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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목 제 37편
김병국 2016. 10. 25. 오후 09:15
3740
김병국 2016. 10. 25. 오후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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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요. 어서요.\"
정인은 땀을 흘리며 잠꼬대를 하고 있는 준석을 흔들어 깨웠다.
준석이 눈을 떠보니 정인이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꿈' 아! 너무나 생생한 생시 같은 꿈이었다.
준석은 한숨을 내 쉬었다.
그의 악몽은 정원에 나가 그녀가 먹고 싶어 했던 돌 구이 식사를 하고 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준석은 그녀와 약속했던 빠따야 섬으로 마지막 여행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들은 태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인은 어디를 가든지 잠시도 준석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물며 비행기 트랩에 오르는 순간에서도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일 년 전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치 짐짝처럼 늘어진 채 준석의 차에 실려 강원도로 떠날 때, 그녀는 자신이 살아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단지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그녀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 간절하고도 처절한 소망뿐이었는데......
이제 다시 건강한 몸으로 사랑하는 그이와 함께 외국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지금,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비록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약간은 촌스러운 듯도 했지만 그녀는 세상을 향해 막 외치고 싶었다.
\"나는 지금 너무나 행복해요.\" 라고.
준석의 손을 잡고 쳐다본 하늘은 너무도 맑고 높았다.
그녀의 얼굴엔 싱그런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정인은 연신 방글거리며 준석의 손을 잡고, 팔장을끼고 기대며 행복해 했다.
구름 위를 나르는 비행기 안에서 준석은 정인의 손을 잡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와 손을 잡고 뭉게구름 사이를 떠다니고 싶었다.
순간 비행기는 기류의 변화로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 댔다.
준석은 정인을 꼭 끌어안았다.
차라리 이대로 떨어져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 기체는 안정을 취했고 무사히 활주로에 내릴 수 있었다.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탈 때 꽃을 든 예쁜 아가씨들이 생화로 만든 꽃다발을 목에 걸어 주었다.
관광 수입으로 나라 경제를 일으킨 나라처럼 그들은 작은 일에도 세심한 배려를 했다.
빠따야 해변은 비취색 물색에 백사장은 밀가루처럼 하얗고 보드라웠다.
바다 가운데 기다란 배를 탄 20 여러명의 사람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하나같이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불교 나라답게 바다에서도 기도를 한다고 불심이 강한 나라는 역시 다르다며 정인과 둘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잠시 후 가이드의 안내로 조금 전 그네들이 기도를 했던 배와 비슷한 배를 탔다.
그리고 준석도 정인도 좀 전의 그들처럼 수건을 쓰고 기도를 해야만 했다.
그들은 엎드려 둘만의 웃음으로 낄낄거렸다.
그들도 기도가 아닌 바다 속을 보기 위해 수건으로 햇빛을 가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배 밑창은 유리로 되어 바다 속이 훤히 드려다 보였다.
몇 길이나 되는지 모르는 바다 속엔 아름다운 산호초가 울긋불긋 꽃처럼 만발해 그 곳이 용궁인가 싶을 정도였다.
정인이는 연신 즐거워하지만 준석은 그런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 이별의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산호초 구경도 잠시 바쁜 일정으로 분주히 움직였다.
다시 배를 타고 가는 줄에 의지해 낙하산을 매단체타고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낙하산은 오르락내리락 재미를 더 하려고 기술을 부렸다.
준석은 정인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 정인을 마음껏 기쁘게 해주어야지’
준석은 피곤했지만 수상 오토바이를 빌려 산호 섬 주변을 '빙 빙' 돌았다.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맞기고 파도 따라 학춤을 추었다.
수영복 차림의 정인은 준석의 등 뒤에서 어찌나 쎄게 끌어안았는지 동시에 널을 뛰듯 그들은 한 몸이 되어있었다.
섬 주위를 돌다 인적이 없는 곳에서 멈춰 섰다.
정인이 행복하게 잘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마지막 키스를 했다.
