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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불알

백원순 2020. 03. 19. 오후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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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 불알

                                                                             백 원 순









  노 할아버지께서는 섬에 많은 땅과 어장을 가지고 계셨다. 노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는 데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 말에 의하면 일찍 노 할아버지를 여윈 노 할머니 굽은 등에 내가 꼿꼿이 업이어 자랐다고 했다.

  한 번은 중학교 때인가 할머니께서 내게 슬픈 눈으로 저기가 모두 우리 땅인데 노 할머니 돌아 가셨을 때 묘를 쓰려고 땅을 빌리려 했는데 그 땅 주인이 냉정하게 거절했다고 말씀 하셨다. 노 할아버지는 섬에 땅도 많고 어장도 많으셨고 두 아들(갑선, 을선)과 고모할머니들을 여럿이 두셨는데 두 아들을 일찍 장가보내시고 빨리 젊어서 돌아가셨다 들었다. 고모할머니들 중 한 남편은 일본 통치 시대 때 징용으로 끌려가시어 생사를 몰라 설날 산소에 세배를 올릴 때 할아버지께서는 묘지 하나를 가리키며 저기에는 나무로 사람모양을 만든 가묘라고 말씀하시었다. 재산을 많이 물려받으신 할아버지(갑선)께서는 젊은 날에 동네 노름 꾼 들에게 꼬이어 재산을 어느 정도 탕진하고 화병에 전국을 유람하시었다. 서울이고 어디든 가보지 않은 신데 업으신 할아버지께서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부지런히 노력하여 집안을 일으켜 세우셨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풍년도 들고 김도 풍작이어서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유독 좋아하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들 셋과 딸들을 셋이 두셨는데 나는 가장 성실하고 부지런한 둘 째 아들의 첫 아들이자 밑에 여동생들만을 둔 남자 맏이이자 독자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형제로는 할아버지 갑선 말고 을선 존함을 가지신 작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일찍이 고향 섬 금호도를 떠나 경남 하동 어는 마을에 처가가 있는 동네에 사셨다. 명절이나 설날에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두루마기를 입고 오시어 우리가 절을 하면 미리 바꾸어 오신 새 돈으로 우리에게 세뱃돈을 주시곤 하셨다. 자식들(삼촌들)을 대동하시고 고향 마을 형님께 찾아오신 작은 할아버지는 선산을 둘러보시고 그렇게 돌아가시곤 하셨다. 한 번은 작은 할아버지 댁에 잔치가 있어 아버지하고 섬진강을 굽이굽이 버스를 타고 지리산 어느 동네 작은 할아버지 댁에 간적이 있다. 마을이 너무 정겨웠다. 마을 앞에 큰 냇물이 대나무 숲 사이로 흐르고 작은 할아버지 댁은 들판 옆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하고 같은 또래 삼촌하고 같이 냇물에서 고기도 잡곤 하였다. 지금도 작은 할아버지의 휘휘 젖는 도포가 눈에 선하다.

  큰 아버지를 일찍 군대에 보내신 할아버지께서는 성실하고 착한 아버지와 함께 가업을 이루셨다. 아버지께서는 장가를 드신지 5년인가 7년 뒤에 늦게 나를 낳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너무 기뻐 하셨는데 내가 불알이 하나가 큰 지금으로 말하면 짝퉁 손자를 보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노심초사 하셔서 지금 쌍계사 밑 화개 냇가로 나를 네 살 땐가 다섯 살 때 그 먼 길을 시골 비포장 길로 나를 버스에 태우고 데려가 냇가 한 가운데 유황 냄새가 나는 큰 바위 약수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기다려 내 짝 불알을 치유하시겠다고 나에게 그 약수 물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시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화개 냇가에 땀을 흘리며 기다리는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도 가끔 인근 화개 장터나 쌍계사에 차로 갈 때 그 화개 냇물을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아버지께서는 마을 이장 일을 오래하셔서 세상 정보에 밝으셨다. 할아버지 집에 갈 때 마다 금성(Gold Star)라디오가 항상 켜져 있었다. 자식들이 바다에 나갈 때 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기예보를 항상 그 라디오에서 먼저 들으시고 지시를 내리시어 먼 바다에서 생활하신 큰 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버지, 작은 아버지께서 무사하지 않으셨나 싶다.

  할아버지께서는 내 짝 불알이 너무 염려스러워 라디오에서 정보를 들으시어 어머니를 독촉하셔 통통배를 타고 광양만을 건너 여수에 가서 무슨 병원에서 수술 받으라고 하시었다. 어머니하고 통통배를 타고 여수까지 가는 데 파도가 세차게 쳐서 어머니께서는 내 머리에 물바가지를 둘러 씌우셨다. 여수에 도착하여 높은 산길을 걸어 어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수술실 천장에 등이 여러 개 달린 등불을 보다 한 참 후에 깨어났다.

  그 유명한 짝붕알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염려하신 것처럼 되지 않고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잘 놓고 키워 지금은 아들, 딸이 장가 시집 갈 나이가 되어 손자들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두 분이 하얀 치마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어린 손자인 나를 데리고 화개 냇물까지 가신 모습이 경남 하동 화개를 갈 때마다 떠올라 속으로 눈물을 많이 흘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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