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 어리광 * -- (나그네님 말을 듣고 수정했어요)

유민자 2005. 06. 06. 오전 12:00
6038

  

 

  아주 작은 사람으로 돌아왔어요. 부모는 늘 큰 모습의 사람인 줄 착각을 했지요. 엄마는 빨강 파랑의 불빛을 단 앰블란스 차를 타고 수원에 있는 양로원에서 서울고향으로 돌아왔어요. 내 엄마가 병원에 누워 말이 없어요. 잠시 조금 입을 벌리려다 말고 눈만 껌뻑이며 아는 척을 하는걸요. 큰 눈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작은 눈이었지요. 잘못을 지적하던 다부진 입매는 물기 없는 입술로 자식들의 사랑을 불렀어요. 하나하나 모여든 자식들. 놀란 가슴은 다시 마음으로 잡지만 세월 따라 나이를 먹은 아픈 모습은 의사선생님도 두 손을 놓고 지켜만 보라하는걸요.  아프지 않은 듯 잠이 든 편안한 사람인 사람을 그냥 바라만 보라했지요.


 엄마의 나이는 꽉찬 89세. 가족의 화합을 위해 5년 전 유료양로원에 들어 가셨던 분. 38살에 혼자 몸으로 5남매 모두를 대학교육까지 마치게 해주신 강인하고 당당한 신념의 모습인 분. 엄마의 존재는 잔잔한 미소 속에 가린 삶의 억척스러움으로 사랑 빛이 나던 분.   나는 내 나이 3살에 홀로 되신 분인 엄마였지요.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컸다고 더 많은 사랑을 주셨던 엄마이셨는데 내가 먼저 유료양로원으로 이끌며 울음보를 허리춤에 찼던 그날이 기억이 나는걸요.


  양로원에 첫발을 들여놓던 날, 아무것도 모르신채로 경치 좋은 유적지에 따라나서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지요.  차안 분위기에 눈치를 채신 듯 자꾸만 어디를 가냐고 물으셨던 그날. 나는 낯선 그곳에 엄마 혼자 모셔놓고 돌아섰던 그 순간의 엄마의 어둡고 두려운 표정을 기억하지요. 서울로 발걸음을 돌리던 그날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멍했어요.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 수원 길이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 또 물어가며  5시간정도를 소요하며 돌아돌아 서울에 도착했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걸요.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삶의 적응력을 발휘하며 간단한 꽃꽂이, 종이 접기를 하셨다고 보여주시며 미소 지으셨던 분.


자생의 힘으로 양로원에 버티셨던 분이 잘 자라준 감사로 내어준 꽃가마가 아닌 병원 앰블란스 불빛으로 돌아왔지요. 엄마는 불빛소음 묻고 애~앵 앵앵 아픈 소리 가슴으로 질러대며 말없이 침대에 누워 평화로이 자는 듯 했어요. 지친 사랑의 모습은 오히려 나를 보듬어 놀란 가슴이 따뜻해졌고 잠시 전 수원에서 병원 모습을 지켜낸 사람들이 떠올려져요.


심한 구토인 토악질과 거듭 되는 잦은 설사로 이미 지친 모습으로 누워계셨어요. 간호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늦게 도착한 우리를 나무라는 시선으로 쳐다 보았지요.  핏줄이 아닌 누군가가 힘겨운 노인을 돌본 마음에 무조건 감사했고 미안했지요. 엄마는 역겨운 몸 냄새로 응급실 전체가 진동하고 있었지만 간호사의 손길로 씻어진 몸이라 했는걸요.
엄마는 귀엣말로 감사와 욕을 뒤섞었어요. 너무 춥게 자신을 다루었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떨고 있었지요.  “가자. 집에 가자.”.... “ 가자! 집에 가자니까!” 절규처럼 소리를 마구 질렀지요. 손등은 주사자국인 멍으로 온통 보라빛을 이루었지요. 간호원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손등의 주사바늘을 쉼없이 빼려했지요. 담즙액을 닮은 노란액물이 입으로 흘러내렸고 기저귀를 찬 채로 노란 물똥을 쏟아 내고 있었지요. 


