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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그늘
생명의 그늘
그는 1912년에 태어났다.
치매기를 지닌 그는 내 둥지의 방향키를 가지고 있다.
그의 마음은 희뿌연 안개가 낀 날 조정키를 잃은 듯 오락가락한다.
그는 한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스러움과 허망함으로 삶의 길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덕분에 내 둥지가 가끔은 질퍽거리는 진흙 속으로 스며든다.
지금,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새벽 5시 40분을 가리킨다. 거실 창밖은 우박이 뒤섞인 소리비가 내린다.
그는 꽉 찬 나이들고 꿈을 꾸 듯 살풀이로 중얼댄다.
' 아이고 아이고 천벌을 받아...' 알 수 없는 흐느낌이 버무려진 고함소리 하나에 귀를 세운다. 나는 외마디 소리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삐죽이 방문을 열고 얼굴을 엿본다. 그는 자다가 잠을 설쳤는지 흔들의자에 몸을 의지했다.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천장을 망연히 보기를 반복한다.
오늘은 왜일까? 그는 어떤 기억속의 하나로 가슴몰이를 하는 것일까? 내 머리카락들도 올올이 삐죽 삐죽 날을 세운다. 살아낸 삶의 깊이가 나이를 졸졸 따라온다.
“천벌을 받아...아이고! 휴우,휴...어지러워..“ ' 후 후..가버렸으면...' 고개를 푹 숙인 그는 후렴소리를 이어가 듯 중얼거린다. T. V. 새벽 뉴스시간, 아나운서의 청정한 목소리가 후렴 밑동을 잘라간다. 아,시간의 흐름이 정신을 데려가고 알수없는 감정만을 남긴 한사람인 노인.
며느리인 나는, 마음속 깊이 피래침을 높히 세워 '번개소리인 외마디소리'를 막아내고 싶다. 난, 내 나이를 애무하며 살고있지만 94 숫자의 나이를 지닌 한 사람의 지킴이. 한 노인을 지켜내려 내 나이 숫자는 94라고 마음에 새김질을 한다. 그리고, 쉬어가는 음표 떠올리며 나이공부를 쉬어가며 한다.
나이 언덕길을 오르락 내리락거리는 그옆에 내가 있다. 치매기를 지닌 시아버지 연세는 94세. 연희전문을 거쳐 일본 동경 대를 나온 지식인. 동경 유학전, 어린 나이에 혼인을 강행시킨 시절 일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시골 뒷산 큰 나무에 올라 장가 들지 않겠다고 떼를 썼더니, 그 댱시 유행하던 번쩍번쩍 광채나는 서양구두 사준다는 유혹을 받고 혼인문을 들어갔다고 한다.
철이 덜든 소년은 학교 문턱을 모른채 양반교육만을 받은 고운 모습인 네 살 연상의 소녀를 안방으로 맞이한다. 하지만 혼인시절 초기에는 사고의 차이로 방황기를 겪고 일본으로 도망을 쳤다고 농담 섞인 진담을 하시곤 한다.
음악교사 시절의 그는 집안 응접실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소녀들에게 아내를 누님이라고 소개도 하며 청년기시절 바람을 일렁이며 보냈다며 웃으신다. 한 여인을 잠시 잠시 오해속에 있게하며 외롭게도 했다며 반성을 시인하던 그가 힘없이 늙어간다.
예전 기억속의 반듯한 그 분은, 바이올린을 켜고 피아노를 두드리며 번뜩이는 기지로 즐거이 '나는 딴따라'라고 웃으셨던 한 사람이다. 그는 풍류아를 흉내라도 내듯 장발머리 휘날리며 일흔나이 언덕을 넘나들 무렵까지 세계를 유랑하며 발품을 옮겨 여기저기 휘저으며 다닌 후, 큰마음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던 분이다.
평상의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않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렸고, T.V 뉴스 속에 빠져 불량식품 뉴스가 나온 다음 날에는 맛난 음식도 치우라고 하며 정화수를 고집하는 건강한 아집을 보인다.
심심한 그는 고급명품의 신분인 듯 거만스런 지식인 몸짓을 하며 동네 양로원 출입을 삼간다.
난 권유한다. “경노대학 가실래요?”
“교수자리 주면 가지...” 그는 불쾌한 몸짓을 하며 내 말에 응수한다.
오늘은 인격을 갖춘 시어른의 모습이 그립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도 모르는 클래식 음률에 눈을 감고 지휘하던 예전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는 그냥 정지선에서 멈추어 고장 난 빨간 신호등을 고집한다.
“ 배가 고픈 것이 아니고 때가 되어서...” 또, 또 다시 중얼거리는 한 사람의 움직임이 내 시선을 고정시킨다. 방에서 식탁으로 나오시는 시간이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은 하나의 몸놀림이다. 벽시계를 바라보니 자정이다. 아...물이 드시고 싶으신가...
“물 드릴까요?” 그냥 아는 척을 성의 없이 한다. 내 모습이 삶의 허상처럼 느껴져 나를 거꾸로 매달고 나무란다.
