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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역사탐방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역사탐방 >
올해는 우리 민족 모두에게 뜻깊은 해입니다.
100여년전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영토와 주권이 유린당하고 국민의 지위마저 빼앗겨 이에 분연히 일어선 3.1운동과 민족 정통성의 기초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3.1운동의 비폭력 평화정신은 민족의 독립과 해방운동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상해와 항주, 남경, 중경의 도시들은 임시정부의 발자취와 임정열사분들의 숭고한 피와 땀과 정신이, 중국의 동북지방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사분들의 숨결이 아직도 느껴지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 일환으로 마련한 해외 문화유산 탐방을 통해 겨레의 가슴에 독립운동 정신을 일깨워 준 3.1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선혈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 얼과 정신을 기리고자 역사탐방 여행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행복한 문화나눔”을 모토로 하는 사색의향기에서는 상해를 중심으로 한 가흥,항주,남경 등의 임시정부 청사와 임정열사분들의 의거지 탐방을 진행합니다.
1. 일시 : 2019년 5월29일(수)~6월2일(일) 4박5일
2.비용
참가비 : 114만원 (일반적인 옵션을 제외한 순수 여행비용 96만원)
포함사항 : 기사/가이드팁 8만원, 송성가무쇼 5 만원, 중국단체비자 5만원, 여행자보험(1억), 관광지입장료, 전일정 식사, 전용차량,호텔 2인1실
* 싱글차지(16만원/4박)
* 참가비 114만원 이외 일체의 추가 비용 없음(노옵션, 노쇼핑)
취소수수료
출발 60일 전 : 항공권 취소수수료 + 50.000원 공제
출발 30일 전 : 항공권 취소수수료 + 100.000원 공제
출발 10일 전 : 항공권 취소수수료 + 200.000원 공제
출발 3일~당일 : 환불없음
항공권 취소수수료는 전액 (항공사 취소규정에 따름)
3. 신청인원 : 30명(입금순)
4. 신청방법 : 댓글로 신청하고 입금하시면 신청 끝.
* 예약금(30만원)은 신청후 3일 이내에 입금해 주세요
[입금계좌] 국민은행 597301-04-052056 (사색의향기)
문의 : 070-8666-5099 / 담당자 : 장성현
5. 항공편
05월29일 아시아나항공 인천 국제공항 09:05 출발
06월02일 아시아나항공 인천 국제공항 19:20 도착
6. 주요 일정(여행지)
<5월29일, 첫째날>
-. 인천 국제공항 출발/푸동 국제공항 도착
-. 상해임시정부청사, 영경방, 홍구공원, 만국공묘
-. 황포강 유람 및 외탄야경 감상
<5월30일, 둘째날>
-. 가흥으로 이동/김구선생 피난처, 임정요인 거주지
-. 항주로 이동/ 서호유람, 청하방 옛거리
-. 항주임시정부청사, 사흠방, 오복리2가2호, 청태 제2여사
<5월31일, 세째날>
-. 남경으로 이동/ 이제항 위안소 유적진열관/ 주화대표단 건물
-. 남경대학살 기념관/부자묘 옛거리
<6월1일, 네째날>
-. 남경총통부/ 진강으로 이동
-. 진강 임시정부 자료전시관/상해로 이동
-. 동방명주타워+역사박물관
<6월2일, 마지막날>
-. 예원, 상해 옛거리/ 공항으로 이동/푸동 국제공항 출발/ 인천국제공항 도착
6월 상해 날씨정보
역사탐방 지도 보기
https://drive.google.com/open?id=1f2B3tUJAFwKSafoSPzxyaEusRVz-0E10&usp=sharing
7. 여행지 소개
도시정보 – 상해[ 상하이 ]
상해는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1842년 남경조약으로 개항된 이후 국내 외의 새로운 문물을 흡수해 온 국제적인 상업도시이다.
역사 속에서 중국의 어떤 도시보다 서양의 문물을 빨리, 쉽게 받아 들인 곳이기에 중국의 다른 도시와는 색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로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도시정보 – 항주[ 항저우 ]
항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절강성의 성도(城都)로, 7대 고도의 하나로서 중국이 자랑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자원이 풍부하고 경치가 수려하다.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항주에 들렸다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전해진다.
항주는 아열대 기후에 속하여 사계절이 분명하다. 6개의 구와 2개의 현으로 나뉘며, 총면적은 683㎢이고, 인구는 170만 명에 이른다.
항주는 연평균 기온이 16℃ 정도로 온난 습윤하며,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계절마다 특색이 있어 어느 계절에 여행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멋이 있다.
도시정보 – 남경 [ 난징 ]
남경은 소주로 유명한 강소성(江蘇省)의 성도며 명태조의 건국지로서 남경대학살의 아픈 역사를 지닌 역사의 도시다. 총 면적이 6,516㎢에 이르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로 약 235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중국의 4대 고도(古都)중 하나이면서 남경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나라를 세운 곳이고, 11년간 태평천국의 도읍지였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손문이 청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둔 곳이기도 하다. 훗날 남경대학살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오랜 세월의 역사를 간직한 고성으로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상해[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이 건물은 1925년에 세워진 하나의 석고문(石库门)식 주택이다. 한국”3.1운동”이후 1926년,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 건물로 입주하였고 당시 김구선생님께서 총책임을 맡으셨다. 193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군에 포위되였고 어쩔수없이 상해를 떠나게 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해에서 제일 오래 근무하고 제일 완정하게 보존된 유적지이다.
