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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내게 오면
아픔이 내게 오면
백 원 순
경희대학교를 간신이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고
원서를 내던 중
KBS에 지원서를 내고 돌아오던 날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다 고
과 교수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반 학기 쉬고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였습니다
그 카페 사장님은
절대 저를 홀에 서빙을 시키지 않고
주방에서 설거지만 시켰습니다
그 때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런가 보다하고
그해 대학원 가을 학기에
1차 필기시험을 보고
23번 번호를 달고
2차 면접을 보려고
과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학부 때 공부했던 교수님들은
한 분도 보이시지 않고
낯 설은 원로 교수님들이
여러 전공에 대한 질문을 한 후
마지막에 질문하시기를
‘자네는 무엇을 전공하고 싶나’하고 물었을 때
저는 예이츠(Yeats)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Yeats를 공부 하고 싶은 가 하는 물음에
Yeats는 지금 2000년과 앞으로 1000년에 대한
생각을 그의 시로서 노래하였다고 했습니다
Yeats의 Gyre에 대한 이론을
말씀드렸고
대학원에 합격하였고
그 때 당시 대학원 공부에
문학의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등등
혼란한 시대에 말이 많았는데
저의 대학원 Yeats의 전공 교수님은
오록 교수님(아일랜드 출신. 카톡릭 수사, 작년, 2020년에 선종하셨음)이셨습니다
첫 수업 때 저 혼자 교수님하고 수업을 하였는데
교수님은 쪽지에
앞으로 공부 할 책을 사오라고
거의 10권 넘는 Yeats에 대한 책의 목록을 적어주셨습니다
다음날 종로서적에서 영어 원서로 된
그 책들을 모두 구입한 후(그 책 중 “High Talk”라는 책도 포함되었음)
교수님하고 둘이서 수업을 하였습니다
오록 교수님은
내가 그를 공부도 다 마치지 못한 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늦가을에
제가 감기가 들어
같이 수업을 할 때
힘들어 하자
아일랜드에서는
감기가 들 때(엄밀히 말하면 수사들)
홍차에다 위스키를 몇 방울 넣어 마신다고 했습니다
다른 구조주의 수업 때
차이(difference)에 대해
입에 개거 품을 물고
그가 말하는 현실의 구조주의에
이쪽에 갔다 저쪽에 갔다(좌와 우에 왔다갔다)
그 잘난 교수님이(이 교수님이 시대가 바뀌자 전국에 기적의 도서관이이라는
캠페인을 예나 지금이나 쓰레기 같은 명예욕에
팔아먹으면서 그를 현실이라는 구조의 거울 속에
나르시스라는 그의 잘난 지식의 가면의 얼굴만
비추는 얇은 은막의 영상의 쇼에서
늙어갈 줄 모르고)
세월도 공간도 자기 구조주의에 가두 워
삐에로와 같은 뻔한 마술로
사람에 대한 Pathos를 자극하여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여
일벌들이 꿀을 모으기 위해
벌집이라는 구조도 모른 채
지은 꿀 벌집에
애써 모은 꿀을
멀리서 그 꿀 벌집 구조만 관찰하다
모든 꿀을 자기들 것인 양 주장하는 것처럼
언어의 모든 기호의 구조망을
권력에 의지하여
마치 마술사가 시선을 모아놓고 사기 치듯
오늘도 그들은
모든 매체를 통하여
지금도 구조주의 종교를
죽을 때까지
외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죽음너머까지
구조주의로 이해시키려는
어느 광신주의 종교가로
살아갈 것 같다
그 잘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구조주의 교수님이
너 같은 쓰레기가 어떻게
대학원에 들어와 내 존엄한 강의를 수강 하냐면서
그가 강의 할 때 때 프린트하여 나누어 준
그만이 알고 있는 영어 원서를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만의 사회 적 헤게모니의 마르크스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의식적 지식인들의
합리적인 이런 저런 진보적 이론들이겠지요
이제 신입대학원생(그 때 나의 앞으로 많은 석사와 박사 원생들이 강의를
같이 들었음)인 나에게
갑자기 분노로 그가 나누워 준 프린트 영어 원서를 읽어보라고
했을 때(이 교수님이 어제 저녁에 sex할 때 어떤 걸레 같은 여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나 하면서)
떠듬떠듬 많은 대학원생들(석, 박사를 포함한)앞에서 간신히 읽기는 하였지만
굴욕감에 영혼이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구조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냐고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
X+Y=Z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time)의 등식과 변수에 의해
Z+Y=X
가 되지 않냐 고
강의실을 박차고 나와
모진 세월의 지식의 굶주림과
생계에 대한 삶의 고통 속에
자식들에 대한 죄의식 속에
그 때 그 강의실을 밖 차고 나오지 말고
좀 참고 인간에 대한 넓은 이해 속에
삶에 대한 공부를 하였으면 하고
그 후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지식에 대한 것이
권력으로 이어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식의 합리화(금방 들통 나는 뻔한 상식)로
그 거대 담론에 대한 지식(정치, 경제, 문화, 사회, 법률, 도덕, 종교, 등등)에
언어적 원초적 기본부터 접근하지 못하고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그저
눈가에 눈물만 흘리고
이 땅에서 말없이 사라져 간 영혼들에게
과연 그 잘난 모든 영역에
지식의 담론이 존재하는지
댓글 2개
강의실을 박차고 나온 것이 또 하나의 인생의 출구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죽은 듯이 맹종하며 살아왔기에 지금도 기를 펴지 못하는 황혼의 자신이 서글퍼 집니다.
모든 것들이 부질없어 질때 커다란 허무함이 오기 마련이지만 그것또한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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