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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사랑나눔캠프' 관찰일지

김봉길 2005. 06. 02.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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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사랑나눔캠프’ 관찰일지


  [프롤로그]

  원광대학교 학생생활관. 2004년 8월 1일, 일요일, 점심시간을 코앞에 두고 <사랑나눔캠프> 행사장에 도착했다. 한국예술치료학회와 원광대학교 예술치료학과에서 주관하는 캠프장이었다. 원광대학교와 SK텔레콤이 주최하고 베비라에서 협찬을, 그리고 MBC와 익산시가 후원을 했다. ‘한 마음 한 뜻으로’라는 주제가 더운 삼복 더위로 인해 더욱 뜨겁게 익산시 신용동을 달군다. 아마 그 어떤 더위나 추위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랬다. 서로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 앞엔 어떤 어려움도 극복되는 것이리라.

  캠프 참석자들은 모두 6개 부류로 나뉘어졌다. 장애우 어린이나 학생 120여명과 그 보호자 120여명, 소년소녀가장 120여명, 이들과 함께 지낼 자원봉사자 240여명, 프로그램을 진행할 강사나 교수들 50여명, 기타 자원봉사자 50여명 등 모두 700여명이었다. 이들은 서로 마음을 열기 위해 웃고 울고 놀고 자고 먹으며 1주일을 함께 지낼 것이다.

  이들이 지내는 모습을 일부나마 담기 위해 조그만 수첩을 샀다. 이름을 적었다. 김봉길. 혹시 이 수첩을 줍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 주리라는 기대로 전화번호와 임시 숙소 방 번호까지 적어두었다. 예정되지 않은 걱정을 애써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저 예비로 보험들 듯 ‘또 잃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우려로 인해 적은 것에 못마땅함이 들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조금 전에 집에서 가져온 수첩을 잃어버렸던 것을. 마음 놓고 가져다녀도 잃어버리지 않았기에 어디 떨어진 곳에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뭔가 빈틈이 있었음을. 그래, 아마 쓰레기로 취급되었을 거야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래 맞아, 사람은 항상 잃고, 또 다른 것을 구하려 노력하는 일, 이것이 그저 사는 일 아니겠느냐는 것. 그것도 자신만의 이익을 사는 일을 위해.

  다음 정리한 관찰일지는 수첩에 적은 순서대로 가필한 것이다.


  관찰 1.

  충격이란 아직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 갑작스레 눈을 뜬 경우라 표현한다면, 그랬다, 충격이란 기쁜 일과 슬픈 일, 그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충격처럼 느끼는 지금은 그저 멍할 뿐이다. 미리 다짐을 단단히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발자국 옆에서 보는 나는 내 일이 아닌 그저 남의 일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슬픔도 기쁨도 아닌 걸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아나요?

  응, 그거?

  슬쁨이라고 하지 뭐.

  아님, 기픔이라 하든지.

  그럼, 체념과 희망이 섞이면 뭐가 되죠?

  한 번은 체념했다가 그 다음은 뭘 기대하죠.

  지나가는 거 모두 체념하며

  뭐 다른 게 다가오길 기다리겠죠.

  그 다른 걸 내 것이라며 만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수없이 반복되고 나면

  섞이는 거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체념도 희망도 슬픔도 기쁨도 구분하는 게 싫어지죠.

  기쁜 체념이 된다고요?

  뭐 그래도 상관하지 않아요.

  나와 상관없는 단어들 같으니까요.


  핑계를 위해 억지 질문과 억지 대답을 만들었다. 충격 그 다음엔 비겁한 인간의 속성이 나타나는 일. 아마 그래서 다음 시간을 쉽게 기다릴 수 있는가 보다.


  관찰 2.

  팔과 다리를 다르게 저는 사람, 하늘을 보고 툭툭 땅을 세게 밟고 다니는 사람, 침을 흘리다가 참다가 또 흘기는 사람, 한도 한 나름이라 그래도 우는 사람, 그 사람 속에서 눈감고 싶은 가늘게 눈 뜬 사람.