바다 속에 비친 오색의 산호들이 물결에 춤을 추듯 아른대고 가까이 있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도 어느새 그들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정인은 여기 저기 손으로 가리키고 소리를 지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런 정인을 보고 준석도 잠시지만 기분이 좋았다.
정인은 준석의 손을 잡았다.
\"빨리 들어가요.\"
수영을 하자며 물속으로 그를 떠밀었다.
밀고 당기며 쫓으며 도망가며 그런 순간에
아무도 보지 않는 물속에서 정인은 준석을 끌어안았다.
서로의 몸 사이로 일렁이는 물길이 지날 적마다 야릇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러한 촉감이 감미로워서 그들은 몇 번씩이나 숨을 쉬고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인어처럼 이 넓은 바다에서 살았으면 하는 서로의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마지막 날 그들은 새벽사원과 수중 도시를 관광했다.
물위에 집을 짓고 생활하며 대소변도 그 곳에서 해결하고 그 물로 세수와 빨래 ,설거지, 양치질도 하며 지내는 걸 보고는 구역질이 났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그러한 생활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도 살아가는 인간의 적응력에 준석은 정인이도 스스로 적응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길거리 행상들은 냉장 시설 없이 생고기를 거리에서 팔다 남으면 내일 다시 판다고 했다.
\"이렇게 더운 나라에서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정인은 정색을 하며 준석에게 물었다.
\"응, 태국은 적도 부근이라 자외선이 강렬해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소독되는 거야.\"
\"아! 그래서 자외선 소독기가 있군요.\"
정인은 처음 접하는 열대지방의 생활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마냥 궁금해 했다.
잎이 넓은 야자나무는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는 분위기로 도로 옆 가로수로 길게 서 있었다.
길옆 상가에 보석가게가 있어 구경을 하자며 들어갔다.
준석은 언젠가 인도네시아에서 바다 속에 빠뜨린 오팔 대신에 무언가를 해 주고 싶었다.
마침 태국은 루비와 싸파이어가 특산물이었다.
색깔 좋은 3 캐럿짜리 루비 반지를 하나 샀다.
그녀는 너무 비싸다며 안사겠다는 것을 간신히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준석을 밀었다.
\"잠깐만 나가 있어요.\"
준석은 떠밀리듯 밖으로 나갔다.
준석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고 싶었다.
정인은 루비만큼이나 비싼 3 캐럿짜리 잉크 색 싸파이어를 링 없이 알만 샀다.
정인은 반지 쎗팅은 서울 가서 그의 맘에 드는 것으로 직접 해주고 싶었다.
밖으로 나온 정인은 생글거리며 준석에게 다가와 그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이게 뭐야?\" 준석은 옆에서 웃고 있는 정인을 쳐다보았다.
예쁜 포장지로 싼 자그마한 상자를 풀어 보았다.
열대지방의 강렬한 햇빛에 반사된 새파란 싸파이어가 영롱하게 빛났다.
그 색깔이 내뿜는 강렬함에 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정인이 어떻게 이런 색을 골랐을까?'
준석은 그것을 소중히 싸서 주머니에 넣고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마음 씀에 준석은 어떻게 이런 여인과 헤어질 수 있을까?
'정말 이 여인을 보내야만 하는가!'
준석의 괴로운 심정은 답답하기만 했다.
정인은 거리를 지나면서도 반지 낀 손을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한 그녀의 행동은 준석을 더욱 괴롭히고 있었다.
이별을 미리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지만, 모르고 당하는 이별은 아마도 견딜 수없는 고통일거란 생각에 준석은 마음이 더 아파 왔다.
몸을 태워 밝히는 촛불처럼 그도 그녀에게 등불이고 싶었는데......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고 싶은 준석의 마음, 오늘만 지나면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준석은 갑자기 숨이 탁 멎는 것 같았다.
'아! 가슴이, 가슴이...'
뾰족한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준석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정인은 준석의 손을 잡고 행복에 겨워 이국적인 거리 풍경에 시선을 두다 갑작스런 준석의 행동에 너무나 놀랐다.
