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훈련소 회고
훈련소 회고
1.입소일
뗏장을 들고 걸었다
황토 연병장이었다
작은 언덕
아카시아가 계속 낫질을 당하고
잠깐 쉬는 사이
그 옆에 누어 모든 소리에 눈치를 본다
갈참 병장이 기분 나쁘다고 했다
그의 시선은 모두에게 숨을 멈추게 했다
한 세상의 당연한 모습
그리고 곧 담배 하나씩 피우라고 했다
아름다운 말도 사용할 줄 아는가 보다
2.청소
빗자루와 삽을 하나씩 선택하라고 했다
이슬이 발에 닿을 때
상큼한 아침은
어찌하다 말을 하지 않고 곁에 있었다
끝내 땅에 닿은 쓰레기를 치우 수 없었다
내 발이 쓰레기가 될까봐 다른 것들을 치울 수 없었다
그대로 두 손에 받쳐 길 옆에 옮긴다
그대의 손과 발이 닿지 않게스리
먼발치로만 바라보게스리
옳고 그름의 이치는 별로 재미가 없어져 버렸다
3.제식훈련
자꾸 이래라 저래라 말 한다
제각기 다른 선택은 하나의 종말을 고하라고
똑바로 서서 움직거림 없음은
그 중에 계속 해보고 싶은 동작이었다
그러면 세상의 돌아감을 볼 수 있어
제 얼굴을 그 속에서 찾을 수 있지
그러나, 곧 움직여야 함이여!
앞으로 뒤로 옆으로
모두 서로는 눈치를 봐야 했지
오와 열을 맞추기란 정말 싫었다
들어왔던 정문은 못나가게 지키고 있고
담 근처에 다가서면 뒤로 돌아 갓!
한동안 손은 계속 올려야 했다
얼굴을 가리자
얼굴을 가리자 앞을 못 보게
숨을 못 쉬게 얼굴을 꽉 가리자
4.점호
나도 있다
분명히 있다
있다
열다섯 번째다
앞을 보고 있었다
똑바로 앞만 보며 멋진 순간을 갖다
꼼짝거리지 않고 서서
앞을 보고 있었던 것은 결코 원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럿 중에 내가 있음으로
오늘도 무사히 번호 끝이 울렸다
다행함을 느끼지 못하며
침상 삼선에 정렬한 채
앞 사람과 열심히 생각 버리기 싸움을 한다
너는 아는가?
모든 형식은 제각기 갖추고 있어야 함을
그 형식 안에 네가 있음을 아느냐?
똑바로 선 지금을
이 모두 우리가 서로 바라보며 만들고 있음을
그 사이를 주번사관이 왔다갔다함을
결코 주번사관의 얼굴을 감히 볼 수 없음을
네가 아느냐?
5.식사 시간
식사에 대한 감사의 묵념
고개를 숙인 그 순간 순간들
그때마다 자꾸 떠오르는 게 달랐다
누구에게 감사하는 게 아니고
밥과 국과 김치에게 감사하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가로수를 따라 비를 맞던
신설동 거리도 생각했고
쪼그리고 앉아 소주 먹던 포장마차도 생각했다
킥킥 속으로 웃기도 하고
메시꺼움을 참으며 웃기도 하고
서로는 서로를 위로하려 웃기도 했다
웃음도 씹고 삼키며 웃어야 했다
모두의 밥그릇과 숟가락이 똑같았다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같은 거다
매번 남는 것 없이
무엇이다라고 맛을 말할 시간과 이유 없이
같은 시각에 감사히 먹었습니다라고
말을 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이번엔 몇 개 밥알이 붙어있는 식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언제고 식사 때면 인사를 했다
살아있음에 대한 인사일진대
결고 그 이상 구차한 말은
모두 덧붙히지 않았다
6.집합
미리 그어진 곳으로
자꾸 들어가라고 말한다
어떤 장정은 담배를 더 피우고 싶다고 했다
어떤 장정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장정은 조금 더 자고 싶다고 했다
어떤 장정은 왜 집합시키냐고 말했다
어떤 장정은 제까짓게 뭔데 명령이야라고 말했다
어떤 장정은 그냥 여기서 뭘 말하는지 듣겠다고 했다
어떤 장정은 두려운 듯 빨리 모이자고 했다
어떤 장정은 옆에서 나는 소리들을 들으며 망설이고
어떤 장정은 아예 못 들었는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 후,
한 곳에 모인 그들은
앞을 보며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 아는 이야기건만 매번 새롭게 들리니
시간이란 계속 변하고 있음을 매번 잊게 하는가 보다
7.사격
조준선 정렬
정조준
숨을 멈추고
방아쇠 1단 2단
격발!
탕소리와 함께 큰 숨이 터진다
맞든 맞지 않든 우리는 총알이 나갈 때까지
숨을 쉴 수 없었다
합격한 사람은 옆에서 쉬고
불합격한 사람은 몇 시간이고 기합을 받는다
사격이 끝나면 잘 쏘든 못 쏘든
다시 내무반에 돌아가건만
사격을 잘하지 못하면 눈물고개를 보아야 한다
중요한 일은 사격을 했음이라고 서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합을 받으며 누구 하나 탓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았음에 이유가 없어 기뻤다
어딘가 분명 맞았다는 것은 사실
그래서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 기뻤다
8.퇴소일과 군가
그날은 계속 군가를 불렀더란다
다른 곳의 테두리는 더 넓어지리라는 기대와
눈에 길들여진 울타리를 못 봄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몸을 맞대고 군가를 불렀더란다
갈 곳들이 정해진 트럭 위에서
어리석게 아니 철저히 자란 듯
같은 순간에 같은 소리를 냈더란다
모두 지금 이 차에 있음으로
나라가 튼튼해진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저 웃으며 악수하기에 바빴다
이 곳을 빠져나가게 되어 축하하네!
어디로 다시 가리라고 추측하기도 하고
서로 들은 말을 빌어 정하기도 했다
멀리 떨어진 기간병들은 그들의 모조품이
대견해 보였던지 한 완성작에 미소를 지었다
끝내 시간과 사랑을 앗겨버린 어둠 속을
트럭들이 군가소리에 쫓겨 달리고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군가 뿐
이제 기쁨, 아름다움
이런 말은 별로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고통, 자유, 분노
그 또한 쓸모가 없어져 버린 퇴소일
없어진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
자꾸 군가에 담아 뱉아도 뱉아도
마구 변해버린 슬픔들
듣는 이 없어도 떠도는
차라리 6주간의 군가 같은 사랑이었다
-----------------------------------------------------
(주) 이 글은 전주 35사단에서 1975년 9월부터 6주간의
신병훈련소 기억을 1985년도에 되살려 쓴 것이다.
댓글 2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군대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인가봅니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보얐습니다. 남자에게 군생활은 특별한 기억이 많은 시간입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