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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란시모음 21편

김용호 2025. 03. 04. 오전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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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란시모음 21편 ☆★☆★☆★☆★☆★☆★☆★☆★☆★☆★☆★☆★ 《1》 존재의 빛 김후란 새벽 별을 지켜본다 사람들아 서로 기댈 어깨가 그립구나 적막한 이 시간 깨끗한 돌계단 틈에 어쩌다 작은 풀꽃 놀라움이듯 하나의 목숨 존재의 빛 모든 생의 몸짓이 소중하구나 ☆★☆★☆★☆★☆★☆★☆★☆★☆★☆★☆★☆★ 《2》 겨울나무 김후란 침묵하는 나무 고집스레 눈을 감고 깊이 생각에 잠긴 그대 빛을 받아 반사하듯 나도 향기로운 한 그루 나무 되어 침묵의 응답을 보낸다 휘젓는 바람 창연한 고요 속에 차디찬 달빛 날을 세운다 아무도 봄을 믿지 않는 이 시각에 기다림을 배워 준 나무의 인내 봄은 내 가슴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 ☆★☆★☆★☆★☆★☆★☆★☆★☆★☆★☆★☆★ 《3》 고향 김후란 내 마음 나직한 언덕에 조그마한 집 한 채 지었어요. 울타리는 않겠어요. 창으로 내다보는 저 세상은 온통 푸르른 나의 뜰 감나무 한 그루 심었어요 어머니 기침 소리가 들려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깊어 가는 고향집. ☆★☆★☆★☆★☆★☆★☆★☆★☆★☆★☆★☆★ 《4》 기쁨과 사랑 김후란 우리의 아침은 바람이 먼저 노크를 한다 그 이름 기쁨 정다운 햇살이 고개를 들이민다 그 이름 사랑 안녕하셔요 반갑습니다 기쁨과 사랑이 찾아준 우리들의 아침은 언제나 즐겁다 나는 오늘 남에게 무에 될까 나도 남에게 기쁨이 되고 싶다 사랑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 한마음 가족이 되게 ☆★☆★☆★☆★☆★☆★☆★☆★☆★☆★☆★☆★ 《5》 꽃이 피고 지듯이 김후란 꽃이 피고 지듯이 사람의 나고 죽음 또한 그런 것이련만 타오르던 촛불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다 꺼지듯 사람의 나고 죽음 또한 그런 것이련만 스러지는 아침 이슬 눈물로 지네 눈물이네 ☆★☆★☆★☆★☆★☆★☆★☆★☆★☆★☆★☆★ 《6》 나무 김후란 어딘지 모를 그곳에 언젠가 심은 나무 한 그루 자라고 있다 높은 곳을 지향해 두 팔 벌린 아름다운 나무 사랑스런 나무 겸허한 나무 어느 날 저 하늘에 물결치다가 잎잎으로 외치는 가슴으로 서 있다가 때가 되면 다 버리고 나이테를 세월의 언어를 안으로 안으로 새겨 넣는 나무 그렇게 자라 가는 나무이고 싶다 나도 의연한 나무가 되고 싶다 ☆★☆★☆★☆★☆★☆★☆★☆★☆★☆★☆★☆★ 《7》 난초 잎 닦으며 김후란 작은 물방울 모여 맑은 시냇물 바위 넘어 흐르듯 날이 밝으면 어디선가 다가와 감도는 향기로움 난초蘭草 잎 닦으며 내일을 바라보며 유리창 퉁기는 우리 가족 정다운 목소리 평생 물리지 않는 밥처럼 난 향기 은은히 미소로 마주 보는 얼굴 ☆★☆★☆★☆★☆★☆★☆★☆★☆★☆★☆★☆★ 《8》 낮은 목소리로 김후란 이제 남은 한 시간 낮은 목소리로 서로의 가슴을 열기로 하자 잠든 아기의 잠을 깨우지 않는 손길로 부드럽게 정겹게 서로의 손을 잡기로 하자 헤어지는 연습 떠나가는 연습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흰 머리칼 하나 발견하듯 이해의 강을 유순히 따라가며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자 그리하면 들릴 것이다 깊어 가는 겨울밤 세계의 어딘가 에서 울고 있는 풀꽃처럼 작은 목숨 나를 지켜보며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 《9》 눈의 나라 김후란 겨울이면 나는 눈의 나라 