\"왜 그래요? 왜 그래요?\"
그녀는 지나는 사람들을 소리쳐 불러 댔다.
\"도와주세요. 도와줘요.\"
준석은 손을 내 저으며 괜찮다는 시늉을 해 보였으나 그녀는 준석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걱정스런 얼굴로 그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 거예요?\"
\"으... 응,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나아져\"
준석은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아주 천천히 일어섰다.
아직은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었지만 하얗게 질린 그녀를 보니 그는 일어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인은 준석의 안색을 살피며 그를 부축하고 천천히 걸었다.
언제나처럼 잠시 후 그의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줄을 타고 음식을 나르는 5천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초대형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방에서 손님 식탁까지 거리만 해도 몇 백 미터나 되었다.
걸어서 배달되었을 땐 음식이 다 식어 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케이블로 음식을 실어 날랐다.
깨끗한 옷을 입은 종업원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식탁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기도 했다.
이색적인 저녁식사에 한껏 들뜬 정인은 택시를 타고 유흥가 쪽으로 가자고 했다.
그들은 손을 잡고 휘황찬란한 네온 불빛을 따라 유흥가를 돌아 다녔다.
오늘은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 아니 그들에게 있어 영영 마지막이 되는 밤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그녀와 같이 걷는다는 것이 꿈만 같았지만, 마지막 여행이라는 생각 준석은 땅을 보고 걸었다.
걷다보니 인도가 온통 하얗게 끈적이는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새의 배설물 같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전기 줄엔 새까맣게 제비들이 올라앉아 있었다.
마치 야생화 줄기에 진드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듯이 제비들도 그렇게 모여 앉아 전깃줄이 축 늘어져 있었다.
이곳 제비들은 한국으로 날아간다고 했던가 그것이 강남제비라 했던가.
제비들처럼 날개가 있어 가고픈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준석은 침울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그의 표정은 굳어지고 있었다.
거리 상점에서 몇 가지 기념품을 사고 호텔로 들어왔다.
준석이 샤워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욕실로 들어 왔다.
\"왜 그래, 창피하게.\"
그는 욕실 칸막이 커튼으로 몸을 가렸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잖아요. 제가 목욕을 시켜드릴게요\"
그녀는 옷을 벗었다.
\"샤워만 할 텐데......\"
그래도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이 준석은 정인이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욕실 안에 불을 끄고 그들은 물이 가득한 욕조 안에 몸을 담갔다.
바로 앞에 있는 물체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물소리와 손끝에 감촉만으로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정인은 준석의 몸을 손끝 하나하나에 감각을 익혀 갔다.
부드러운 곡선과 온몸의 구석구석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들은 한동안 그러한 행동을 했다.
입술, 코, 통통한 귓밥, 어두움은 더욱 더 그들을 민감하게 만들어 갔다.
어느 것 하나 느끼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인의 살결은 참으로 보드라웠다.
얼마전만해도 환자였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의 탄력 있는 모든 것을 지날 때, 준석은 정말 헤어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 절대로 헤어지지 안을 거야 영원히 ...’
준석은 정인을 움켜잡듯 꼭 끌어안았다.
미끈거리는 비누거품이 피부를 더욱 감미롭게 애무했다.
정인은 준석을 애무했으나 그는 성욕이 일지 않았다.
준석의 마음은 온통 고민으로 뭉쳐 있었다.
\"자기야 이제 나가자, 너무 오래 있으면 몸에 안 좋아.\"
\"예, 그래요.\"
그들은 샤워 후 긴 타월로 서로의 몸에 묻은 물기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
\"응, 그래, 더 있고 싶으면 며칠 더 있을까?\"
\"아니예요 일정대로 그냥 가요.\"
그녀의 몸매는 예전보다 더 탄력이 생긴 것 같았다.
\"당신 몸은 언제 보아도 매력이 있어요.\"
그녀는 선 채로 준석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원하고 있었다.
준석은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격투기 알아?\"
\"네, 우리 인도네시아 가서 봤잖아요. 치고 박고 레슬링처럼 뒹굴기도 하고, 그런데, 갑자기 왜요?\" 그녀는 그의 목에 두 팔을 걸었다.
