게 힘을 주려고 지혜에게 강조하며 되물었다. \"네 그래요. 정말 많이 좋아 지셨네요. 혈색도 좋아 보여요.\" 한섭은 준석을 밖으로 불러냈다. \"정인씨는 정말 나아지는 거니?“ “응, 너도 봤잖아!” “글세?” 한섶은 준석이가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바라보며 측은해 보였다. “참, 아버님이 아시고 아이들을 팽겨치고 어디로 쏘다니는지 난리가 났었어. 어디로 갔는지 알려 달래시는 거야.\" \"어떻게 아셨는데?\" \"뻔하지, 애들 이모겠지?\" \"여긴 절대로 너희 둘만 알고 알려 주지 말어!\" \"알았어, 그러나 너 정말 괜찮겠니? 무섭지 않어?\" \"처음엔 오기가 나서 몰랐는데 시간이 갈수록 좀 그래.\" 준석은 부엌에 들어가 그들에게 밥을 해주려 했더니 어느새 지혜가 들어와 준석을 떠밀며 나가 있으라고 했다. 지혜는 나물을 무치다 말고 잠시 눈을 감았다. 선생님의 사랑이 하늘에 닿아 정인씨의 병이 꼭 완쾌되기를 빌었다. 지혜는 준석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가끔 이곳에 와서 그를 도와 정인을 치료하는 거라 생각했다. 반찬 없는 시골 밥이지만 무쇠 솥에 한 밥이라서 인지 그들은 맛있게 먹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밀린 얘기를 하고 어두워 져서야 오두막을 내려갔다. 두 사람이 떠난 자리는 휑하니 빈 듯 한동안 안정이 되지 않았다. 정인에 눈치를 보니 사람들이 많이도 그리웠던 것 같았다. 준석은 한섭에게 연락을 해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분은 정인에게도 도움이 안되지만 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높은 산 바위틈에서 이상한 풀을 하나 발견했다. 도저히 풀이 자랄 수 없는 바위 틈바구니에서 흔하지 않은 풀이 가느다랗게 돋아나 있었다. ‘혹시 저 풀이?’ 아무 장비도 없이 절벽을 오른다는 건 무리인 줄 알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절벽 바위를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닿을 듯 말듯 가파른 절벽에서 파르르 떠는 손과 다리에 온몸을 지탱하고 준석은 그 풀이 명약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간신히 세 뿌리의 풀을 움켜잡는 순간 그는 눈앞이 아찔해 지며 그 높은 바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자칫하면 튕겨져 나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운이 좋게도 그는 바위중간에 삐죽이 자란 잡목가지에 걸렸다. 그의 옷은 찢어지고 오른쪽 가슴과 옆구리 쪽이 쓰린 듯 하더니 무언가 축축해져 왔다. 아프고 쓰라림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손에 든 풀이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준석은 아슬아슬한 나무 가지 하나에 두 목숨을 거머쥐고 있었다. 그가 죽으면 정인이도 죽는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준석의 손엔 그 자그마한 잎이 달린 풀뿌리와 손에서 흐르는 피가 엉겨 붙어 끈적거리고 있었다. 가슴은 쓰리고 아파 왔으나 이상하게도 그의 눈앞엔 정인이의 얼굴이 환하게 떠올랐다. 정인이만 살릴 수 있다면 이런 아픔쯤 얼마든지 감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겐 이 풀이 무언지 모르는 어떤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희망이 솟구쳐 힘을 얻은 준석은 긁힌 가슴이 쓰라리고 손톱이 뒤로 젖혀져 피가 나고 몹시 아팠지만, 그는 마치 원숭이처럼 벼랑을 타고 내려 왔다. 그녀가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빨리 오두막으로 가야 했다. 날은 어두워 주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산 계곡을 타고 ‘쌕’ 소리내어 부는 바람에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 몇 번이고 돌 뿌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준석은 신이 났다. 아직도 한 고개를 더 넘어야 오두막이 있는 곳이다. 준석은 힘이 빠져 다리가 휘청거려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정인이가 기다리는 오두막에 가야 한다는 일념과 암흑 같은 산속의 두려움에 가슴의 통증도 잊은 채 그는 정신없이 길 없는 산행을 해야 했다. 어떻게 내려 왔는지도 모르게 그의 눈앞엔 따뜻한 불빛의 오두막이 나타났다. 정인이가 있는 오두막, 등잔에 불을 밝히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정인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뿌듯해져 왔다. 