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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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하나
푸르른 가을 하늘과 눈을 맞춘다. 하늘 한번 보고 내 핸드폰 액정속의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머니가 나를 보고 웃고 계신다. 가을하늘로 맞추어 놓았던 액정을 어머니로 바꾸어 놓았다. 마음으로 나를 보는 시간. 오늘 하루의 시작을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어머니에게 클릭 한다. 하늘나라와 땅 세계를 네트워크로 연결을 시키는 꿈을 꾸는 이른 아침이다. 내게는 마음의 고향이 있어 행복하다. 내 가슴 안에 어머니의 기억은 내 우물이다. '엄마가 보고 있다. 너 스스로를 사랑하라'... 자식들의 모든 욕심주머니를 가벼이 달랑 메고 잰걸음으로 떠난 어머니. 자식을 위한 조건 없는 희생을 감내하신 구시대의 어머니. 내 나이 세살에 남편을 잃고, 홀로 오남매 모두를 대학교육을 시킨 강인함으로 뭉친 지혜로운 어머니. 새 날인 오늘, 떠난 분에 대한 그리움을 등 뒤에 편히 얹는다. 어머니는 '며칠만 더 살아내시라'는 내 소망을 무시한 채, 편찮으신지 한 달만에 하늘 문을 넘어갔다. 오늘도 습관처럼, 나는 무심히 어머니가 계신 하늘과 직접대화를 한다. ‘엄마가 보고 있기에, 내 친구가 된 문학의 길을 꽃길로 만들어 보려해...’ 고요에 잠긴 내 모습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든다. 아침 기운을 간직한 땅. 숲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나는 서있는 자리에서 탄성으로 입을 벌린다. 침식을 계속하여 거대한 형상을 이루어낸 그랜드 캐년, 브라이스 캐년 그리고 자이언 캐년을 차례로 여기저기 점을 찍으며 걸어 다닌다. 걸어 걸어 따라 내려가는 협곡의 형상들이 모두 나의 글 소재들이다. 행복을 발견하는 꿈을 꾼다. 참선을 생각한다. 비언어 상태의 심적 깨달음을 계곡에서 잠시라도 느끼고 싶다. 하지만 인간사회의 여행객으로 원시시대 인디언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 소란스럽다. 나는 깊은 계곡 사이 숨어 멍한 표정으로 큰 바위 위에 내 몸을 걸친다. 내 몸에 휘감긴 평화로 몸이 깃털 같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아지경의 멍한 기분도 명상이 될 수 있는가? 자연과 하나 되어 마음의 질서를 느꼈을까? 잠시, 고른 숨을 내어 쉰다. 나를 절벽 위에 꼿꼿이 다시 세운다. 바라보는 각도의 삶을 혼돈이 아닌 진실을 보는 새로운 눈을 만들어 주고 싶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날, 가방을 싸며 일상의 해방감으로 미리 웃는다. 알 수 없는 환희로 마음이 하늘을 난다.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마음도 한껏 부풀어 천상의 발걸음으로 떠나보았던 캐년의 아침을 떠올린다. 캐년은 초월의 세계인양 언어에 묶이지 않아도 탄성 하나로 그 자리를 표현한다. 갈라져 나온 수많은 협곡들과 주변의 고원지대. 협곡의 전체적인 빛깔은 붉은빛이다. 각각의 지층 또는 지층군은 독특한 색조인 황갈색, 회색, 미묘한 초록색, 분홍색, 깊숙한 곳은 갈색, 푸른 빛이 도는 회색, 보라 색을 띠고 있다. 자연 속에 조화를 이루어낸 모든 형상이 신비롭다. 계곡은 자연과 하나 되어 말을 계속하는 듯하다. 역사의 침묵 속에 이루어낸 화합의 장을 나타낸 자연 모습이었다. 거대한 돌기둥들은 뾰족한 모양으로 촘촘하게 붙어 서로를 벗하며 직립해 있다. 자신의 위상을 보라한다. 돌기둥 하나하나가 모여 동화의 나라를 닮아있어 백설 공주가 살며시 문을 열고나올 듯한 성곽형상도 있다. 큰 돌기둥 위에 위험스럽게 걸쳐있는 작은 돌은 손가락 하나로 톡! 