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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세계사

박경민 2005. 12. 07.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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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세계사 이야기
 

                    까마득한 그 옛날,  추측의 시대

 인류는 약 400만 년 전에 거의 원숭이의 단계(猿人)에서 현생 인류까지 진화해 왔다. 인간은 지혜로서 기타 다른 동물 집단을 지구별의 경쟁상대에서 일찌감치 배제시켜 버렸다. 이렇게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불과 도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에 있었다.

  100억 년 전에 대 폭발(빅뱅)로 우주의 기원이 시작된 이래, 수많은 행성 가운데 자그마한 한 점 이 지구별은 실로 지루할 정도로 서서히 오랜 세월 동안 지각변동을 거쳐 대충 오대양 육대주의 틀을 갖추어왔다. 한편에서는 최초의 생명이 바다 속에서 탄생하고 이어서 식물이 흙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식물의 등장은 나무와 숲을 이루고 탄소동화작용을 통해서 산소를 뿜어내어 생명체다운 생명의 탄생을 불러왔다. 물고기가 강과 바다에서 헤엄쳐 다니고 새는 공중을 날았으며 네 발 달린 짐승들이 땅 위를 뛰어다니게 되었고 가장 마지막으로 인류의 까마득한 조상이라고 볼 수 있는 원숭이가 등장하였다. 바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며 이때가 약 175만 년 전 일이다.

  원래 그들은 나무에 올라가 있었지만 이따금 땅으로 내려와 나무뿌리를 캐먹고 원시림 이곳저곳을 헤집고 돌아다니다가 점차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걸어다니기 시작하였다. 즉 직립원인이며 원래 채식주의자였던 그들은 잡식으로 메뉴를 점차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어 안목이 트인 것까지는 좋은데 허리 디스크에 걸리는 원숭이 사람이 많아지고 유연성이 퇴보하여 원인(猿人)으로서 나무를 타는 기본적 능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어 생존 자체에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되었다. 하늘을 나는 재주도 없고 힘도 약할 뿐 아니라, 먹을 만한 나무열매는 속도와 힘을 자랑하는 초식동물과 원숭이들 차지였다.

  위기의식을 느낀 원숭이 사람(猿人)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차츰 공동체 의식이 싹텄으며 의사전달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즉 자신의 생각을 음성기호화한 언어가 생겨났다. 그들은 협동 속에 삶의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영장류에 속하는 침팬지나 오랑우탄을 훨씬 능가하는 지혜를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불(火)>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은 결정적으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다른 모든 동물과 식물을 지배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비로소 원시인다운 원시인이 등장한 것이다.

  약 100 만 년 전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 에렉투스>는 원숭이로 보기에는 너무 세련되고 그렇다고 사람이라고 봐주기에도 무리였는데, 이들은 더욱 진화하여 약 50만 년 전에는 동굴 속에서 생활하며 불(火)과 언어를 사용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호모사피엔스(슬기사람)로 진화해갔다.

  베이징 원인(Sinanthropus Pekinesis)과 자바 원인(Pithecanthropus erectus),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 하이델베르크인(Homo Heidelbergensis)이 호모 에렉투스의 대표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중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하이델베르크인은 호모 사피엔스, 즉 <슬기사람>에 해당되며 거의 완전히 원숭이의 탈을 벗고 인류시대로 진입한 최초의 원시인으로 추측할 수는 있지만 현재의 인류에 비하면 이빨과 턱이 튀어나와 완전한 사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은 대략 구석기시대 전기에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숭이 사람(猿人)이 원숭이의 탈을 완전히 벗어 던진 시기를 일단 인류진화의 종결로 봐야 한다. 물론 신체적 특징이 환경과 세월에 따라 바뀌기는 하지만 그것을 진화라고 볼 수는 없다. 현생인류의 대명사인 크로마뇽인(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곱배기 슬기사람)은 3만 년에서 5만 년 사이에 등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서 현생인류의 등장으로 인류의 진화는 대략 5만 년 전에 종결되었으며 이때를 구석기시대 후반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의 조상일까…? 학계에서는 대충 그렇게 보고 있다. 이 시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대륙에도 건너가 인종적인 차이를 보이게 되어 황인,흑인,백인으로 인종 특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현생인류는 비록 고고학적 추측에 불과하지만 문화형성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그 내용을 점차 다양하게 일구어 내었고 학습능력을 통해서 선대의 노하우를 더욱 발전시켜 후대에 전하는 문화계승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인류문화사적으로 큰 획을 그었다.

  차츰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여 멋도 부릴 줄도 알아 더욱 손가락이 예민해지기 시작하여 도구사용 능력도 발달하였다. 몸을 멋있게 치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신구나 여성의 나체상 등도 만들어졌다. 그 예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과 프랑스의 라스코 벽화 등의 동굴미술이다. 또한 그들은 원인(原人)들에 비해서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여 여러 부장품과 함께 굴장(屈葬)을 하였다. 이러한 구석기시대 후기의 대표적 특징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류의 출발점이었으며 이 시기의 정신활동은 예술적 창의성과 종교적 표현으로 이어졌다.


  원숭이 사람(猿人)이라는 영장류의 단계에서 지금의 인류 단계까지 무려 400만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일반적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추측이다.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선사시대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역사 가운데 인류의 역사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선사시대는 지금부터 수백만 년 전의 일이니 만큼 역사시대는 인류사에 있어서 빙산의 일각, 아니 그보다 더 미미한 시간적 길이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는 <문화의 발전속도>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선사시대는 ‘무변화 속의 변화’였지만 역사시대는 문자가 문화 전달매체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발휘함으로써 문화창조에 가속이 붙었다. 다시 말해서 문자로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는 ‘고대 원시 저널리즘’을 창조하였고 그것이 널리 파급되어 문명의 확대 재생산을 가져왔다. 

