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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수필] 착한 남편
착한 남편
우리가 처음 신혼 살림을 시작한 곳은 부산 영주동에 있는 판자촌 이였습니다. 6,25동란때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이 하나 둘 모여 살림을 차린 것이 부산에서 제일 큰 피난촌이 되어 버린 곳, 지금은 민주공원으로 바뀌어
부산 시민들이 부산 앞바다 경치를 보며 쉬어 가는 공간으로 새로이 단장을 했지만, 25년 전만 해도 변소 한 칸
두고 주인집 다섯 식구를 포함하여 세 들어 사는 모두 합쳐 20명이 넘는 인원이 신문지 쪼가리, 하루 지나 쓸모
없어져 버린 일력 한 장 등을 들고 아침마다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던 곳이었죠. 우리 부부도 그 틈에 끼어 하루
하루 벌어 먹기를 시작 하였습니다.
그이는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일을 하는 인부 시쳇 말로 노가다가 전업 이였습니다. 하지만 배운 게 많지 않아
그렇지 인물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고, 무엇 보다도 순하고 착하기로 동네에서 소문이 난 위인 이였죠…
건설현장은 월급이라는 개념이 없고 흔히들 간주 타는 날 이라고 해서 10일 정도의 단위를 두고 품삯이 나오곤
하였는데 그 날이 되면 남편은 꼭 자갈치 시장에 들러 저가 좋아하는 아나고회를 사와 조금만 단칸방에서 소주 한 잔 마시며 달콤한 신혼을 즐기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깜빡 하고 점심 도시락을 두고 가서, 저가 직접 점심 배달을 갔었는데 뭘 잘못하였는지 아직도 모르지만 하여튼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반장님에게 호되게 야단 맞고
있는 불쌍한 남편의 모습을 보고 그 길로 집에 뛰어와 이불 뒤집어 쓰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이 성격에 윗사람이 야단 치면 그냥 쥐 죽은 듯이 듣기만 하는 어찌 보면 참 바보 같은 구석이 많은 사람 이였습니다. 진정이 채 가시지 않은 늦은 저녁 남편이 일 터에서 돌아 왔고 한 손에는 역시 아나고회를 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저가 이 사람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영주동 판자집에서 두 남매가 태어났고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 까지 그 곳에서 살다가, 신혼방 보다 조금 더 큰
단칸 방으로 다시 이사 하였죠. 남편은 노가다 중에서도 목수 일을 하였는데 그래도 그 바닥에선 인정을 받으며
일했던 탓에 일은 끊이지 않고 계속 들어왔으며, 그 덕분으로 결혼생활 25년 만에 작고 아담한 집 한 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한 집에는 장독대도 있고, 무엇 보다도 부엌과 욕실이 구분되어 있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석유곤로 하나에 밥이며, 국이며 모든 찬거리를 준비 하던 빠듯함도 없어 졌고요...
그런데 저 남편은 새로 이사 온 집에 잘 적응이 안 되었는지 한 해도 못 넘기고 폐병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반 도는 동안 건설현장에서 마신 먼지가 남편을 병원 침대에 뉘이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한 달 두 달을 넘겨도 병은 차도가 없었고 화가 난 저는 남편에게 '큰 아들 군대 면회도 가야 하고, 당신이 그렇게도 이뻐하는 막내 딸 대학교 졸업식에도 가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니 빨리 일어 나라고 투정 부리면 넌지시 웃기만 한 남편!!! 그렇게 남편은 병원 신세 3개월 만에 먼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불공평해도 너무 하는 것 같았습니다. 평생 살면서 남에게 해꼬지 한 번 안하고 그저 자식 위해 아내 위해 몸 바쳐서 산 우리 불쌍한 남편을 하늘은 너무도 무심하게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 같아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습니다.
남편을 보내 놓고 집에 돌아와 유품을 정리 하던 중 하얀 천에 쌓인 보자기를 발견 하였습니다. 그 안에는 연애
시절 처음으로 저가 선물한 남색 넥타이가 곱게 접혀져 있었고, 작은 메모지가 하나가 눈에 들어 옵니다.
'여보 미안하오! 당신이 좋아하는 아나고회 이제는 내가 못 사줄 것 같소! 약소 하지만 이 돈으로 이쁜 옷 한 벌 해 입고 영수, 영주 데리고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외식 한 번 하구려!!!' 이 바보 같은 남편을 어떡해 해야 합니까?
저 몰래 모은 비상금 친구들이랑 소주나 한 잔 할 노릇이지 자기 이속은 하나도 못 챙기고 가는 날까지 저 걱정만 하는 착한 남편! 이제는 보고 싶어도 만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하얀 천에 쌓인 넥타이를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글 / 최인구
댓글 6개
처음 써 보는 수필이라 영 어색하네요... (잊혀져 가는 판자집의 풍경과 아묵한 70년대 산업전선에서 고생 하시던 우리의 아버지상을 그려본 글입니다.)
전혀 어색하지 않고요. 제목처럼 정말 착한 남편이고 아내시군요. 가슴 먹먹해하며 읽었습니다. 본받을 우리들의 아버지상이었어요.
여선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좀 더 갈고 닦아서 좋은 글 쓸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여선님의 글을 자주 읽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요 사날 마음이 폭폭합니다. 말로는 더위 때문이라 하지만 기실은 겨울이 혼자 백두산 순례길에 보낸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겨울이는 제 새끼 이름입니다. 잘 있다 오겠지 하면서도 마음 심난한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이곳 소모리는 저녁이면 서늘한 기운이 돌아 마치 가을 마당에 온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미리내 호수라도 들릴까 했는데 인구씨 글로 마음 축일 수 있었으므로 밭으로 갑니다. 언제고 오시면 남겨둔 감자에 늦참외와 옥수수까지 드리리다. 안녕안녕~~
안녕하세여 잘 읽었읍니다 .글을 읽다 보니 30 여년 전에 영주동 살던생각이납니다 단간방에 월세를내고 전기를 서로 몰래 많이쓰면 전기가나가버려서 서로눈치보고 수도많이쓰는집 화장실한칸에서 더운여름 샤워하던시절그래도 서로 위하며 사랑하며 살던시절 그땐 너무 가난했고 힘들었지만 젊었기에 꿈을가지고 힘들다는생각은 없었답니다 지나고 나니 그시절 그추억이생각납니다.정말 추웠던 겨울 일 할곳은 없고 배운것없고 하루하루 사는게 절망만 있었는데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살아온 결과 이젠 좋읍니다.결론이 너무 슬프네여 남겨진 가족들이 잘되기를바랍니다.가끔 부산 갈때마다 영주동 코모도 호델에 묶으며 동네 골목을 걸어보곤한답니다.여전히 골목은 비좁고 별로 변화된곳은없더군여 정감있고 좋은글 써주셔서감사해여
정요섭 님! 남겨둔 감자 은박지에 싸서 모깃불에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겠네요... 사랑은 님! 고향이 부산이세요...저도 보리 출신이랍니다.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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