건드리기만해도 떨어질 듯하지만 편히 앉아있다. 서로를 보듬어 주는 인간사회의 모녀상 같다. 돌기둥 꼭대기, 좁은 틈을 비집고 선 작은 소나무 한 그루도 보인다. 비스듬히 선 메마른 나뭇가지 그리고 밖으로 내민 뿌리는 단단하게 뻗어 의연한 척 서있었지만 세상의 서글픔을 가슴에 안은 듯 보였다. 하지만 한 그루의 소나무는 강인함으로 사막에 홀로 투쟁하여 살아남는 거대한 계곡 속의 꽃이었다. '지혜를 마음에 숨기고 자신을 믿는 열성으로 뿌리 내리는 강인함을 닮고 싶다.' 난 이렇게 소리쳤다. 계곡은 소리 한 번 내지른 것만으로 메아리에 담아 친밀감을 표현한다. 너른 마음으로 하늘을 향한다. 나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케익 한 조각을 보며 시장기를 느낀다. 광활한 대지에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세상 속에 사랑의 마음을 던져주는 듯하다. 대지는 하늘에 닿을 듯 뻗어있는 삼나무 과의 나무들이 즐비하다. 나무 사이로 다람쥐 두 마리가 넘나든다. 우정의 표시로 내가 먹던 새우깡 몇 개 를 던져준다. 다람쥐는 내 발밑으로 와서 두려움없 이 새우깡을 두 손에 모으며 먹이감에 감사한 듯 귀염을 떤다. 빠르게 풀숲을 오가는 다람쥐. 아마도 이 세상에서 제일 넓은 집에서 살고 있는 다람쥐. 어머니같은 나무에게 달려가는 다람쥐를 보며 공존을 느낀다. 멋진 정경을 지닌 계곡의 길목에 안내문 팻말 하나가 눈에 띈다.“여행객은 살아있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마시오! 이를 어기는 여행객은 100달라 벌금!” '나는 가슴으로 먹이감인 새우깡을 주었는데, 이성은 경고장이라니!' 홀로 킥킥거리며 웃는 내 모습. ‘아, 난 100달라를 번 것인가? 들키지 않았으니...’ 모든 은둔을 꿈꾸는 자들이 이곳이 내 땅이라고 우길 듯 한 평화로운 곳인 캐년의 모습들. 생동감 넘치는 살아있는 나무는 말없이 기대있는 죽어가는 나무를 보호한다. 산 나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채 죽어 가는 나무 그리고 죽은 나무는 오랜 기간동안 서로 기대어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보다 모범을 보여주는 나무에게 고운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다. 자연이 나에게 주는 귀한 깨달음이다. 세월 속의 나는, 알듯 모를 듯 고개를 내저으며 나이를 채워간다. 붓가는 대로 글을 쓰며 깊어지는 글을 사모한다. 거대한 자연의 힘을 존경한다. 긴 시간 속에 스며들어 신비를 간직한 협곡의 모습에 고개를 숙인다. 미완성의 아이들은 사랑이 가득하다. 아직도 계곡의 형상들은 천천히 움틀 거리며 변화를 이루어낸다. 돌무덤들은 다음에 같은 장소를 서성이면 색다름을 보여 줄 것이다. 채울 것이 남아있는 미래는 희망이다. 나는 유구한 세월 속에서 보여주는 협곡을 내려다보며 눈을 더 동그랗게 뜬다. 난 자연을 시샘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캐년의 평화로운 모습들. 내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은 늘 새롭고 신선하다. 산 지식을 얹어주는 맑은 샘물이 솟는다. 자연을 닮아내고 싶은 내 모습. 나는 그에 닿고 싶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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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민자 * 2005년 4월 16일 하늘문으로 들어가신 어머님께 이 글을 올립니다. ♬ 슈베르트의 보리수 / Nana Mouskouri
영상 / 죽은 나무,살아있는 나무의 공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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