다 왔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고 상처난 가슴의 통증과 함께 손톱이 빠질 듯이 쓰리고 아파서 불빛에 보니 검지와 중지 손톱 두 개가 반쯤 꺽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준석은 정인에게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집 앞을 흐르는 계곡 물에서 피를 닦았다. 가슴과 손톱에 물이 닿으니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정말 참기가 어려워 그는 그만 '으아-앗'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인기척에 정인은 방문을 열고 맥없는 목소리로 그를 찾았다. \"이제 오세요? 많이 기다렸어요.\" 그녀의 힘없는 목소리가 측은하게 들렸다. \"빨리 들어오세요.\" \"응, 알았어.\" 준석은 옷이 찢어지고 피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이 들킬까 봐 얼른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빨리 들어오라고 성화였지만, 그는 한시 바삐 이 풀을 다려 보고 싶었다. 풀뿌리를 약탕기에 넣고 다렸더니 물이 붉게 우러나왔다. 뿌리 색과 달리 빨간 물이 우러나다니......? 준석은 혹시 독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분명 보통 풀과는 다른 것 같았다. 그는 혀로 독성을 감지하고 조금 마셔 보았다. 약간 떨떠름한 것 외에 혀에 마비증상도 없고 별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독초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환자를 먹인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좀 더 시간을 두고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잡풀이라 생각하니 맥이 풀려 그만 부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이런 것 때문에 죽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자 은근히 화가 치밀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모금 마셔 보았다. 그가 이렇게 무모하게 검증도 안된 풀 닳인 물을 마시는 것은 아버지 말씀 때문이었다. 준석의 고조할아버님은 전의 셨다고 했다.. 할아버지 대까지 의원 생활을 하셨다는 말씀 중에 간간이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의술에 대해 말씀 하신 적이 있었다. 전의 셨던 고조할아버님은 통정대부 벼슬에 의술이 신기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런 의술로 임금님을 돌보다 당파싸움 음모에 휘말려 멀리 유배를 당하셨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양반네와 민가 사람들이 유배지까지 찾아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많은 환자들이 몰려 왔다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고조할아버님은 약초에 대해 연구를 하셨고 그걸 책으로 쓰셔서 자손에게 까지 물려 할아버지까지 명의로 소문이 나 그의 아버지도 자라면서 보고들은 걸 준석에게 얘기 해주곤 하셨다. 그의 아버지는 요즘도 말씀하신다. 1.4 후퇴 때 피난을 나오면서 그 책들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는 말씀에는 분명 그 책에 적힌 수많은 약초효능은 대단했던 것 같았다. 그 때 들은 얘기로는 모든 식물은 스스로 살아가고자하는 보존능력을 가지고 있어 독을 간직한 것과, 환경에 보호를 받는 것 색이나 형태로 보호하는 것 등, 독초에 독을 뺄 수 있다면 명약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들이 준석에게 이런 무모한 행동을 하게 했는지도 몰랐다. 높은 바위틈에 서식하는 풀이라면 환경으로 보호하는 것임에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 독초는 안일거란 생각도 변함이 없었다. 그가 중국 갔을 때 T V 드라마 속에서 신비스럽다는 홍경천(紅景天)은 해발 1,700미터 이상의 고산 지대 바위틈에서 서식한다고 들은 적도 있었다. 다 죽어 가는 할아버지가 홍경천을 달여 먹고 할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장면이었다. 산삼의 10 배 효능이 있다는 홍경천, 그는 중국에서 그 약초를 구한 것을 정인에게 처음부터 복용을 시켰다. 아마 준석도 그 풀이 홍경천과 비슷한 약초일거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방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정인이가 통증이 오는가해서 그는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며 중얼거렸다. '정인아 이겨내야 해.' 그는 다친 가슴이 쓰려 왔지만 그녀 통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방으로 들어가 손을 주무르며 더운물에 웅담과 사향을 타서 먹이고는 아랫목에 묻어 놓은 다끈한 맥반석 을 배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배를 보니 뜸을 얼마나 많이 떴는지 하얀 살결이 보기가 흉할 정도로 얼룩이 져 있었다. 