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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그리워
고향 그리워
백 원 순
살아가는 일이 힘들 때 가끔 어릴 때 고향을 생각한다. 내 고향은 금호도 이었다. 지금 광양 제철소 자리가 나의 고향이었다. 금호도에서 금자가 쇠금자여서 제철소가 들어섰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 금자가 금수강산의 금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넓은 광양만은 커다란 호수처럼 앞에는 남해 금산이 막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여수 율촌이 기다랗게 놓여 있으며 왼쪽으로는 하동군이 길게 남해도와 연결 되어 있다. 섬 뒤에는 지리산과 지리산을 굽이돌아 나오는 는 섬진강하구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섬 바닷가에 높이 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미국인 선교사와 알고 있는 읍내 한 장로가 섬에 간척사업을 하면서 사립 중학교와 교회를 세웠다. 물론 나는 그 중학교에 다니지 않고 옆에 있는 금호도보다 큰 섬인 태인도에 나룻배를 타고 중학교에 다녔다. 교회는 그 사립 중학교 보다 높은 언덕에 있었는데 여름에는 일요일 마다 땀을 흘리고 돌계단을 아주 가파르게 올라가서 광양만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히고 예배를 보곤 하였다. 예배를 보고 교회를 나오면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도들이 은혜로움을 더하는 것 같았다. 아마 그 가파른 돌계단이 지금 생각해보면 천국의 계단이지 않았나 싶다.
교회 학생회의 일을 맡아 등사판 용지에 철필로 서툰 글씨를 써서 주보도 만들곤 하였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성극을 하곤 하였는데 나는 동방박사 중 한 분을 맡아 연기를 한 기억이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새 교회에서 보내고 새벽에 간척지를 건너 삼삼오오 교인들의 집 앞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면 어떤 교인들은 우리를 따뜻한 아랫목으로 불러 팥죽이나 먹을 것을 주곤 하였다.
여름이면 방학을 하여 긴 대나무를 잘라 낚시 줄을 달고 친구들과 물고기를 낚으로 가기도 했다. 먼저 펄에서 바다가재를 발로 밀어 잡아야 했는데 고무신이 미끄러져 발을 베이기도 하였다. 섬 곳곳에 지명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다. 작은 무인도인 ‘똥섬’에서는 아주 옛날에 누군가 산삼을 캤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그 외에 솥뚜껑을 닮았다 하여 ‘소뎅이’라는 지명이 있고 아마 오목하게 들어가서 ‘오막등’이라는 배를 정박하는 곳도 있었다. 겨울에는 김을 주로 생산하였고 그 외 계절에는 농사를 짓거나 광양만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이 많았다. 여름날 새벽 아침이면 밤새 고기 잡았던 배들이 들어와 포구에는 활발하게 떠드는 사람들 소리와 물고기들의 팔딱거리는 모습이 뒤섞여 은빛 비늘처럼 햇살에 삶이 빛났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간다고 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떠난 모습이 그 섬에서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큰 어머니께서 방앗간 까지 따라오셔서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께서는 동네에서 이장 일을 오랫동안 맡아보시고 아버지께서는 어촌계장의 일을 오랫동안 성실이 하셨다. 마을 높은 언덕에는 오래된 팽나무 당산나무가 있어 여름이면 할아버지들께서 아이들과 함께 더위를 피하곤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군대 첫 휴가 때는 마을이 인근 육지로 이주를 하여 집을 물어서 찾아갔었다. 지금은 이주를 한 동네에서 그 섬 고향에 사셨던 어른들만 몇 분들이 보이고 아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고향이 보고 싶으면 인근 바닷가를 거닐며 옛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고향은 사람이 이 세상에 처음 나온 곳이고 보면 영원이 잊을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한다. Then a teacher of the law came to him and said, \"Teacher,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Jesus replied, \"Foxes have dens and birds have nests, but Son of Man has no place to lay his head.\" Matthew 8, 19-20(예수님이 “여우도 돌아갈 굴이 있고 새들도 둥지가 있는 데 인자는 머리 누일 곳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댓글 4개
금호도가 그렇게 좋다고들 하는데 한번도 가보질 못했습니다. 고향은 그리움의 곳.. 언제나 마음은 고향입니다.
금호도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군요.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과 바다가 생각납니다. 그리운 고향을 잊을 수는 없으나 그곳은 세계적인 철 생산지가 되었으니 너그럽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1980년대 중후반 광양제철소 건설시 큰 도전을 하며 땀흘리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고향과 어떻게 이러한 인연을 가지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인터넷 상의 모르시는 분 중 한 분이시고 언제나 친절하고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마운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주 중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 사회과 부도 지도를 펴 놓고 고향 주변을 보다, 제 고향 '금호도'와 이름이 비슷한 여수에 '금오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번도 그곳에는 가보지 않았으나 '방풍 나물'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좋은 말 씀 고맙습니다. 밝은 한 주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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