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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탐방 150회] 노들나루

2019. 04. 18. 오전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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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탐방 150회]  노들나루

《백로가 노닐던 곳 ㅡ 노들나룻길》
 


+5월1일(수) 13:40까지 오세요
+해설 14:00~16:00?
+인원 : 20명
+사회공헌금 : 1,000원(현장 수납)
+만남의 장소 : 9호선 흑석역 1번 출구 지하
+탐방경로 : 효사정 /학도의용군 위령탑 /한강대교(한강인도교)  /노들나루 /용양봉저정 /노강서원 터 /사육신공원 (9호선 노들역)



● 1900년에 개통된 한강 첫 다리인 한강철교를 갑니다. 한강대교 중앙에 위치한 노들섬은 모래언덕에 둑을 쌓아  중지도라 불렀고 1995년에 노들섬으로 개칭되었습니다.


● 노들의 의미는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이라는 뜻으로 이 부근 나루터를 노들나루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바꾼것이 <노량진>입니다.



《효사정》

● 효사정 : 한강변 정자 중 효의 상징. 세종때 우의정을 지냈던 노한대감의 별서였습니다. 그가 눈을 감았을 때 세종은 3일간 조회를 중단했을 정도로 그를 아꼈다 합니다.


● 노모가 운명하자 한강변에 모신 뒤 3년간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그곳에 효사정을 짓고 날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자신도 그곳에 묻혔다 합니다.



● 노한대감의 17대 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현판을 썼다합니다. 조선시대 한강변에는 왕실소유, 개인소유의 많은 정자가 있어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절경을 즐겼다 합니다.


● 한강변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압구정'과 '망원정' 그리고 '용양봉저정'과 '소악루'가 있는데 우리 역사문화 탐방이 망원정과 소악루는 답사한 바 있습니다.


● 한명회의 압구정, 효령대감의 망원정, 겸제정선의 '소악루' 정조의 '용양봉저정'은 한강변의 대표적인 정자였습니다.


 


● 효사정에서 내려오다 보면 심훈 동상이 보입니다. (흑석동 성당 자리가 심훈 생가터)



● 경회루에서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전달해주는 장면을 목격한 박팽년은 울분을 참지 못해 경회루의 연못에 빠져 죽으려 하였습니다.


● 이때 성삼문이 후일을 도모하자며 말렸고 이후 박팽년 등은 단종 복위를 꿈꾸었습니다.


● 작년 가을 <정선 아라리>를 보았던 남산에 있는 <한국의집>이 박팽년의 집 터였습니다.



《박팽년의 묘》


● 박팽년, 그는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을 남겼습니다. 순천 박씨로 전 국회의장 박준규, 영화배우 박노식,박준규 등이 그의 후손입니다.


● 선조실록 1603년 4월 21일 기록

※그리고 박충후는 문종대의 충신 박팽년의 후손이다. 세조가 육신을  주살한 뒤에 박팽년의 손자 박비는 유복자이었기에 죽음을 면하게 된 것이다.

 ※갓 낳았을 적에 당시의 현명한 사람의 힘을 얻어 딸을 낳았다고 속여서 이름을 비라 지었으며 죄인들을 점검할 때마다 슬쩍 계집종으로 대신함으로써 홀로 화를 모면하여 제사가 끊이지 않았으며, 박충후는 그의 증손으로서 유독 박팽년만 후손이 있게 된 것이다.


● 박팽년이 죽고 연좌제로 인하여 3족이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남자 9명, 여자는 모두 관노비)


● 박팽년의 손자며느리는 당시 임신 중으로 다행히 친정 아버지가 현감으로 있는 경북 달성군 사동의 관노비가 되었습니다.


● 마침 같은 시기에 임신한 충직한 계집종이 있었는데, 며느리가 아들을 낳으면 자신이 낳은 자식과 맞바꾸자고 하였습니다.


● 마침 며느리는 아들을 낳았고, 그 계집종은 딸을 낳아 서로 바꾸고 이름을 <박비>라 지었습니다.


● 당시 세조의 지시는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노비로 삼으라 명하였습니다.