  얼굴 볼이 넓어지는 걸, 눈 사이가 넓어지는 걸, 그래서 눈 끝이 바깥 하늘로 올라가는 걸 어찌하랴. 세상에 태어나서 남 같지 않은 나를 내가 어찌하랴. 그래도 나보다 더 같지 않은 사람이 저리도 많은데. 그래도 내 아픈 곳보다 아프지 않는 곳이 많은데, 사랑한다는 말 외에 서로 나누어 갖자고 해도 남 같지 않은 내 아픔은 나만 알고 있는데.

  그냥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어떤 때는 사랑이 되고, 이제는 사랑이 되지 않을 때도 있지. 그냥 함께 놀아 주고,  이야기 나누어 주고, 그냥 밥 같이 먹어주는 일이 그동안 갇혀 있던 아픈 내 것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관찰 3.

  점심을 먹다가 귀에 익숙한 풍물소리를 들었다. 소리를 따라 걷는 내리막길 위로 한 여름 햇볕들이 자리다툼의 열기가 뜨겁다. 뜨거운 열기를 누르는 소리, 장애우들 마음을 훑어내는 시원함은 임시로 이번 캠프의 본부로 쓰이는 건물 현관이며 자판기며 플랜카드며 나무며 잔디며 구경꾼들을 들썩거리게 했다. 12인조 장애우와 자원봉사 국악인으로 구성된 국악마당꾼들이 펼치는 흥겨움이 땀과 즐거움과 자랑스러움으로 솟아올라 캠프 참여자 모두를 환영하는 무대로도 손색이 없었다. 그들은 두드리며 소리치며 하늘을 향해, 아니 나를 향해 노래했다.


  풍물 소리를 듣는다.

  나를 두드리는 소리.

  너를 두드리는 소리.

  내가 두드리고 내가 듣는 소리.

  이것은 나다.

  이것은 너 해라.

  산다는 것은 누구를 두드리는 일,

  내 것이 아닌 이것을 두드리는 일.

  사랑이라거나 노여움이라거나 그래도 살아가야 하라거나, 어허,

  언제나 꿈틀거려 울게 만드는 엄마도 아빠도 울게 만드는 일.

  그래도 함께 두드려야 해.

  혼자는 아니야.

  함께 산다는 걸, 왜 이리도 늦게 말해야 하느냐.

  보이는 저곳으로 나를 몰고 가고 싶어.

  내가 앞에 서서

  또 내가 내가 아닌 내가 뒤에 서서

  쫓고 쫓는 놀이를 하고 싶어.

  어허, 그러다 죽고 싶어.


  관찰 4.

  나 : 너 간지럼 태울 줄 알아?

  너 : 근데 무서워.

  나 : 간지럼 놀이 해. 자, 가위 바위 보!

  나 : 네가 이겼네. 이겼으니까, 네가 간지럼 태워 봐. 

  너 : 싫어. 나 무서워.

  나 : 어서 손 내밀어, 겨드랑이로.  

  너 : (옆을 보며) 어디 갔었어? (다시 나를 보며) 나를 놀려.

  나 : (섬뜻, 목소리를 키우며) 다시, 간지럼 놀이. 자, 가위 바위 보!

  너 : (옆에 사람이 있는 듯) 너가 함께 간지럼 태워. 알았지?

  나 : 누구야? 함께 왔어?

  너 : 그래, 함께 가야 해.

  나 : (섣불리 달래 듯) 혼자는 왜 싫어?

  너 : 아니야. 함께 사는 거야.


  혼자 이야기 하는 장애우 아이는 세상에서 볼 것이 너무 많다. 그 많은 것들과 만나 악수하고 간지럼 태우고 또 태움을 당해야 하는 일은 어쩌면 누구나 가슴 벅찬 일이다. 그랬다. 그래서, 악수하는 것도 싫고, 보는 것도 싫었다. 울고 웃는 일도 그저 밥 먹는 거나 오줌 눕는 것과 같아 보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나 : 처음 보는 눈매네! 뽀뽀해줘.

  너 : 싫어.

  나 : 손 예쁘다, 악수.