윤봉길의사 의거지 - 홍구공원(鲁迅公园)
1932년 4월 29일 한인애국단 단원 윤봉길이 일제가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기념식 및 상해사변 승리축하식을 거행하는 것을 이용하여 일제의 군부와 정관계 수뇌부 7명을 처단하는 의거를 일으킨 곳이다.
윤봉길은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기념식장에 잠입한 후 식장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오전 11시 미리 준비해 온 도시락 폭탄을 일본군 수뇌부가 있던 연단을 향해 투척하였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연기와 함께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폭탄의 파편에 맞은 시라카와(白川) 대장은 5월 26일 사망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다수의 일본군 수뇌부들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윤봉길의사가 투탄의거를 결행했던 홍구공원의 이름은 현재 ‘노신공원’으로 바뀌었다.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1994년 4월 27일 ‘매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졌으며, 1998년 4월 29일에는 ‘윤봉길의사 의거 기념비’를 건립되었다. 그러나 ‘매정’과 ‘의거비’는 당시 의거 현장과는 조금 동떨어진 위치에 세워졌다.
만국공묘(宋庆龄陵园)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인들의 묘는 원래 정안사로에 있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과 상해시의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독립운동자 등 외국인 묘 가운데 일부가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 14기의 묘가 있다. 이 가운데 노백린, 박은식, 신규식, 안태국, 김인전 등 5기는 1993년 8월 5일에 봉환되었고, 윤현진, 오영선 등 2기는 1995년 6월 21일에 봉환되었다.
만국공묘는 중국 정부에서 관리하며, 1981년 6월에 송경령능원으로 개칭되었다. 현재에도 박은식ㆍ신규식ㆍ노백린 등의 묘 표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황포탄 의거지
의열단원 김익상과 오성륜이 1922년 3월 28일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귀환 도중 상해에 도착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를 저격한 의거 현장이다.
오성륜이 먼저 권총을 발사하였으나 불행히 다나카의 뒤에 있던 영국 부인이 총을 맞고 절명하였고, 뒤이어 김익상이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로 끝났다. 다나카는 곧바로 피신하였다. 김익상과 오성륜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상해 일본총영사관 경찰서로 신병이 인도되어 조사를 받았다. 조사 중에 오성륜은 1922년 5월 2일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김익상은 일본 나가사끼 재판소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몇 차례의 감형을 받아 20년을 복역하였다.
가흥[자싱] 김구선생피난처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김구는 미국인 목사 피치의 집에 피신하고 있다가, 저보성(褚輔成)의 도움으로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김구는 가흥으로 피신한 직후 ‘장진구’ 또는 ‘장진’이란 가명을 사용하면서, 저보성의 수양아들 진동생(陳桐生)의 별채인 매만가(梅灣街) 76호에 머물렀다.
김구와 관련된 유적지는 김구가 피난 시기에 머물렀던 건물과 ‘김구피난처 진열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2층 목조 건물로 1층은 접견실 겸 식당으로 2층은 침실로 재현해 놓았다. 2층에는 김구가 사용하였던 것과 같은 형태의 침대와 옷장이 전시되어 있다. 2층 한쪽 구석의 마루에는 나무로 만든 비상 탈출구가 있다. 김구는 일제의 수색을 피해 이곳 비상구를 이용하여 1층으로 내려가 주애보(朱愛寶)와 배를 이용하여 호수로 피신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침대 바로 밑에 비상구가 있었으나, 현재는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침대의 위치를 옮겨 놓았다.
가흥[자싱] 임시정부요인 피난처
한국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지는 가흥시 일휘교(日暉橋) 17호에 위치해 있다.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김구는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이동녕ㆍ박찬익ㆍ엄항섭ㆍ김의한 등과 그 가족들도 가흥으로 피신하여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일휘교 17번지는 김구가 피신하여 있던 매만가 76번지와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항주[항저우] 임시정부청사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가흥을 거쳐 절강으로 들어왔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항주에 도착하여 처음에는 군무장 김철이 머물던 청태 제2여사를 청사로 사용하다가 중국 국민당의 도움으로 장생로 호변촌 23호에 청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 이곳을 청사로 사용했는지 알려주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일제측 자료를 통해 1935년 11월까지 사용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중국의 '국가급 항전 시설 및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한국독립당 사무소 터(사흠방)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관계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대표적인 독립운동정당이었다.
한국독립당은 1933년 말까지는 상해에 본부를 두고 있었으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항주로 이동함에 따라 1934년 1월 항주로 본부를 이전하였다.
