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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20분
유태복 2006. 09. 06. 오후 05:37
4821
유태복 2006. 09. 06. 오후 05:37
4821
추적 20분
수필 / 백록 유태복
경찰 업무과중으로 출동시간 늦어 범인 잡을 수 있나?
차량이 적은 심야인 데도 신고 후 30분 넘다니.......
회원들과 볼링경기를 마치고 일도지구 펜코리아볼링장을 나선 시간이 0시15분이였다.
전천후로 25년간 늘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해 가고 있을 때 인화동 구행복예식장 뒷골목에서 미등이 없이 달리는 100CC오토바이가 내 앞을 달리고 있었다.
내가 조금 빨리 달렸다면 어두운 밤에 미등이 없는 그 오토바이를 부딪칠 뻔 했다.
나는 그 오토바이를 세울 것을 종용했다. 그는 무작정 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경적을 두 번 울리면서 그 오토바이 옆을 가면서 커브 길을 이용하여 세우게 했다.
그는 신산파출소 뒷길에서 멈추었다. 그의 나이는 내가 오토바이 탄 경력정도인 23~27세정도 보였다.
“왜 미등도 넘버도 없는 무적 차량을 어두운 밤에 타고 다니는 것이요? 헬멧도 안 쓰고요. 미등 없이 달리니 뒤에서 오다 부딪칠 뻔 했잖아요.” 그는 말대꾸하기를 “당신이 먼데 번호판 놓고 시비요. 당신이 먼데 헬멧을 쓰라 말라 차를 세우라 말라 하나” 하며 대들었다. “그럼 옆에 신산파출소에 가서 이야기 하자” 하니까 “그럼 남파까지 따라와 바 * 같은 세꺄!” 욕으로 직격탄을 날리고는 쏜살 같이 내 삐는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온 것도 있었지만 어둔 밤 범죄 행각을 벌이면 돌아 다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바로 뒤 쫓아 가며 세우라고 종용했다. 그는 일도동사무실 앞을 지나 사라봉 앞 동네 이 골목 저 골목을 요리조리 누비며 나를 놀리기라도 한 듯 계속 도망치는 것이었다. 영락교 앞 동네로 어느 골목을 달리는 중 앞에서 1톤 트럭이 오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젠 잡았구나. 했는데 그는 그 사이로 빠져 나갔다. 내 오토바이는 그 보다 좀 더 크지만 간신히 빠져 나갈 수가 있었지만 그러는 순간 그와 간격이 멀어 져서 한참 뒤쫓다 겨우 찾았다.
그는 대로를 나와 앞 브럭 삼다도 호텔 옆 삼화아파트 골목길로 달렸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도 계속 골목길에서 숨 막히는 숨바꼭질은 계속 되었다. “야 차 세워봐. 나 기름 엄청 많이 들어 있거든. 끝까지 널 놓치지 않을 것이니 차 세워봐.” 몇 번이고 달리면서 종용해도 그는 ‘날 잡아 봐라’ 하는 식으로 막무가내였다. 이러니 경찰관들이 오토바이폭주족들을 잡는데 애를 먹는 구나하는 뉴스 들었던 생각을 하면서 내가 오늘 직접 그 체험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오토바이 경력도 그 나이 못지않을 정도 됐지만 나도 남 에게 뒤지지 않은 끈기를 가지고 살아온 인생인데 나를 비웃고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 분통이 터지고 입술이 마르도록 애가 타기도 했다.
하지만 범인을 꼭 잡고 말겠다는 추격자가 된 기분도 들었다.
‘도대체 도망가는 저 인간은 무슨 죄를 지고 있기에 이토록 도망가야 하는 것일까’ 혼자 무척 의아하게 생각 하면서 추격전은 계속되었다. 골목길이라 속도계는 20~40k정도를 오르내리며 있었으며 나는 10~15m정도 뒤에서 계속 추격하며 정차해줄 것을 간간히 말하며 추격했다. 영화를 찍는 배우들도 아니고 이 새벽에 ‘내가 미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접으로 다가 가기로 했다.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쉽지가 않았다. 손에 그의 옷을 잡히는 가 싶었는데 스치면서 또 내 빼는 것이었다. 삼화아파트 주변을 몇 번 돌았는지 모르겠다. 핸드폰 전화를 이용하여 112신고를 할여고 해도 저놈을 놓칠까봐 못하고 동네 서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면서 달렸다.
나는 다칠 각오를 했다. 정의를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나의 목숨은 늘 내 놓은 상태다. 그래서 나의 모든 장기는 1989년8월25일 가톨릭중앙의료원에 이미 기증된 상태로 그 증서를 늘 지니고 다닌다. 정의를 위한 죽음은 두렵지 않다.
계속 추격하는 도중 아파트 옆 커브 길에서 근접을 할 수 가 있어 나의 앞 타이로 그의 뒤 타이어를 슬쩍 밀었더니 그는 바로 넘어 졌다.