나도 그도 세월 속에 그냥 묻어간다. 음악교사를 거쳐 교장 선선님으로 퇴임을 하신 한 사람이 자연인의 모습으로 나이를 채워간다. 난 채워지는 하루하루를 리트머스 시험지가 변하 듯, 뚜렷한 색 변화를 보고 싶다. 나이든 어른에게 다른 색을 덧입혀 곱게 세상을 보게 하고 싶은데…….어제와 같은 일상에 지리함을 느낀다. 어제와 같은 동영상이 지루해서 인내를 풀어헤치고 안달을 또 부린다. 삶의 잔뿌리를 허겁지겁 헤집는다.
사람들은 치매기 어른과 나를 향해 천연기념물인 듯 바라본다. 이기심이 우선하고 개성이 일등공신인 사회현상 속에 내가 자리한다. 복고풍인 내 자리는 오남매중 귀염을 떠는 막내 며느리자리이다. 가끔은 난 외며느리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은 날이 있다.
당당함을 잊어가는 그의 모습은 나를 슬프게 한다. 무개개 꿈을 좇던 젊음이 몽땅 사라졌다. 우린 왜, 신분상승을 꿈꾸며 노력을 할 수 있는데 거꾸로 매다는 나이상승을 해 낼수 없는 것일까? 나이는 스스로를 위해 포장을 해야 함도 잊어간다. 아니, 잃어가며 해 날수가 없다. 아흔아홉이라는 숫자 앞에 선 그를 향해, 인생굴곡을 느끼는 변명 한 마디라도 듣고 싶은데 세월 속에서 망가지며 흘러내린다.
젊음을 지닌 그 어떤 킹카의 모습은 나를 기쁨으로 들뜨게 한다. 한 눈에 예쁘고 발랄한 체형에 눈이 부시게 밝은 표정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외향적 성격으로 열정이 가득한 느낌의 아이들도 가끔은 쉬어가며 우울해 한다. 자아도취에 빠졌을까?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한 후, 이루어낸 사고의 힘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또 다시 강한 아픔을 지우고 일어선다. 밝은 웃음소리에 바람을 머금은 새벽 종소리가 들린다. 마음을 열고 종의 울림을 들으라 한다.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종소리를 듣고 싶은 오늘. 소리의 여운을 담으며 아직 생명을 지닌 그의 목소리를 경청한다. 아직 생명을 지닌 그는 살아 숨을 쉬지만, 치매증으로 손상된 일상은 참으로 황량하다. 그의 손바닥을 펴고 생명선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나는 생각한다. 과연, 난 내 그림자를 몇 살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그의 생명선을 생각하며 내 손안에 희망 손금을 그린다. 손바닥에 내가 그린 생명선을 보며 난 웃는다. 생명선인 뚜렷한 내 실선을 보며 나를 단속한다. 나는 한 번 더 힘을 주어 그의 삶을 집중 단속한다. 내 귓가에 맑은 생명소리가 들려온다.
생명을 지닌 그는 내 삶의 오래된 나무이다. 아름드리 거목은 햇살과 마파람 속에 있기도 하지만 우박과 비바람 그리고 폭설 속에서도 변함없는 생명의 그늘을 만든다. 겨울철 북쪽에서 휘몰아치는 된바람을 막아내고, 이른 봄에 살 속으로 기어드는 찬바람인 소소리바람을 맞이한다. 새로운 출발점에 봄바람인 샛바람이 분다.
어제의 그와 나는, 생명의 그늘인 초록잎새를 지녔던 무성한 나무를 기억한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어둠의 그늘에 드리운 그림자를 지운다. 이제는 폭설 속에 있는 그에게 빰을 부비며 작고 큰 힘을 주고받는다.
소복이 눈 내리는 날을 기다린다. 나는 하얀 눈밭에 왜곡된 아집을 묻고 함께하는 마음을 찾는다. 그리고 어깨동무하며 따뜻함을 세상에 심는다. 난 숨박꼭질하는 순수한 마음하나를 끌어내 소리 내는 종을 꽁꽁 얼은 가슴에 매단다.
이 순간부터 그와 나를 조용히 조율한다.
'남과 비교한 최선이 아닌, 현실적으로 내 능력이 닿는 만큼의 최선을 위해…….’
*글/ 유민자
참고의 글/
2006년 새해에 95세 되신‘시아버님의 일상을 표현한 미발표작의 글’입니다
2005년 12월에 써 놓았던 글을 조금 수정을 합니다.
황우석 박사의 이야기가 온나라를 '참 과 거짓의 세상'으로 몰아 넣었던 2005년 연말 이었기에
글의 후미인 끝부분이었던 '줄기세포 이야기와 황우석이야기인 생명공학이야기'를 삭제합니다.
그리고,'생명을 지닌 그는'을...
'생명의 그늘' 이라는 제목을 수정한 후,'아름들이 거목인 그로 비유'하며 마무리 했습니다.
글/ 유민자
영상/ 동제 / 아직남은 잎새에 눈이 내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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