시민이 된다 온 세상 눈이 다 이 고장으로 몰린다 고요하라 고요하라 희디흰 눈처럼 차고도 훈훈한 눈처럼 고요하라는 계율에 순종한다 사랑을 하는 이들은 안개의 푸른 발 이사도라 던컨의 맨발이 되어 부딪치는 불꽃이 된다 겨울이면 나는 눈의 나라 시민이 되어 유순하게 날개를 접는다 그러나 이따금 불꽃이 되고 허공에서 눈물이 되려 할 때가 있다 슬픔이 담긴 눈송이들끼리 ☆★☆★☆★☆★☆★☆★☆★☆★☆★☆★☆★☆★ 《10》 둘이서 하나이 되어 김후란 둘이서 하나이 되어 밝은 이 자리에 떨리는 두 가슴 말없이 손잡고 서 있습니다 두 시내 합치어 큰 강물 이루듯 천사가 놓아 준 금빛 다리를 건너 두 사람 마주 걸어와 한자리에 섰습니다 언젠가는 오늘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이렇듯 소중한 시간이 있어 주리란 것을 그때 우리는 우리는 영원히 하나가 되리라고 푸은 밤 고요한 달빛 아래 손가락 마주 걸고 맹세도 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가 되리라고 이슬 젖은 솔숲을 거닐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순수한 것처럼 우리의 앞날을 순수하게 키워 가자고 사람들은 누구나 말합니다 사노라면 기쁨과 즐거움 뒤에 어려움과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며 비에 젖어 쓸쓸한 날도 있다는 걸 모래성을 쌓듯 몇 번이고 헛된 꿈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걸 그럴수록 우리는 둘이서 둘이 아닌 하나이 되렵니다 둘이서 하나이 되면 둘이서 하나이 되면 찬바람 목둘레에 감겨든단들 마음이야 언제나 따뜻한 불빛 외로울 때는 심장에서 빼어 준 소망의 언어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밀어 버릴 수 없는 우리만의 꿈 약속의 언어로 쌓아올린 종탑 높은 정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꼭대기에 매어 단 사랑과 헌신의 종을 힘껏 치렵니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 아래 이토록 가슴이 빛나는 날에 둘이서 하나가 되면 둘이서 하나가 되면 지상의 온갖 별들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불멸의 힘으로 피어나는 날들이 우리들을 끌어갈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잡고 같은 쪽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가렵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 《11》 떠나가는 시간 김후란 살아가는 길에 떠나감이 없다면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없다면 그래, 인생은 눈부심의 순간들이지만 가슴 뜨거운 얽힘이 있어 서로를 잊지 못하네 그리운 날들 그리운 이름들 노을이 지는 아름다움처럼 눈시울이 젖으면서 먼 먼 길이 떠나가는 시간으로 이어지네 ☆★☆★☆★☆★☆★☆★☆★☆★☆★☆★☆★☆★ 《12》 바람의 노래 김후란 밤새 내리던 비 멎고 날 들자 먼 산이 눈앞에 와 있다 가는 세월 떠나는 사람 많은 그리움이 지나갔다 호젓이 좌선하는 저 산을 바라보며 어느새 다가온 새봄에 주춤거리는 내 발걸음 그러나 새 바람은 변화의 언덕을 달려간다 나도 바람의 노래를 부르며 희망을 안고 달려간다 ☆★☆★☆★☆★☆★☆★☆★☆★☆★☆★☆★☆★ 《13》 밤하늘에 김후란 문득 저 아득한 밤하늘에 신비의 눈길 던진다. 부드럽게 흐르는 은하계에 수천억 별이 있고 또 그만한 은하계가 우주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하면 생각할수록 아찔 현기증이 난다. 