그녀의 통증은 며칠 전 보다는 빨리 가라앉는 것 같았다. 준석도 바위에서 미끌어져 다친 상처로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그녀 옆에 누워 금방 잠이 들어 버렸다. 정인은 목이 말라 눈을 떴다. 준석이 자신의 옆에서 웅크린 채 돌아누워 자고 있는 준석의 얼굴을 바라보다 그만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준석이 덮고 있던 이불한쪽 끝에 뻘건 피가 묻어 있어 무심코 이불을 들쳐 보다가 정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준석의 옷은 온통 피로 얼룩이진 채 옷이 말라붙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정인은 준석을 깨워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으나 가만히 피를 닦아 내고 약을 발랐다. 정인은 자기를 위해 이토록 몸을 돌보지 않는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끙 끙 앓고 있는 그의 옆에서 열이 나는 그의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주고 가슴에 상처를 살피며 밤을 새우다 시피 한 것이 다였다. 준석은 상처 난 가슴이 쓰리고 아파 눈을 떴다. 그의 손가락엔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준석이 일어나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이게 뭐야.\" 준석의 몸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가만히 있어요. 움직이면 안돼요.\" 정인은 준석의 한 쪽 어깨를 눌렀다. \"가슴에서 피가 많이 났어요. 좀 어지러울 거예요.\" 그녀는 마치 간호사처럼 의젓하게 말했다. 준석은 밤새 끙끙 앓고 있었던 것이다. \"몸은 어때요?\" \"괜찮아.\" 정인은 걱정스런 눈으로 그를 드려다 보았다. \"어쩌다 이지경이 됐어요?\" \"......\" 정인은 묻고 있었으나 준석은 약초를 구하다 바위에서 미끄러졌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식사시간에는 누운 채로 미수가루를 물에 타서 그의 입에 넣어 주기도 했다. 준석은 혼자도 먹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스한 그녀의 손길이 몹시 기분이 좋았다. 준석은 그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그녀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그런 모습을 본 정인은 숨죽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준석은 갑자기 몸을 돌려 정인을 끌어안았다. 한동안 그들은 울고 또 울었다. 준석은 산 사나이처럼 거칠고 뻣뻣해진 거친 손으로 정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준석의 배에서 \"꼬르룩 \" 소리가 났다. 정인이 배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서로들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들은 생감자를 하나씩 들고 와그작거리며 식사를 했다. 그것도 식사라고 식곤증이 났는지 둘은 곧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를 잤는지 '땡, 땡'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옛날 괴종 시계는 오후 두시를 알리고 있었다. 준석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서늘한 바람결이 온몸에 불어와 한결 상쾌했다. 뭔가 색다른 힘을 느끼는 듯 했다. 준석은 항시 해 오던 식사 준비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저께 바위에서 채취한 풀 달인 뻘건 약물, 그릇에 담겨져 있던 그 물이 없어졌다. 그녀가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뚜막엔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솥엔 하얀 쌀밥이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쌀밥이었다. 항상 먹던 들깨와 콩 다른 몇 가지를 말려서 담아 놓은 그릇들은 한 쪽으로 밀려 있었다.

댓글 1개

이 정현 2016. 09. 03. 오후 02:17

이 세상 어느 누가 ... 이토록 간절하게 모든 것을 바쳐 지극한 병 구환을 할 수 있을까요? 촌수도 없는 혈연관계를 떠나 숭고한 사랑 앞에 숙연해지고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더 할래야 할 수 없는 극기의 정성을 바친 주인공의 지고지순한 무결점 순백의 사랑에 찬탄하고 ... 뒤에 밀려 오는 허탈감이 지레 걱정됩니다 풍부한 산야초의 지식과 간병이 흥미롭습니다 선생님 !!! 다음호도 서둘러 올려주세요 잘 읽고 갑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