준석은 몸이 밀착된 채 알몸인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자기야...... 우리, 밤새도록 그런 사랑 한번 해 볼까?\"
갑작스런 준석의 말에 그녀는 조금은 부끄러운 듯 그를 쳐다보며 웃었다.
준석은 정인의 모든 것을 머릿속 깊이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길이 왜 이리도 애처로워 보이는 걸까?’
물기에 촉촉이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두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강렬히 끌어안고 마구 파고들었다.
준석은 정인을 어느새 거칠게 몰았다.
그녀는 흥분된 상태로 이리 저리 몸을 뒤틀며 준석에게 모든 걸 맡기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강렬하면 할수록 준석의 마음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그녀와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내야 하는가에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의 행동은 처절하리만큼 광적으로 변해 갔다.
아! 이 비참한 행위를......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까지 마지막 그녀를 느껴야만 하는가!
순간 그의 흥분은 가라앉으며 온몸에 힘이 송두리째 빠져나가 버렸다.
‘본능을 지배하는 건 정신이었던가!’
준석은 정인을 넌지시 떼어놓으며 조금 떨어진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정인은 서먹한 표정으로 그의 옆에 다가앉으며 커다란 타울로 몸을 가렸다.
\"당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어, 병원에서 검사 받은 얘기를 했지.\"
순간 정인은 준석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는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뭐래요?\"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빨리 들어오라지 뭐, 몇일만 더 몸조리하고 보내겠다고 했어, 병이 다 나았다고 잔치 해 준다던데,
누구는 좋겠다. 잔치도 하고.\"
\"아이, 놀리지 말아요. 참, 주연인 잘 있대요?\"
\"응, 잘 지낸데. 주연이 보고 싶지?\"
그는 머리칼 한 올 한 올에서 그녀를 느끼고 있었다.
\"예, 보고 싶어요. 엄마도, 주연이도, 그 동안 병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나 봐요. 내년에는 유아원에 입학 시켜야 하는데......\"
\"서울 가면 제일 먼저 입학시켜.\"
그의 목소린 떨리고 있었다.
정인은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우선 들어가서 정리도 해야 하니까요. 수경이에게 맡겨 놓은 사업도 정리를 해야 해요. 결혼하자마자 시작한 일이라 이젠 싫증도 나고 쉬고 싶어요.\"
\"이제 몸도 좋아졌으니 다시 시작하지 그래.\"
\"돈도 벌만큼 벌었어요.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인데 중풍에 걸려서 저러고 계시니 맏딸인 제가해야 했어요. 동생은 어렸고 그 땐 정말 무척 힘들었는데. 이제 나까지 이렇게 됐으니 그만 정리를 해야죠.\"
정인은 모든 걸 정리하고 준석이 그렇게도 소원했던 한방 병원 짓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정인은 끌려만 다니던 경철이와의 형식적인 결혼생활도 이젠 과감하게 청산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새 생명을 준 준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받치고 싶었다.
그녀는 새로운 생활을 설계하면서 꿈에 부풀어 있었다.
\"앞으론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음식은 절대로 짜게 먹지 말고 과식하면 안 돼?\"
\"알았어요. 당신이 어떻게 해서 고쳐 준 병인데요. 다시는 절대로 병에 안 걸릴 거예요. 그런데 이상해요? 마치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그냥 걱정돼서 그렇지 내일 일찍 가야하니 오늘은 그만 자자.\"
준석은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고 침대로 올라갔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파고들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피곤하지 잘 자.\"
준석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예,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 자.\"
준석은 돌아누워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두 눈을 꼭 감았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그의 흐느낌은 베개에 젖어들고 있었다.
정인이는 피곤했는지 금새 등 뒤에서 숨소리만 조용하게 들려 왔다.
항상 들어오던 저 친밀한 숨소리마저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는 목이 메이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준석은 정인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려옴을 느끼고 가만히 정인을 보고 돌아누웠다.