우리는 너무 작은 일에 가슴앓이 하면서 자주 사람끼리 상처를 입고 자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만 그 많은 별 중에 지구상에 태어나 사랑으로 만난 우리 이게 어디 예삿일인가 이게 어디 예사로운 인연인가 나에겐 그대가 필요하다 시(時)가 된 그대 별들이 눈부시다. ☆★☆★☆★☆★☆★☆★☆★☆★☆★☆★☆★☆★ 《14》 사랑 김후란 집을 짓기로 하면 너와 나 둘이 살 작은 집 한 채 짓기로 하면 별바다 바라볼 창 꽃나무 가꿀 뜰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고 네 눈 속에 빛나는 사랑만 있다면 둘이 손잡고 들어앉을 가슴만 있다면 ☆★☆★☆★☆★☆★☆★☆★☆★☆★☆★☆★☆★ 《15》 사랑의 말 김후란 빛나는 아침 햇살 창문을 노크한다 은혜로운 시간의 시작이다 날마다 새롭게 찾아오는 오늘을 감사하며 사랑으로 만난 우리 깊은 인연을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가까워 무심한 우리 우리는 참 멀리 서 있었다 벽에 걸린 한 폭의 그림처럼 으레 그곳에 있으리라 믿으며 흘러가는 물길에 나뭇잎 떠내려가듯 떠나가는 사람 잡을 수 없는 법 이승은 너무 짧아 후회는 이미 늦은걸 바쁘게 스쳐 가는 바람 속에서 새삼 지그시 그대 눈 들여다보며 마음의 말 비로소 해 본다 “사랑해요 이 세상 끝까지” ☆★☆★☆★☆★☆★☆★☆★☆★☆★☆★☆★☆★ 《16》 살아 있는 기쁨 김후란 세상이 아무리 넓다 해도 우주가 아무리 크다 해도 나 없으면 불은 꺼지고 나 없으면 모든 빛 눈을 감는다 살아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풀벌레 우는 소리 담 넘어 울리고 새벽이면 긴 팔 뻗어 내 어깨 흔드는 햇살 소중하여라 오늘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 신비하여라 흐르는 세월의 강물 기다림을 입술에 물고 쳐다보는 내일 모레 글피 또다시 내일 모레 글피 우주는 청순한 부챗살로 열린다 ☆★☆★☆★☆★☆★☆★☆★☆★☆★☆★☆★☆★ 《17》 새벽 창을 열다 김후란 어둑새벽 창을 열다 쏘는 듯 신선한 바람 부드러운 햇살 깨끗한 눈뜨임에 감사하며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다 고요함 속으로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존재하지 않는 소리가 태어나고 힘 있게 일어서는 생명의 빛 길 없는 길 열어가는 새 떼처럼 나도 이 아침 날개를 펴다 도전과 극복이다 큰 세계가 있다 미래의 만남을 향하여 날자 크게 크게 날자 ☆★☆★☆★☆★☆★☆★☆★☆★☆★☆★☆★☆★ 《18》 생명의 깃털 빈 의자 4 김후란 저 거대한 산이 앉았던 자리 고요함을 딛고 흔들리고 있다 일렁이는 물거울에 얼비치는 존재가 보인다 광막한 우주 휘돌아 다시 돌아온 생명의 깃털 모든 곳은 누군가가 앉았던 자리 보이지 않아도 영원히 숨 쉬며 다음 분을 위해 햇살이 가만히 손을 얹고 기다린다 한없이 다사롭다 ☆★☆★☆★☆★☆★☆★☆★☆★☆★☆★☆★☆★ 《19》 슬픔에 대하여 김후란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픔보다 더 깊은 게 슬픔이란 걸 세월의 이끼 같은 슬픔이 그리움이란 걸 아득히 높은 산 바위 위에 홀로 피어 한여름 분홍 꽃망울 터져 그 향기 백리 길 번져 간다는 이름도 서러운 백리향百里香처럼 그렇게 먼 세상 슬픔에 대하여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 《20》 쓸쓸한 날 김후란 산빛 깊은 비 오는 날의 이 쓸쓸함 어느 기슭에 기댈까 바람조차 버리고 떠나가고 흔적 없는 발자국 뒤돌아보며 그냥 살아있음 신비롭게 지켜보며. ☆★☆★☆★☆★☆★☆★☆★☆★☆★☆★☆★☆★ 《21》 저 불빛 아래 김후란 저기 보이는 산기슭 저 불빛 아래 사는 인 누구일까 문득 둘러보면 너무나 많은 이 떠나갔네 먼 길 짧은 생 왜 그리 종종걸음쳐야 하는지 서러운 날 더욱 따사로운 불빛 그리운 얼굴 오, 그리운 그 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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