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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원고료

김봉길 2005. 11. 21.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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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원고료



김형

저 좋아 반평생 글 썼소

지난 달 오랫만에

두 편 원고료 받았소

버릇인가

또 쌀 한 말 샀소

하하하

얼마나 기뻤는지요

 

김형

쌀 봉지 들고

보다가 안다가 뛰어다녔소

숨에 숨 막힐 때까지

후후

가슴팍 같은 봉지였소

설 때마다

숨 끝마다 느낌 찾았소

뭘 썼는지

하늘하늘 떠올려 보았소

떠나버린 내 것 같은

느낌 하나 눈에 가물거리오

내게서 끊어냈던 것 하나

그랬소

꼭 한번 행복했던 때였소

하늘과 구름

그 사이 마다 지나던

내 시간 만지던 일들이

쌀 몇몇 개가 되다니

밤 깊도록 신기한 쌀 봉지

들여다보고 또 보았소

숨이 되고

물이 되고

피가 되는 것들을


김형

그런데 어김없이

귀익은 소리가 들렸소

침 한 번 삼킬 때마다

나요 나요 빼꼼거리는 것들

어제 놀던

느낌과 즐거움과 시간들이

나오겠다 꺼내 달라

서로 아우성이오

이런 세상에!

꺼내주려 봉지 깊숙이

눈감아 손을 넣었소

꺼내고 꺼내

하늘에다 땅에다 던졌소

그러나 어디라 보이느니

아이 이름

아내 이름

내 이름 석자에 석자 뿐


김형

서로 닮은 이름

보다가 세다가 보다가

제자리에서 넘어졌소

넘어지며 쌀 봉지를 놓쳤소

훨훨 손짓을 했소

그래 오늘도 빈손이구나


 

김형

언젠가 다시 원고료 받으면

기어이

쌀 한 말 살 것이오

하아, 그때까지

뛰다가 걷다가 숨다가

끝내 

잊어야 할 거 써야겠지요

또 

일어나다 넘어져

나 좋아라 웃으며 말이오

부탁이니 

그때까지 꼭 죽지 말고

잘 지켜봐주시구려

김형



댓글 1개

운영자 2005. 11. 23. 오전 12:00

글에 대한 정당한 가치로 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좋은 글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겠죠. 많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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