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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그 날의 오늘

박종영 2023. 12. 17. 오후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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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그 날의 오늘


- 박종영
고무신 발자국이 묻힐 만큼
가늘게 나부끼며 올 겨울 처음으로 내리는 눈,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앞서간
아들놈의 발자국 신발 치수가
작년보다 더 자랐네.
시린 손 호호 불며 저녁밥 지으려

찬물에 보리쌀 씻는

가여운 아내의 연둣빛 얼굴에
흩날리는 포실한 눈발
어쩜 저리 하얀 것들이 고실고실한 쌀밥이었으면,
순례자이듯, 답청(踏靑)하듯 가만가만
눈꽃 그 미량의 무거움을 발걸음은 알기나 할까
눈이 내리니 눈앞이 흐려지고,
모진 세월이 훔쳐 간 가난한 반쪽의 가슴에는
하얀 눈이 사각사각 녹아내려
메마른 눈가를 적시며 함께 울어주는데,
유독 빠르게 깊어 가는 겨울밤,
썰렁한 아랫목에 묻어둔 한 그릇 보리밥을
따스하게 지키며 기다리는 첫눈 같은 하얀 아내의 마음,
소소한 그 시절이 눈물처럼 그리워지는 그 날의 오늘.


2023.12.17. 推敲

photo by beautiful dany 사진가

 

 

 

 

댓글 6개

정채균 2023. 12. 18. 오전 11:39

어제 고향에 사는 동창이 월동 배추밭에 소복히 쌓인 눈 사진을 보내왔더라고요 동지 섣달 긴긴 밤, 동네 처녀 총각들이 모여서 궁하면 배추 뽑아다 비빕밥 만들어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요 월동배추는 그냥 된장 찍어 먹어도 시원하고 달디담니다 시인님의 시에서 저도 그리움을 삭힙니다.

박종영 2023. 12. 18. 오후 01:32

숨막히게 순수했던 지나간 시절이었습니다. 막걸리 한병에 230원 하던 시절, 단돈 2~3천원이면 일주일의 찬거리를 사고도 남은 시절, 아득한 젊음의 새벽길에서 눈오는 날의 기억이 오늘에 이르러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감사합니다.시인님.//

문희 2023. 12. 20. 오후 01:17

어젯밤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더 큰 눈이 내리길 바랐습니다. 떠오르는 많은 그리움을 기대하였습니다. 언제나 첫눈은 우리에게 추억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박종영 2023. 12. 20. 오후 02:52

시린 손 호호불며 살아온 지난날이 모두 추억이고 인생입니다. 함박눈 두껍게 내려 하얀 세상이 열리고 가난한 반쪽의 세월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촉촉해 지는 이유, 함께한 가족의 사랑입니다. 추운 날씨에 더욱 건승하십시오.

박동수 2023. 12. 22. 오후 12:27

\"썰렁한 아래 목에 묻어둔 한 그릇 보리밥을 따스하게 지키며 기다리는 첫눈 같은 하얀 아내의 마음\" 오랫만에 들어보는 우리의 옛 정경입니다. 그 겨울이 다시는 올 수 없는 세월에... 우리 세대는 가슴만 아플 뿐이지요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자주 들리지 못해 늦게 답글 올렸습니다. 추운 날 건강 하시기를 바랍니다.

박종영 2023. 12. 23. 오후 12:23

배고픔의 세월과 혼돈의 시대를 온 몸으로 받아 낸 지난 시간을 떠 올리면 가슴 뭉클한 사연들이 솟아 납니다. 생명을 지켜온 소중한 자유, 오늘에 와서 새삼스럽게 간직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정겨운 댓글 주시어 무척 감사합니다. 건승하십시오. 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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