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오늘은 몇 개의 입을 달고

박종영 2017. 07. 09. 오전 09:18
2444

오늘은 몇 개의 입을 달고


                             -박종영-



올망졸망 허기진 입을 거느리던
못명한 가세(家勢)가 지겨워,
오늘은 작정하고 은행 사거리 한복판에
입벌리고 서 있으면 억센 바람에
돈뭉치가 나 뒹굴가 싶어 입벌리고 서 있기를 몇시간
아니나 다를까 돈뭉치가 바람에 날려 입안으로 들어온다


남 보다 뒤질세라 정신없이 삼키고 보니
그동안 굶주린 배속이 태산만큼 솟아오르고,
세종대왕의 인자한 웃음이 허기를 채워주며
나의 영역에 든든한 은행 한 개를 만들어 준다


이게 웬일인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거드름 피우며 헛기침을 해대고,
배고픈 사람들의 눈길을 외면하고 있는 사이,


절망을 배우지 못하고 진정한 실패를 깨닫지 못했던
왈패 풍각쟁이 벙거지로 걸식하던 어두운 시절,

가난의 동패들이 몰려와 정신없이 삼켜버린
1만 원 지폐를 토해 나누워 갖자고 다그친다


그러나 엊그제까지 방황하던 슬픈 거리,
그토록 옹색했던 차가운 집 모퉁이를 지나
늘 배고픈 설움에 겨운 아내의 다후다 몸뻬 낡은 주머니에
큰맘 먹고 일만 원짜리 돈다발을 넣어 주어야 하는데
망설이는 좁은 가슴이 황홀하고 탱탱해지는 것은 무슨 조화냐고,


맑게 갠 하늘, 수중에 돈푼이나 생기고 보니
늘 따뜻한 해장국을 건네주던 파주댁 봉봉한 가슴도 만지고 싶고, 
어느새 옛날 투전 방 핏발선 얼굴들이 떠오르는데
아서라 모두 다 팽개치고, 오늘은 몇 개의 입을 달고
어느 은행 문 앞에서 욕심을 부리며 입 벌리고 서 있을까?



댓글 0개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