편안하고 천진스럽게 잠든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준석은 이렇게 그녀를 보내야만 하는 자신의 행동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집에선 딸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의 준석에게는 어떠한 힘도 되어주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은 왜 한 곳으로만 흘러야 하는지 준석은 자신의 결백증 같은 심리상태를 원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설 잠을 잔 준석은 머리가 묵직한 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목욕탕에서 샤워 소리가 들렸다.
준석은 벌떡 일어나 커튼을 젖치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줄줄 알았던 바깥 공기는 후끈한 열기를 몰고 들어와 준석은 창문을 도로 닫아 버렸다.
욕실에서 덜거덕 소리가 나자 준석은 얼른 가방 속에 짐을 챙겼다.
그는 짐 속에서 가장자리가 달아버린 쪽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낡은 쪽지는 준석이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정인이가 써준 편지였다.
준석은 한동안 쪽지를 들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욕실에서 나오는듯한 인기척 소리에 그는 쪽지를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정인은 욕실에서 나와 가운을 입은 채 준석을 도와 짐을 꾸렸다.
그들은 그 날 오후 1시가 좀 지나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 왔는지 온통 뒤죽박죽 돼버린 머리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던 것 같았다.
공항 주차장에 세워둔 차는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석에게는 이제 정인이와 영원히 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녀 어머니와 식구들과의 약속, 그리고 그의 딸들에 대한 자신과의 약속을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이렇게 보내야만 하는 것인지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다.
준석은 어금니를 깨물고 핸들을 굳게 잡았다.
그녀는 철없는 아이처럼 그에게 매달리며 행복해 했다.
준석은 옆에서 들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당장 내일부터 그녀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뻥 뚤린 듯 허전했다.
강변을 따라 그들이 즐겨 다녔던 양수리로 향했다.
그는 그녀가 검사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은 날 그 날 이후부터 오늘 비행기 안에서도 그녀와의 이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준석은 차를 몰고 양수리 다리를 지나 서정리로 들어섰다.
철길 넘어 파릇하게 물오른 수양버들이 길게 늘어진체 가지를 흔들며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준석이 즐겨 듣던 음악을 들으며 마지막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ENYA 의 'To go Beyond ' 음악이 흘러나올 때 그녀는 운전하고 있는 준석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가만히 얹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 곳에 온 정인은 감회에 젖어 있었다.
\"이 길은 계절 따라 느낌이 달라요. 내년에도 우리 이 길을 올 수 있을까요?\"
정인은 준석의 마음도 모른체 촉촉한 눈으로 준석을 쳐다보며 행복해 했다.
\"그럼, 올 수 있고말고.\"
준석은 얼른 그녀의 말을 되받아 확인 해 주었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화끈해진 얼굴에 준석은 차창 문을 활짝 열었다.
강바람이 싸아 하니 밀려 들어왔다.
\"정인아, 우리 소리 한번 질러 볼까?\"
그는 가슴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야-아, 야-아아 야----- \"
정인이도 그를 따라 소리쳤다.
\"야-호\"
그들은 달리는 차안에서 밖을 향해 힘껏 외쳤다.
준석은 목이 터져라 계속 소리를 질렀다.
정인이는 신나서 소리치고 준석은 억장이 무너져서 소리쳤다.
서로들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그들에 목소리는 굵어져 있었다.
막힌 것이 뚫릴 줄 알았던 준석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준석은 눈물이 고여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차를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어 길 한쪽 옆에 세우고 잠시 차창 밖을 응시했다.
그는 바람결에 눈을 껌벅이며 눈물을 말려 보지만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어 바람을 쐰다며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그는 옷소매로 눈물을 얼른 훔치고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그런데도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나와 시야를 흐리고 있었다.
눈을 껌벅거렸으나 도저히 나오는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준석은 정인이 앞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고 좀 쉬라고 했다.
1킬로미터 남짓한 길을 10분도 더 걸린 것 같았다.
\"눈에 뭐가 들어갔어요?“
정인은 얼핏 준석의 눈물을 보고 말았다.