  역사시대를 아무리 최대로 잡아보아도 칠천 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인류가 지혜를 동원하여 문명을 창조한 시기는 고작 그 정도의 짧은 시간적 길이이며 지루했던  선사시대를 졸업한 역사시대 사람들은 더 이상 원시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세상살이 이야기를 동굴 자유 게시판 이곳저곳에 남겨놓았으며 대략 이 시기에 농경과 목축문화가 시작되어 드디어 인류최초의 도시문명이 4개의 큰 강을 끼고 발전하게 되었다. 그밖에도 여러 잡다한 문명이 있었으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그리고 인더스 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과 소위 동이족이 주도하고 화하족(한족의 조상)이 이에 따르는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한 황하문명이 바로 그것이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인류는 최초의 <기술혁신>이라 할 수 있는 이노베이션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우선 집단적인 동굴생활을 청산하고 잘 다듬어진 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오두막집을 만들었다. 사생활의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석기를 처음 어떻게 만들었을까? 처음에는 만들었다기보다는 저절로 깨어진 돌 조각을 이용하거나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 쓰다가 힘으로 돌을 깨뜨리면 석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최초의 석기는 자갈로 다른 자갈을 쳐서 한 방향으로 떼어만든 외날 찍개인데, 이것이 돌조각을 떼어내어 쓴 석기 가운데 가장 널리 쓰였으면서도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도구 제작기법이 발전하여 양쪽으로 떼어내어 양날 찍개를 만들었다. 그래도 석기다운 석기는 주먹도끼이며 돌의 양쪽 면을 모두 뾰족하게 만들었다. 이 주먹도끼는 당시의 만능도구였다.   

  다음부터 원시인들은 석기를 갈아서 만들어 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토기를 만들어 쓸 줄 알게 된 원시인들은 도구에 멋을 부릴 줄 알게 되었고 전보다도 더 예리하고 날카로운 날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석기를 만드는 일이 즐거워진 사람도 생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훨씬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 조각을 떼어서 만든 석기는 날이 떨어지거나 무디어지면 그것을 다시 본래대로 만들어 재생하여 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으나, 갈아만든 석기를 쓰기 시작하고부터 다시 갈아 원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돌을 갈아서 날을 세우는 것은 물론, 돌을 자르거나 구멍을 내는 데에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인간은 땅을 파내고 광물질(鑛物質)을 이용하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생활도구를 석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신석기시대를 석기시대의 혁명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나무열매나 따먹고 가끔 단백질 섭취가 필요할 때에는 들짐승을 사냥할 수밖에 없었던 이전과는 달리 얼마든지 계획성을 가지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재배,경작 ,사육>하는 농경문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들판에 굴러다니던 돌들을 주어다가 다듬고 들판에 놀고 있는 소에 멍에를 지웠으며 땀을 흘리며 밭을 일구고 그 밭고랑에 씨를 뿌려 농작물을 얻었다.

  이 시대의 석기는 쓰임새에 따라서 공구용,농경용,사냥용,고기잡이용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였으며 이렇게 갈아만든 석기들은 청동기 시대에도 같이 쓰였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의식주 전반의 혁명을 가져왔다. 자연에만 의존하던 시대와는 달리 주거지를 정하고 수렵과 가축사육을 병행함으로써 인간은 점차 풍요로워지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문화의 비약적 발전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골각기 이외에도 비록 원시적 단계이지만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아마류(亞麻類)를 재배하여 길쌈 질을 하여 옷 만드는 기술을 익힘으로써 의복혁명을 이루어 내었다.


  둘째, 에너지 혁명이다. 물론 신석기시대 이전에도 인간은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이전 사람들과는 달리 마찰열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셋째, 주거환경의 변화와 인구의 증가이다. 이전 사람들은 동굴 속에서 살았고 남자들은 주로 사냥하러 떠돌아다녀 여자들은 동굴 속에서 아이 키우기와 집단적인 가사노동에 매달렸다.
  그리고 여자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 과연 누구인지 애매모호했으며, 자연히 아이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를 따지는 모계사회를 이루었다. 하지만 신석기 혁명은 밖으로 쏘다니던 남자들을 농경사회의 혈연집단에 붙들어 두어 <부부>라는 개념이 싹텄다. 바로 이것이 혼거의 집단생활을 청산하고 동굴에서 나오게 만든 첫 번 째 요인이 되어 자신들의 자녀들을 낳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인구의 증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이때는 자연의 적극적인 활용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환경파괴의 첫걸음을 내딛은 시기였다. 원시림을 베어내어 배나 뗏목을 만들어 하천과 바다로 나가 그들의 행동영역을 넓혀 나갔기 때문이다.


  구석기시대는 말이 석기이지 적당히 깨뜨려 만든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신석기는 비전문가가 보아도 얼른 알 수 있을 정도로 말 그대로 석기로서 돌을 다듬고 멋을 내었다.

  이렇게 신석기 시대에는 용도에 따라 도구의 종류가 다양해짐으로써 생산성의 향상과 생활영역의 확대로 이어졌다. 그래서 필자는 이 시기를 ‘인류 최초의 이노베이션’이라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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