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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것과 말을 한다는 것
침묵하는 것과 말을 한다는 것
(귀납적 그리고 연역적인 셍각)
백 원 순
저녁에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셔서
검은 넥타이를 매고
조문을 다녀 온 후
그 날 저녁 늦게
손자가 태어났다는 말에
입이 찢어져
병동으로 달려간다
뜨거운 망치에
두들겨 맞았다
찬 물에 담기는
쉬익 소리
하루에도 몇 번씩
그대의 사랑과 증오의 눈빛에
뜨거운 생의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와
서쪽 저녁 하늘에
눈시울에 맺인
그대 첫 사랑 같은
맑은 별을
바라본다
Photo by Baek Won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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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은유(metaphor)\"적인 표현이고, 이 '은유'가 욕망(desire)에서 비롯 되었다는 것을 최초로 안 사람은 '프로이드'인 것 같다.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라캉'이 이 암시를 놓칠리가 없었고, 언어적인 표현(시를 포함해서)의 모든 것은 '은유와 환유'로 되어 있다는 언어에 대한 경계를 확대하였다고 본다. '옹달샘'이 옹달샘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옹달샘이라는 ‘원 관념(은유)’이 미끌어 지는 ‘사태’를 라캉은 ‘기표’가 다른 ‘기의’가 되어 말 할 수 없는 것을 말 하게하는 ‘보조관념’(환유)이 된다는 것을 ‘실어증’이라고 말을 하지만, 언어에 ‘자유’를 주지 않았나 싶다. ‘농담’이라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면, ‘언어에 대한 확장성’을 넓히는 면도 있을 것 같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니까 하는 생각에 그렇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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