\"응, 그런가 봐.\"
그녀는 그의 눈을 두 손으로 벌리고 \"훅\" 불어 주었다.
그의 눈에 고였던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아-니! 갑자기 왜 울어요? 무슨 일이 있어요?\"
\"당신이 너무 좋아서 그래 아 아니...\"
준석은 눈을 껌뻑 거리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보! 어린아이처럼 우니까 나도 눈물이 나잖아요.\"
\"당신과 같이 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아서 그래.\"
\"저도 꿈만 같아요. 당신이 해 내실 줄 알았어요. 당신은 정말 멋진 남자예요.\"
정인은 글썽해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살포시 그를 끌어 차에서 내렸다.
고개를 돌려 싸한 바람에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을 다시 말렸다.
어느새 그녀가 따라 나와 준석의 팔짱을 끼고 매달리며 모둠발로 깡충깡충 뛰었다.
준석의 시선은 물위에 떠 있는 파란 잎에 고정되어 있었다.
연꽃잎이 무성하게 물위에 우아하게 떠 있었다.
'매년 이맘때면 변함없이 피어나는 저 연꽃처럼......'
준석은 이제 정인이 새 생명을 찾아 힘차게 살아 줄 것을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다.
갑자기 불어온 회오리바람에 준석은 윗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만 들어가자.\"
\"네, 바람이 쎄네요.\"
그들은 옷깃을 여미며 차에 올랐다.
준석은 추억 어린 이 길을 더 이상은 갈 수가 없어 차를 돌렸다.
그는 이제 모든 이와의 약속을 지키려 운전대를 꽉 잡았다.
준석은 자꾸만 약해지려는 자신의 결심이 겁이 나기 시작했다.
순간 큰딸과 작은딸의 모습이 교차해 떠올랐다.
'아빠, 빨리 오세요.' 준석은 딸들과의 약속을 생각했다.
정인을 보내는 것은 모두에게 약속을 지키는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정인이 다시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준석은 위암이란 속성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빌미를 찾고 있었는지 도 몰랐다.
'보내자, 보내야 한다.' 준석은 머리를 흔들고 액세레이더에 힘을 주었다.
정인은 그의 손을 잡고 행복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차는 어느새 그녀 집 가까이에 왔다.
\"음식 조심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안돼 스트레스를 받으면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못해서 무산소 세포로 변형되어 살아가는 거야 그러한 무산소 세포는 암세포와 동일한 세포로서 재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거야.\"
\"예, 그럴게요 늘 조심 할게요 .\"
\"피곤 할 테니 어서 들어가! \"
준석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적인 말로 가슴 아픈 이별의 마지막 인사를 대신해야 했다.
\"내일 사진 뽑으러 가게 일찍 연락해요?“
정인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으...응 어서 들어가.\"
\"내일 중요한 얘기 할게 있어요.\"
정인은 경철이와 헤어지겠다고 결심한 것을 그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의 아이를 낳기 위해 수술도 할 거라고 생각하니 정인은 괜히 신이 났다.
차가 움직이자 정인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빽미러로 멀어져 가는 그녀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행복하게 살아야 정인아!... 아프지 말고, 정인아!... 미안해... 날...날 용서해줘.\"
'이런 것이 정녕 그녀를 위한 길인가. 아니면 자신을 위해서인가.'
준석은 스스로에게 몇 번씩이나 자문을 해 보았으나 도대체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은 너무나 초라한 결심이었다.
그녀가 선물한 싸파이어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은 운전대를 잡은 채 그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두 다리가 떨려왔으나 차는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 떠다니는 뭉게구름은 흩어졌다 만났다를 거듭하고 있었다.
가로수 밑에 모아둔 나뭇잎들은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아스팔트 위를 우루루 나딩굴고 차안의 오디오에선 첼로로 연주하는 아베마리아가 흘러 나왔다.
나뭇잎과 첼로 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준석의 가슴을 마구마구 파 헤쳐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징징 우는 첼로의 저음은 그의 통곡을 대신하는 듯 했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그래도 희망이 있겠지?...... 저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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