이후 한국독립당은 기관지로 《진광》을 발행하는 한편 ‘항주구회’와 ‘항주특구회’ 등의 지부를 설치하고, 간부진에 대한 개편을 단행하여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가족거주지 터(오복리)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상해를 떠나 항주에서 약 3년 6개월여 동안 머물렀다. 이 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청태 제2여사에 이어 호변촌 23호에 청사를 두었다.일제 측의 정보 문서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그 가족들이 처음에 임시정부 청사에서 함께 생활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호변촌 청사에서 생활하던 가족들이 1934년 11월 오복리 2가 2호로 이전하였다고 나와 있다.
군영반점 (청태 제2여사)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윤봉길의 투탄의거 직후 일제의 감시와 검거를 피해 상해를 떠나 항주에 도착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항주로 이전한 후 처음으로 사용한 청사가 청태 제2여사였다.
이곳 32호실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장 김철이 머물고 있었고, 임시 국무위원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인화로 22호로 지번이 바뀌었고, 청태 제2여사 자리에는 군영반점이 자리잡고 있다.
서호공원
서호는 항주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유명한 미인 서시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라고도 불린다. 서시에 대해서는 실제 인물인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로는 월나라 왕인 구천이 오나라의 왕 부차에게 바쳤던 인물로, 결국은 구천의 계략대로 오나라왕 부차가 서시의 미모에 빠져 나라일을 돌보지 않게 되었고, 오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상 양귀비 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미인으로 꼽힌다.
서호는 안개가 끼었을 때나,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화항관어는 봄에 모란꽃을 보며 용정차를 마실 수 있는 운치있는 공원으로 누각 등이 세워져 있으며 수많은 모란이 피어있는 목단원이 유명하다.
남경 총통부
난징 총통부 (남경 총통부; 南京總統府)는 중화민국에서 난징을 수도로 삼은 국민정부 때의 총통부이다.중공군이 1949년 4월 23일 난징에 입성하고 하루 후인 4월 24일 총통부가 중공군에 함락되자,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완 섬의 타이베이로 옮겼다.
1998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 의해 이 건물에 난징 중국 근대사 유적 박물관이 개관되었다. 2005년 4월 27일 중국 국민당 주석 렌잔이 이 건물을 방문한 바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본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환국한 이후 임시정부의 잔무처리와 중국 내 한인교포들의 생명과 재산보호, 귀국문제 등 제반문제의 처리를 중국 정부와 협의하기 위해 조직한 기구였다.주화대표단은 1945년 11월 1일 중국 정부와 협의하여 정식으로 설치되었다. 1947년 1월 1일 한국주화대표단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1948년 8월 10일 해산하였다.
주화대표단의 단장에는 박찬익이, 대표에는 민필호와 지청천 두 명이 임명되었다.
부자묘거리
중국 각 도시에 퍼져있는 크고 작은 공묘중의 하나로 규모는 곡부의 공묘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강남을 대표하는 고건축물이면서 남경의 대표적인 관광성지다.
앞서 말했듯이 남경시 중심, 진회 강변에 위치한 남경부자묘는 중국 고대 저명한 대 사상가이면서 교육자인 공자를 공양하고 제사지내기 위한 곳이다. 간단히 '문묘'라고도 불리며, 달리는 '문선왕묘'라고도 불린다. 부자묘라는 이름은 공자가 옛부터 사람들에게 존경의 의미로 '공부자'라 불리웠는데, 그 이름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남경[난징]대학살기념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역사.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을 중국인들은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세계제 2차대전, 일본의 잔인한 만행이 만연하던 때에 남경에서는 300,000명의 희생자가 생겨났다. 일본군이 남경에 침입해 대학살을 자행하고 도시 전체를 피바다로 물들였던 것이다.남경대학살기념관은 이러한 사실을 증언하는 사진과, 생존자의 증언, 후에 발굴된 인골들을 그대로 전시해 놓은 곳이다. 흰콘크리트묘처럼 생겨 있어서 다소 삭막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지만 그때의 생생한 사실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역사체험관이다.
진강 임시정부 자료전시관
동방명주타워와 역사박물관
동방명주탑은 상하이에 있는 TV탑이다. 정식 명칭은 동방명주 TV탑으로 황푸 강변 푸둥 신구의 루자쭈이에 위치하고 있다. 반대쪽은 와이탄이다.
동방명주탑은 467m로 1991년 7월 30일에 착공하여, 1994년 10월 1일에 완공되었다. 현재 101층의 상하이 세계금융센터가 492m로 상하이 내에서도 1위 자리를 내주었으며, 이러 88층의 366m의 진마오 타워가 그 다음을 따르고 있다. 동방명주탑은 세계에서는 다섯 번 째로 높은 타워(Tower)이었다.
송성가무쇼
세계 3대 쇼 중 하나인 송성가무쇼는 죽기전에 꼭 봐야할 공연으로 선정 되었을 만큼 다양한 볼거리와 화려한 무대 효과가 일품인 중국의 대표 공연입니다.
프롤로그 \"송성천년의정\"으로 시작하여 \"양정의 빛\"과 송궁연무, 금과철마 \"아름다운 서호. 아름다운 전설\", 지구촌모임\" 등 4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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