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닭싸움 일기

박종영 2024. 05. 06. 오후 12:16
386


 

닭싸움 일기

 

 - 박종영- 


오월 첫날, 밥풀 같은 웃음을 달고
탱글탱글한 탱자꽃이 날 가시 웃음을 앞세워 으스댄다
봄볕이 가시에 찔려 빛의 길을 닦는다
오죽이나 가기 싫은 봄바람이었으면 
저리 뾰쪽하게 머뭇거릴까
생 가시울타리 너머에서 후닥닥 소리 들릴 때마다 
뽀얀 먼지가 풀썩거린다 
가만히 살펴보니 칼 발 앞세워 붉은 볏 낚아채는 
우리 집 수탉과 옆집 수탉의 사랑싸움이 한창이다
오랜만에 보는 진정한 닭싸움이다
그 옆에는 암탉 한 마리 두려운 눈치로 비켜서서 조바심이다
아마 마음에 두는 승자를 점치는 것일까
어느 때쯤 투쟁의 시간이 지나고
승리의 홰를 치는 소리 듣고 뒤뚱대며 달려온
다른 집 암탉이 비겁하게 궁둥이를 들이대며
꼬꼬고 짝짓기 울음으로 승자의 깃털을 빗질한다
패배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 집 수탉을 안고 돌아오는 길
내가 수탉의 날개에 쌓여있는 낡은 세월을 그대로 둔 것이 후회다
언제나 상대의 전술이 위험하다는 것을 가볍게 여긴 것은
헛된 세상을 살아온 징표이거늘 다만,
패전의 이유를 내 게으른 훈련 탓으로 돌리고 찢긴 볏을 어루만져 준다
흘러내리는 검붉은 분노가 단단하게 조여오고

닭똥 같은 눈물 훔치며 콕콕 손등을 쪼아대는

우리 집 수탉의 분노를 위로하며

슬그머니 오월의 파란 하늘을 가져와 눈물에 섞는다.


탱자꽃 피는 오월에 다시 읽는 詩

<2024. 5. 5. 퇴고> 

댓글 5개

정채균 2024. 05. 09. 오후 09:09

닭싸움(鬪鷄) 종족 번식을 위한 일부다처제 그 혜택을 누리며 향리의 새벽을 깨우는 화려한 자리에 올랐는데 금방 화내고 풀리는 성질로 뒤끝 없지만 무슨 원수졌기에 주둥이로 상대를 쪼고 할퀴어 피투성이 만들고 주저앉을 때까지 결사항전이다

박종영 2024. 05. 09. 오후 10:07

옛날에 시골에서는 닭 싸움을 많이 했지요 이웃 동네 장닭과 우리 동네 장 닭 끼리 돈을 걸고 닭 싸움을 시키던 추억이 있습니다. 태국은 투계장이 있어 매일 연다고 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싸움은 이기고 보는 것이 전술입니다. 감사합니다.

박동수 2024. 05. 11. 오전 10:03

들려서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닭 싸움 시킨 경험이 없어서 잘 기억을 못합니다 만............그런데 여기 사색의 향기에 글쓰기 태그창이 엉터리라서 글쓰기 하면 보기에서 보다 실제로는 엉망으로 나오니 여러 번 해보다가 그만 포기하고 나갑니다.

박종영 2024. 05. 11. 오후 12:32

옛날 시골에 살 때, 동네 수탉과 이웃 동네 수탉끼리 돈 내기 닭 싸움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주 오래된 놀음이었습니다. 탱자 꽃 피는 오월이면 여러가지 추억이 생각나는 절기입니다. 아, 그리고 저도 사색의 향기에 글쓰기를 하려면 잘 되지 않아 여러번 반복하여 고치고 수정해서 올립니다. 서버 관리자가 신경을 안 쓴 것 같습니다. 가정의 달 오월에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문희 2024. 05. 27. 오후 04:02

마치 씩씩거리는 장닭을 바라보며 위로도 하고 옆집 닭의 괘씸함도 얘기하고... 삶의 많은 흔적이 살아있는, 세상 살아가는 추억의 일기 잘 읽었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