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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만났던 짜라투스트라에 關한 回想

김봉길 2005. 06. 28.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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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만났던 짜라투스트라에 關한 回想



그를 세 번째 만난 것은

나무토막을 가지고 휴대전화기처럼

전화하던 가을밤이었어요.


혹시 지금 거는 전화번호 알 수 있어요?

몇 번이라고요?

아, 그렇군요. 그리고요?

혼자 있다는 것은

나의 번호와 나의 꿈이 나란히 누울 때라고요?

오늘은 친절하군요.


나무토막을 내려놓은 그의 손에서 피냄새가 났다.


흐흐, 나의 시간은 너의 시간과 다르다.

나의 시간이 가장 깨끗하지.

그러니 누구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밖에.


그렇군요.

그리움에 촉촉이 젖어 눈망울 반짝이는 사람은

밥 먹을 때에도 더 울지 않던데요.

오늘 눈물이 모두

누구에게 흘러가버린 건 아닌가 몰라요.

눈을 감고 뜨기가

숨소리를 이어 세며 숨쉬는 것보다 힘들어요.


흐흐, 원컨대 남은 눈물은

할 말에 묻혀 다 흘려버리과라.

내 목소리가 이렇게 까맣게 가라앉는 것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안 했거니와

너희에게도 해야 할 말을 참느라 그런 것이다.

목소리가 한 일 년 가라앉은 사람은

밤에는 결코 눈물을 흘리며 눈을 뜨지 않는 거란다.


보그러면 보이나요, 하고 싶은 말이?

반짝거리는 눈빛들이 보여요?


눈뜨렴.

지금 돌아서 울고 있구나.

그러나 기우뚱거리는 눈빛을 보지 마라.

그것은 저 멀리 있고 또 너를 보고 있지 않단다.

침 삼킬 틈 없이

눈물 흘릴 틈 없이

눈감아 버리는 이 또한 지나가는 자그마한 밤이 아니겠느냐.


좋아요. 자그마한 밤.

아아, 한 사발 눈물을 생각했군요.

제 등 뒤에 내민 손끝을 보세요.

이슬보다 작은 눈물방울이 보일 거예요.


입술이 아플 땐 눈을 뜨지 않기로 했다.


이슬보다 작은 눈물방울을 삼켜

가느다란 눈을 떠보는 저 세상은

온통 하얀색만 있어요.


그러나 아직은 밤이다 기다려라.

기다린다는 것은 잠에 들지 않기 위한 것.

기다린다는 것은 꿈을 꾸지 않기 위한 것.

기다린다는 것은 잠깐 눈물보다 더 작은 이슬 틈을 빌어 숨을 들이마시는 것.


그래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내 눈보다 큰 밤 큰 어둠 위에 누워

눈을 감더라도 잠에 들지 않겠어요.


나의 눈과 이제

너의 눈 크기가 비슷해지는 것 같구나.


지금도 손톱을 보면 더 크게 들리는

나무토막 긁는 소리

똑같은 소리로 손톱 북북 긁는 소리였다.

하,

벌겋게 젖은 나무토막 혹은 짜라투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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