● 박비는 관에 자수하고, 이를 보고받은 성종은 크게 기뻐하여 이름도 <유일하게 남은 옥구슬> 이란 뜻의 <일손>으로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의정부에 있는 노강서원》


● 조선조 숙종 때의 문신 박태보는 인현왕후의 폐위가 부당하다고 상소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귀양을 가던 중 순절하여 문열공으로 추증됩니다.


● 노강서원에 봉안된 박태보는 고문 후유증으로 귀양길의 노량진에서 숨집니다.


● 원래는 순절지인 노량진에 세워졌으나 6.25때 소실되어 의정부에 세워집니다.


● 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사액서원(임금이 현판을 내려준 서원)입니다.




● 용양봉저정 : 정조가 수원 화산에 있는 아버지 장조의 무덤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갈 때, 지금 한강의 한 부분인 노들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건너가 잠시 쉬기 위한 행궁으로 쓰던 곳.



● 왕이 능행 중에 들러 점심 수라를 들었기에 <주정소>라고도 하였던 <용양봉저정>



《능행길에 사용되었던 배다리 남쪽 부분》



《노량행궁 세부도. 위는 용양봉저정》


 


《능행길에 사용되었던 북쪽 부분 배다리》



《배다리를 건너는 혜경궁 가마 세부도》



●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왕이 탄 말이 혜경궁의 가마 뒤를 따르고 있는 세부도입니다.


● 중앙의 백마에 탄 사람이 없는 것은 임금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이며 말만 그렸지만 임금이 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 한강에 배다리를 처음 설치한 기록은 태종 17년이며 조선시대에 한강, 임진강, 압록강 등에 배다리를 설치힌 사례가 있습니다.



● 80척의 배 중 36척은 다리로 이용하고 나머지는 이렇게 선창 좌우에 배치하였습니다.


● 홍살문은 이곳과 반대편, 그리고 중앙에 합 3개를 설치하였습니다.


● 배에 닻을 내린 것이 보이고 이 닻을 내린 상태에서 두 배를 나무로 이어가며 다리를 만들어 갔습니다.


● 배가 연결되면 위에 판자를 깔고 그 위에 잔디를 깔았습니다. 도로가 완성되면 판자의 양쪽 끝에는 난간을 설치했습니다.



● 왼쪽의 빨간 원 부분이 선창입니다.


● 선창다리는 주교와 연결하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 빗장을 지르는 방법을 써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만들었는데 이를 그림에서는 배와 꺾어지게 이어진 방법으로 표시하였습니다.


● 각 배에는 12명의 군사가 있어 80척에 모두 1,000명의 군사가 배치되었습니다.


● 이렇게 정조가 주교 제도를 정비하고 필요 물품을 규격화함으로써 경비나 인력이 크게 절감되었다 합니다.


● 참고로 이 <한강주교환어도>에는 군사 등 행사인원 696명과 구경하는 일반 백성들 267명 등 모두 963명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중의 주교도》


● <화성능행도>는 본래 진찬연을 비롯한 궁중행사를 기록한 병풍입니다.


● <한강주교환어도>는 궁중행사가 아닌 주교 자체를 주제로 하였습니다.


● 1795년 화성행차는 조선시대 궁중회화의 역사, 행렬도의 역사까지 새로 쓰게 한 대 사건이었습니다.


●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핍박받던 정조가 백성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당당한 군주로 드러나는 것을 만천하에 보인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고 역사적인 그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댓글 4개

조명희 2019. 04. 19. 오전 06:37

이렇게 훌륭한 문화제가 있는 것을 미처 몰라 너무 안타갑습니다. 5월 1일 꼭 참석 하고 많이 동원 하고 싶습니다.

김혜련 2019. 04. 29. 오전 06:13

반갑습니다. 5월1일 오후 1시40분까지 9호선 흑석역 1번출구 지하로 오세요.

김혜련 2019. 04. 29. 오전 06:24

'사색의향기 - 역사문화탐방' 밴드로 초대합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 들어오세요. https://band.us/n/a4abz5x52eI14 From 김혜련이사/ 역탐 명예회장

김혜련 2019. 04. 29. 오전 06:25

역사문화탐방 밴드에 32명 신청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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