  너 : 바보, 슬픈 척 하지마.

  나 : (머뭇거리다 손을 슬그머니 감추며) 누가 슬픈데…

  너 : 쳇, 무서우면서…

  나 : ?

  너 : 가까운 척 하지 마.


  내가 무서운 걸까? 아니, 진정 무서운 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인 것을, 섬뜻 말이다. 무섭다, 무서운 내가 무섭다.


  관찰 5.

  사진을 찍고 싶어. 나도 찍어줘. 손으로 입술을 가린 장애우 아이. 아이, 이거 첨 본 거야, 재밌어. 거꾸로 카메라 렌즈에다 눈을 가까이 대는 아이. 이 세상에서 카메라 처음 보는 게, 어찌 저 아이 뿐일까. 나 또한 처음 보는 것, 이러 저러하게 많은데. 매번 다른 시간 따라 수없이 다가서는, 아, 이 세상은 언제나 처음 보는 거 아닐까!


  관찰 6.

  또 다른 장애우 아이는 나오지 않은 병에 있는 얼음물을 거꾸로 빨아댔다. 눈은 계속 자원 봉사자 아주머니 말끝을 지켜보며. 손끝 따라 쫓아다니는 눈.

  히히, 그래요, 할일이 없으면 얼마나 무서운데요, 떨리고 이상해요, 가만있기가 그래요, 무섭죠, 그래서 소래해요, 내가 소리하지 않으면, 누가 계속 소리해요, 자꾸 물어 와요, 그래서 답하죠, 그렇다고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죠, 그건 너무 슬프니, 스스로 슬플 일 없으니.


  관찰 7.

  아장 아장 흰 고무신 신은

  장애우 아이를 본다


  답답해요 숨쉬기가

  숨이 잘 안 들어와요


  가슴 가슴에 너무 많아요

  언제 뭐가 이렇게 숨었는지


  삼년 동안 토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나가지 않아요


  내 숨 혼자 먹기가

  아, 답답하게도 답답해요


  눌러 눌러 신어도 하얀

  팔십 밀리 흰 고무신 아이


  관찰 8.

  캠프 개회식장이다

  커다란 강당에 서로 앉았다

  그러나 어찌 다 앉아야 할리야.


  앉기 싫은 아이가 운다

  그 아이 엄마가 울고

  옆 아이가 괜히 울고

  옆 아이 엄마가 운다

  옆 아이의 엄마 따라

  엄마 옆 엄마가 울고

  그 엄마 아이가 울고

  아,

  앉고 싶은 엄마가 운다


  강당 곳곳에서 울리는

  마음 깊은 소리들

  울음이야 언제 어디서 터지든

  그것 역시 자연의 법칙인 것을.


  관찰 9.

  이곳은 우리가 원해서 모인 곳이고, 서로 서로를 보며 서로 배우고 위로하며 위로 받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어려움과 아픔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노력이며, 우리 삶의 기록 그 자체이도 한 것입니다. 이번 행사는 참여하는 모든 분들은 사진과 영상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모이신 모든 분들께 동의를 구하고자 합니다. 바로 초상권 허락에 관한 사항입니다. 부디 여기 참여하신 분들은 동의서에 모두 서명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혹여, 동의하지 않으신 분께는 마음 아픈 일이지만, 내일 아침 일찍 귀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저의 마음은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캠프 개회식 전, 전체 책임자의 간곡한 부탁의 말이었다. 그랬다. 진정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하는지 모르는 혼동상황이었다. 결국 서로 위로해 가며 살아갈 것을.


  관찰 10.

  캠프가 시작되는 아침이면 장애우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떠나 저녁 되기까지 자원봉사자와 함께 지내야 한다. 그것은 모험이었다. 장애우에겐 그것도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받아주었던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이 세상에 혼자 떨어져 버리는 그런 아픔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생전에 몇 번이나 있을 일인가! 그 보호자 또한 얼마나 마음 졸이며 마음 한 구석 크게 떼어 놓는 듯한, 아,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새로운 사람에게 내 마음을 열게 하는 일이 그 얼마나 영광스런 일이냐!