  자연을 닮아 땅에 뒹구는 자연색인 똥색을 그립다는 생각을 처음했지요. 난 힘을 가한 엄마의 손힘을 당할 수가 없어 쩔쩔매었고 엄마는 걷겠다며 넘어지는 몸짓으로 신발을 계속 달라했지요. 아들만을 계속 찾는 귀향의 눈빛을 번뜻이며 아픔은 아무 상관없어 보였지요. 큰 목소리로 반복해서 소리를 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였는걸요. 토속적인  한국 정경이었지요. 딸은 소용없고 아들이 필요한 듯했지요. 사랑도 잊고 마지막 힘 을 가하며 자신의 처음자리로 가고 싶어 하시는 발버둥이 느껴져 가슴이 아파왔지요. ‘가야할 자리를 잃으신 분. 어찌하나? ’


주사를 마구 빼며 아픔을 잊고 가자고 연발을 하시는 말속에는 양로원도 아닌 다른 서울 병원도 아닌 맏아들의 집인 귀속본능인양 느껴져 왔어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담당의사가  곁으로 왔었지요. 안정을 취한 후 서울로 오려던 우리를 보며 젊은 의사는 서울로 가라했지요. 하루 경과를 지켜본 후에 가겠다고 이야기를 무심히 했는데 지금 가라했지요. 젊은 의사의 귀찮아서 내치는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왔지요. 큰 병이라서 큰 병원에 가라는 것이 아니었지요.  C.T.촬영 심전도 검사 뇌파검사 Etc..오후내내 많은 큰 검사만 다 마치고 돈은 챙기고 말을 아니 듣는 늙은 노인을 내치고 있었지요. 오빠와 난 아픈 엄마를 위해 더 이상의 소란을 잠재웠지요. 사설 앰브란스를 부른 후에 젊은 의사의 이름을 적으며 고발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걸요.


엄마는 앰블란스를 탄 후 신기하리만큼 조용했지요.
주사 바늘에는 이미 관심이 없이 몇 마디를 하시더니 내내 잠이 드셨지요. 나도 시끄러운 앵~앵소리가 엄마는 자장가로 착각을 하신 듯 했지요. 아, 진정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구나. 엄마는 오로지.’.... 앰블란스 안에 동승한 응급처치사가 젊은 듯하여 딱딱한 분위기를 바꾸려 젊은 의사 이야기를 했지요. 당황하는 가족을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말하며 알고 싶었던 응급처치 법을 물었지요. 고발의 글과 함께 훈훈한 인정의 글도 함께  인터넷에 올린다고 말했더니 싱긋이 웃어가며 설명을 상세하게 해주던걸요.

  내가 먼저 웃어 보이면 따뜻한 시선은 돌아왔지요. 서울 병원에 도착해서 10만원에 요금계약을 했었지만 만원한 장을 도로 내어주었지요.  나는 깍으려 하지도 않았는데 1 만원 한장이 참 예뻐 보였지요. 앰브란스 차를 놓친채 뒤따르던  오빠는 차가 막혀서 늦게 온다고 했지요. 응급치료사는 혼자 당황하지 말라며 여러 가지 응급처치 요령을 계속 가르쳐주었지요. 그는 “이제는 괜찮으실 거예요.” 밝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는걸요. 병원으로 뛰어든 가족들은 이기심을  내려놓고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을 되새김질 하기 시작했지요. 

                                             
엄마는 병원 흰 시트가 깔린 침대에, 나는 간이 침대에 마음은 하나가 되었지만 오랜만에 함께하는 각자 웅크린 하루밤 잠자리 였지요. 내일을 위한 검사준비로 대장검사를 위한 물약을 10분간격으로  5시간을 드시느라 우린 함께 2시간만 잔 듯해요. 아기처럼 찡그리며 '또 먹냐 ...안 먹으면 안돼?..'  아침에 눈을 뜨시며 3일째 금식인데 '배고파...' 가로 세로 내젓는 여러 손짓에 마음이 찡해요. ‘엄마 사랑해요 감사해요 그리고 미안해요..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이렇게 병원에서 한달을 채우신 엄마는 우리를 위해 잠시 아프며 하늘나라로 살며시 들어가셨지요. 

