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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갓밝이를 위한 살풀이

김봉길 2005. 04. 28.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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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갓밝이를 위한 살풀이


1.

어허, 우리 그날은 계룡산으로 뉘엿뉘엿 모여들던 밤이었느냐.

새파란 꿈 조각 두 손에 달랑 들고 머뭇거리던 밤이었느냐.

서툰 손짓에 밀릴 듯 저 산 지레목 밑턱엔

구름과 별과 물이 놀던 소리 자근자근해졌다.

둥그런히 바투 앉아 밤에 그대의 밤을 더한 다음

누구의 별빛이었을까 그래서 그대의 밤이 조금 보일 즈음

그대들 눈빛은 그대 구름 위에서 빛나려 하였네.

언제나 처음이고 싶은 파릇 사랑이야

한 번을 위한 만남이라고 눈엣짓까지 할 리 있었으리.

무엇일까 사랑이, 무엇을 할까 긴 사랑을 위해.

밤이 남았느냐 꿈틀거리고 있어라

그대 듣는가 어두울 수록 크게 울리는 속삭임들을.

손 모아라 높이 들어라 활짝 펴거라 붉은 손은

견디고 견디다 시퍼래질 지금은 조막손 손가락들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하기란

산 그림자를 한꺼번에 바쳐 들어야 하는 법

그대 남은 땀방울 가득 모아

높이 높이 산등성이에 올라야 한다고

키 작은 밤 몰래 그대 하늘은 외치거늘

번쩍 모둠발도 힘차게 그대 귀 모으고 있는가.


2.

어허, 우리는 숨비 소리내듯 서로의 어둠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네.

누구나 먼저 감추었던 자기의 것이라며 빌려두었던 어둠을

더 하나 벗을 옷 없어 살을 베어 떼어내기로 한 것이었어.

나의 어둠이란 고백하건대

물론 그대보다 더 어두운 것을 저 계룡산은 알고 있었으리.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고 나의 마지막 어둠을 끝내 감추려 하네.

나의 밤이란 오직 나를 위해 있어야 하는 것

그 속에 나의 말들을 묻어 놓고 웃고 싶은 것

웃으며 나의 길을 뜨거운 두 눈 감싸 안고 가고 싶은 것.

어찌 알 수 있으리 어찌 또한 말할 수 있으리

우리네 사랑이란 여기에서 정지한다는 것을

나를 지키려는 그림자 때문에 반 걸음도 뒤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우리네 그림자는 땅 속보다 더 어두워지려 하는가.

어제 그대와 만들었던 사랑 바위옷 그림엔

나처럼 그대의 눈동자도 스멀거려 숨죽이고 있구나.

울고 있어라 나로 인해 쓰러진 사랑들이여

흐늘거려 흔적밖에 남아 있지 않은 첫 사랑 눈동자여.

그대를 향해 걸쳐 있던 구름도 울어 지쳐 땅에 눕는고야.

열번 얼굴 움켜쥐고 뒤돌아 선 채

애써 눈물만 더욱 검게 물들이고 있는고야.


3.

어허, 우리네 바윗골 아저씨 노들골 아주머니는 어디에 가셨을까.

당신의 노래는 어디에 머물러 누구를 위해 몸서리치고 계신가.

먹구름 타고 멀리 깊숙히 숨어 찾을 수 없어라.

뒤돌아 보면 땅에 떨어질까 앞만 보고 가시는가

얼굴 부끄러워 깊은 모자 꽃가마라며 쓰고 계시는가

눈썹에 이는 바람에도 왜 그리 풀렁거리고 계시는가.

기다리오라 그래도 달이 웃고 있으니 당신 기다리오라.

지거나 뜨거나 웃는 달 손잡아 보시옵기를 그리고 가르쳐 주옵서.

우리 목소리는 탁한가요 부드러운가요.

우리 사랑의 살갗은 어떤 빛이어야 하나요.

지금까지 이 사랑의 길이는 당신 손뼘 만큼이면 되나요.

당신을 위한 사랑의 무게는 이렇게 펄쩍이는 심장 정도면 되는지요.

당신 목소리는 혹시 저 계룡산에 남겨 놓았을 지도 모른다며

젖은 손등 눈 비벼 우리네 작은 동무들이 찾아 떠났어요.

아직 어둠이 사라지지 않아 구름이 흘려 놓은 소리들을 따라 가겠지만,

그러다 제 그림자 쫓다가 끝내 저 구름소리보다

더 하고 싶은 소리 크게 참아 단숨에 달려 내려오겠지만,

한꺼번에 숨 몰아 서로 힘들지 않은 척 웃고 있을 테지만,

어찌해야 하나요

가날픈 빛 따라 피는 저 목련 꽃망울 잡고 고개 숙이는 것을.


4.

어허, 무엇이 하냥다짐 사랑이냐.

무엇이 싱글생글 흐르는 물 같은 사랑인지

부둥켜 서로 안지 못해 울어 울어도 목이 말라라.

어두운 곳에선 그대여 발자국 소리 듣거든 안기어라

새로이 크게 들리는 저 소리를 향해 마음껏 달려들어라.

나 여기에 있네 이것이 사랑이네 만져보게나

가져가게나 뜨거울 수록 커지는 나의 마음을.

스르릉 계룡산 귀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네.

계룡산 눈들은 조금씩 밝아오는 별과 물과 구름 옆에서 빛나고 있었네.

감추시게나 눈물을 깨끗이 닦게나 눈물자국은.

우리 모두 어둠일랑 발가벗어 밝은 곳으로 가자스라.

이제 옷은 입지 말자 내일 또한 부끄러울 시간의 옷은.

쿵더덩 숨쉬는 사랑이란 나의 것이 아니야

암만이지 암만이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야

나를 위한 사랑이란 아무런 빛을 내지 못하는 어둠 뿐이지.

동무야 나의 동무야 다시 어둠이 생기더라도 걱정하지 마시게.

그대 나의 손잡은 만큼 나 또한 그대 가슴 깊게 길게 안을 것이어늘.

보시게, 우리 얼굴 가득 가위바위보 놀이라 하자시게나.

먼저 보를 내는 동무가 저 계룡산 갓밝이 하늘까지 업어 주기로.

아스라! 눈부신 웃음이여 눈부신 눈물이여 눈부신 아침이여.

댓글 1개

화성인 2005. 05. 04. 오전 12:00

옛 선비의 풍류가 느껴지는 듯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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