  헤어지기 싫어 우는 울음소리와 이상한 첫 만남이 그저 비명이거나 외침이거나 저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들과 함께 모든 것이 슬프게만 다가서는 걸 어쩌란 것이냐? 우는 것은 죄가 아니라 진정 용서로 통하는 길인 것을.


  꼭꼭 잡아

  나를 잡아

  손을 잡지 말고

  내 눈물을 잡아

  손잡는 일이 우리 결국 사는 거야

  손잡는 일부터 삶은 시작되는 거야

  손에 있는

  내 눈물을 잡아


  아이가 또 운다

  헤어지기 싫어 더 크게 운다

  고개를 뒤로 젖히다가

  땅에 엎드리다가

  제 몸을 끌어 안는다

  세게 안고서 어찌 할꼬

  그냥 또 그러안고 우는 수밖에


  봐, 쟤들

  먼저 떨어져 노는 애들 봐

  쟤도 봐, 혼자지?


  처음 만난 사람 손에 안겨

  그냥 우는 아이

  울음 소리가 한 여름 매미를

  울어라 울어라 더 슬피 울게 한다


  관찰 11.

  움직여줘

  그냥 움직여줘

  나를 움직여줘

  꼭 붙어서 꼭 감싸줘

  그래도 아니야

  움직여줘

  내가 가는 곳으로 움직여줘

  처음 엄마 따라 왔어

  근데 없어 그러니

  나 움직이면 그대로 움직여줘

  지쳐도 울 거야

  몸이 말 안 들어도

  그래서 눈물 없어도

  내 소리 없어져도

  난 울 수 있어

  움직여줘

  아니면 울 거야

  아주 가만히


  관찰 11-1.

  미술프로그램 진행이 시작되었다. 먼저 인사 나누기. 자폐 장애우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조금 전 처음 보호자로부터 떨어져 온 장애우 아이들이 아직 적응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이다. 넓은 양철 쟁반에 백지를 깔고 구슬에 물감을 입혀 굴리는 프로그램.

  곱슬머리가 예쁜 장애우 남자아이는 유난히 울기를 잘했다. 자원봉사자는 아이를 껴안다시피 가슴에 안고 프로그램 진행을 돕는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쟁반에 구슬로 그림 그리는 걸 눈물 반 눈치 반 옆 눈으로 보더니, 구슬 굴리는데 재미가 붙은 모양이다.

  그랬다. 놀 거리가 필요했다. 놀 게 있으니까 울 시간이 없어졌다. 색깔을 보니 눈물이 주춤거린다. 눈물 대신 필요한 그 무엇이 있어야 했다. 노랑색을 입힌 구슬을 쟁반 종이 위에 놓고 굴린다.

  자, 세상은 쟁반 안에 있단다. 언제나 네 마음 갈 곳은 한 눈에 보이는 쟁반 안이란다. 아무리 가도 가도 부처님 손바닥 안인 것을. 그러나, 그 이전엔 마음껏 마음 가는 곳을 잘 보아두어야 한다. 아무리 보고 외우고 또 움직여 봐도 내 마음 갈 곳을 잃는 것을. 마음잡고 네 모습을 세상 가운데 놓고, 가만히 바라보려 해도 내 뜻과 상관없이 한 쪽으로 굴러가는 것을. 그래서 이리 한 번 저리 한 번 또 그리 한 번 움직여야 하는 것을. 그때마다 다른 색깔 입히고 입혀 어떻게 지나왔는지 서로 비교해야 하는 것을. 


  울어도 혼자 즐기는 걸 배워라

  새로운 것을 느끼도록 도와줘라

  물감을 충분히 입혀서

  마음껏

  굴리고 싶은 곳으로 가도록 해줘라


  <'관찰 27'까지 계속됨>
  ---> 
http://blog.naver.com/kimbongkil/140006207610

댓글 1개

화성인 2005. 06. 04. 오전 12:00

작년 여름에 이런 행사가 있었군요. 참 독특한 형식의 관찰일지입니다. 보이는 모든 것 시가 아닌 것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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