 
                                                                                                                                        영상/ 김준영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윙윙도는 앰블란스 불빛이 이번에는 파랑과 빨강이 뒤섞여 있었어요. 돈을 주어야만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계속해서 울음을 계속하고 있었지요. 절대 봉사하는 병원의 초록불이 아닌걸요. 절대봉사를 싫어하는 우리네를 향해 계속 윙윙거리며 울렸지요. 시끄럽다고 말을 하고싶은데 아픈사람이 먼저니까 숨을 깊게 두번 쉬었지요. 한번은 아픈사람을 걱정하는 한숨 하나. 또 한번은 시끄러워 참아내는 한숨 하나 사랑하는 핏줄을 위한 한숨소리로 봄을 닮았지요. 

        오늘은 햋살이 따사로운 하늘 위를 치켜 보았지요.
                                    따스한 영혼들이 내 뒤를 따르던 꽁무니바람 따라  춤을 추는걸요.
                                    우리는 각자의 보금자리만을 지켜내던 죄책감을 떨구며 물갈이 해요.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는 신뢰의 그늘안으로 우리를 따스하게 보듬어 안고 계시는걸요.

                                   부모의 자리에 아니계신 오늘,  
                                   절에서 49제(7+7+7+7+7+7+7)를 마치고
                                   흩어진 가족들이 일곱번 만나며 이제사 가족사랑을 확인해요.
                                 
                                   할미꽃이 나를 부르는 오늘아침 갑자기 내 나이가 보여요.
                                   엄마.. 엄마...어머니가 아닌 엄마라는 호칭으로 어리광을 부렸지요.
                                   내가 매만진 어리광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안개비 맞고 촉촉해요.  
                                   눈치 뚝! 한숨 뚝! 사랑 듬뿍!
                                   우리는 이제 사랑을 주고 받는 숨박꼭질 연습을 마치려해요.
                                   크고 작은 수레바퀴마다  사랑 담고 천천히 옆을 보며 먼산을 보려해요
                                   무조건 사랑으로 늘 푸른나무였던 어머니!
                                   제 사랑의 부족을 사과드려요.
                                   좋은 자리 너른자리 마른자리 가족합창단을 만들고 싶은데...
                                   부모의 늦은 사랑 메아리로 부르며 아쉬움으로 떼를 쓰려했어요   
 
                                   철이 든 우린, 
                                   늘 웃고 있는  인형이 부러워  함께 합창하며  미래를 노래하려 해요.
                                   훌륭한 어머니가 빚은 우리들은 이제 따스한 생명을 간직하려 해요

                            글/ 유민자           

댓글 3개

화성인 2005. 06. 07. 오전 12:00

뭉클함이 가슴 가득 차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그 아픔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유민자님의 글을 읽으니 어렴풋이나마 마음에 와닿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그네 2005. 06. 09. 오전 12:00

우선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가족의 화합을 위해 양로원에 보내신 것에 대해서는 좀 그러네요. 그 화합이 어떤 것인 줄은 미루어 짐작하지만 건강한 사람들을 내세운 것이겠지요. 어렵지 않으면 화합이란 단어가 왜 필요하겠어요. 더구나 30대에 혼자되시고 5남매를 대학까지 공부시켰다면서. 늙어가는 입장에서 보니 답답합니다. 그리고 이런 슬픈 글에 LOVE라는 스위시가 걸리네요.

유민자 2005. 06. 09. 오전 12:00

나그네님의 글을 읽으며 반성을 했어요. 함께하는 글인데,부족한 사랑으로 넣으려 'Love라는 스위시'를 넣었었나봐요.답답한 글보다는 신선하고 즐거운 글이 많이도 좋은데...혼자만의 글인 내안의 글을 쓴 듯해요...아마도,사색의 향기에 어리광을 부린 듯해요. 죄송해요. 나그네님..맑은 음이 들릴 듯 즐거이 노래하는 덧니가 보이는 인형을 보며 한번 크게 웃어 주실래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