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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채 원 2004. 10. 11.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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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걷이를 했다.
총 고구마 두 상자.

초여름부터 땀 흘려 지은 농사(?)를 마무리하는 수확인 셈이다.

대여섯 평의 작은 밭, 단 두어 상자에 불과한 수확이지만
농사꾼 흉내는 모두 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경운기가 없으니 괭이로 일일이 파고 삽으로 고랑을 만들어 놓고 거름을 묻고 수분을 저장 하기 위해 검정비닐로 일일이 고랑을 씌운 후에 비 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유성 장날에 사다가 물에 담가둔 여린 고구마를 심는다.


비가 와서 젖은 흙이라도 하나하나 한 포기마다
물을 주면서 정성껏 심어야 한다.

며칠 동안 옮겨 온 몸살을 하듯 싱싱하던 고구마 싹은 축 늘어져 있다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 하면서 푸르러진다.

처음 한 달은 비가 안 오면 말라 죽을까봐서 자주 물을 떠다 주어야만 하는데
등산로 입구까지 물을 길어다 주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낑낑대고 들고 가면 이번엔 밭에 서식하는 모기가 오랜만에 만나는 식사가 왔다고 달려 들어
더운 여름에도 방수잠바를 입어야만 할 지경이다.
일주일만 안가도 잡초들은 어쩌면 그리 잘도 크는지 고구마순은 보이지도 않게 되니
곡식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에 자란다는 옛말이 꼭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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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집에선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지었다.

파는 것은 아니지만 한겨울 군것질감이 많지 않던 시절 우리 가족의 반 양식이었던 고구마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고구마을 캐어 집으로 나르는 일이 연례행사였는데
주로 일요일에 우리 형제들이 모두 모여서 부모님 일손을 도왔던 기억이 난다.

큰 밭에서 캔 고구마를 모아서 집으로 나르는 일은 참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윗목에 우리를 해 놓고 겨우내 쩌 먹고 구워먹고 날것으로 깎아 먹기도 하고
보물단지처럼 마을 누구네 집을 가도 방 한 귀퉁이에 고구마 우리가 있었다.


봄이 되면 엄마는 큰 고구마를 골라서 온상을 했다.

두엄 더미 한 켠에 흙을 퍼다가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싹을 틔워
다시 한해 농사를 지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때는 그런 일들이 귀찮고 관심도 없이 먹는 것만 좋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이제는 스스로 땅을 파는 일부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참 세월은 사람을 여러번 바꾸어주는 것 같다.
아침마다 오르는 등산로입구의 묵정이 밭에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아저씨가 고구마를 심는 것을 보고
불현 나도 밭을 일구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것이 두 해가 되었다.

힘들게 물길어다 주는 일을 한번쯤은 도와주던 남편도 나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기고
고구마 줄기를 따다가 나물로 볶아 먹으라고 친구에게 주면
나의 이런 농사놀음에 신기해 하고 의외라는 반응들이다.
 

내친김에 한 고랑 열무도 심어보고 가지 호박도 심어보지만 땅은 곁눈질 농사꾼에게
호락호락 쉽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호박은 많이 열렸다가도 다 떨어져 버리고
열무는 나오기가 무섭게 벌레들이 기승을 부려 내 차례가 오지도 않으니 공연히 꿈만 꾸다가 만다.


토마토 싹이 아주 잘 자라서 많이 열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순을 따주지 않아서 키만 크다가 마니 인터넷 검색으로 의존하는 일꾼이
어느 순을 따야 하는지 농사야 말로 지식으로만 되는 일이 절대 아니란 것을 실감한다.


그나마 농사꾼 흉내를 내던 놀음도 얼마 전 이사로 멀어져 두 해를 끝으로 옆에 밭 아저씨에게 물려주고 돌아왔다.

친구들이 어디 가냐고 물으면 <우리농장>에라고 우스개 소리로 대답하곤 했는데
이제 나의 피땀 어린(?) 농장을 말 한마디에 주고나니 산 길을 내려오는 마음이 조금은 허전하다.

이년동안 땀도 많이 흘린곳인데.....
봄이 오면 다시 어디 고구마 농사 삼년차인 날 기다리는 땅이 없을까 찾아봐야겠다.
그땐 내친김에 경운기도 하나 장만해 볼까나?

 

   

댓글 4개

주어리 2004. 10. 11. 오전 12:00

내년 봄엔 꼭 채원님의 농장이 마련되어 고구마 농사를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운영자 2004. 10. 12. 오전 12:00

올해 우리 어머니....집 옆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시는데... 상추 몇 개 심을 작정으로 하신 게....이거....거의 밭농사 다 하시네요...가지, 고추, 갓, 배추, 무우, 깨, 호박, 파, 옥수수, 고구마.... 에구...흙에서의 삶이 ...몸은 고단해도 즐거우신가 봅니다...^^*

간이역 2004. 10. 12. 오전 12:00

유성장에서 산 고구마순이 맺은 결실이 두박스.. 언제 맛이라도 볼 수 있겠나요?쩝... 별스럽지 않게 여기는 농사일에도 노하우와 정보가 필요하겠죠. 노력하는 사람만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내년에는 더욱 실감하시길~~~~

김동원 2004. 10. 19. 오전 12:00

참, 땅을 가꾼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가를 경험해 본적이 있습니다. 숲속에서 맨땅을 일구고 그곳에 더덕씨를 소중히 뿌렸었지만 다음해 하나도 삯이 나지않아 실망을 한적도 있고.. 맨땅을 일구고 나면 제일 먼저 잡초가 쉬지않고 돋아나며... 땅을 일구는 일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직접 체험해 보니 농사 짓는 분들이 얼마나 노고가 많으신지 알것 같았습니다. 실감이 가는군요. 다음해에는 좋은 결실을 맺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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