드디어 20여분동안 쫓고 쫓기는 숨 가픈 추격전은 막을 내린 셈이다.
다행이도 나의 오토바이는 안 넘어 졌다.
그는 쩔뚝 거리척 하면 일어났다.
나는 이때다 싶어 손 전화기로 112를 신고 하려는데 그가 내전화기를 빼앗으려고 했다. 내 전화기는 늘 목에 걸고 다녀서 쉽게 빼앗지는 못 할 것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누르는데 그가 또 잡아채는 바람에 전화기 줄이 끊어져 버렸다. 수색대 출신인 나는 사람을 제압하는 기술은 군에서 배웠던 것을 그 순간 써 먹었다. 그의 손목을 비틀어 잡고 다시 전화기를 빼고는 그 상태로 112번호를 겨우 눌러 ‘무적차량을 타고 다닌 사람을 잡았으니 빨리 와 달라’ 고 신고 했다.
그때 우리 들이 고성을 듣고 주변사람들이 여기 저기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오토바이를 일려 세우는 척 하며 도망가려고 했다.
그땐 주변 젊은 청년이 가로 막았다.
“당신이 잘못 없으면 도망 갈 필요가 없잖아요” 하며 나를 거들어 주었다.
“신고 했으니 좀 기다려 봅시다.”
그는 자기도 잃어버렸던 오토바이를 찾아서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키도 없고 선을 연결해서 타고 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워둔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범행을 저지르려는 느낌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몇 년 전 나의 아내가 성탄심야 미사를 다녀오는 도중 손가방을 오토바이 탄 사람에게 날치기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내 손가방은 다음날 현장에서 약 2k 떨어진 제주교육대 옆 원명사 길에 던져 져 있는 것을 법당 다녀오던 할머니가 발견하고 가방 에 든 성가 책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 해줘서 찾아온 일이 있다.
그 후부터는 심야에 차량번호판 또는 미등을 안 달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의심을 하며 주의 깊게 살피게 되었다.
장시간 경찰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보니 서로 숨 가품은 안정되었다.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냐고 하면서 출동할 경찰관이 또 전화 왔다.
순복음교회 옆 삼화아파트 뒤쪽 위치를 알렸는데도 소식이 감감이었다.
모두가 마치 숨넘어가는 환자를 옆에 두고 119를 기다리는 심정인데 경찰은 오지도 않고
‘신고했는데 경찰은 왜 안 오는 거야’ 하며 옆에 있던 주민 들은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내 달리 한쪽 의족인데 낼 진단서 청구할 거요” 하며 협박 같은 소리도 했다.
“그래 청구 해봐 그 보다 더 한 것도 치료 해 줄 테니…….\" 했다.
몇 십 분이 지났을까 그는 말했다. “아저씨 헬멧 안 쓰고 번호판과 미등 없이 탄 것은 내가 잘못이고 낼 번호판 달고 아저씨에게 알리겠고 경찰관도 지금 안 오니 오늘은 이만 헤어지는 것이 어떻소?” 하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럼 당신 핸드폰 번호로 나에게 지금 전화 걸어 보시오”라고 했다. 그는 “내 전화는 걸 수 없는 전화기니 아저씨가 걸어 보세요.” 라고 해서 내가 그의 번호를 알려 주는 대로 걸었더니 그의 전화기에 도착 음 소리와 내 전화번가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에게 “좀 전 이런 식으로 수리 하겠다고 했으면 왜 우리가 시간 낭비하며 위험한 짓을 했겠소.”
“헬멧도 안 쓴 당신 같은 사람이 있으니 설량하게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욕먹지 이 사람아”
어디 사냐고 물으니 신천지 호텔 쪽에 산다고 하였다.
나는 핸드폰전화번호만으로도 서로 신분이 다 확인 됐다는 생각을 하며 그가 시동을 거는 순간 내가 늘 소지한 디지털카메라로 그이 오토바이를 3장 찍고는 그가 출발 하는 것을 보며 집에 왔다.
옷을 벗고 땀을 씻을 여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경찰관 전화였다.
“위치가 어디요.”
“기다리다 지금 막 들어 왔어요.”
그 상활을 전화로 이야기 하고는 그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서 그가 범죄에 가담된 실적이 없는지 확인하여달라고 하였다. 그때 경찰관은 출동이 늦은 것은 업무량이 많아서 그런 것 이라면서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 바로 밝은 곳에서 내 폰에 적힌 전화번호를 시간대 별로 나열해 보았다.
(경찰)112 신고시간 00:41이며,
(경찰)010-4778-99**번 00:46 위치를 알기 위해 걸려온 시간
(경찰)010-4778-99**번 00:50 왜 아니 오냐고 내가 전화를 걸었던 시간.
(혐의자)016-742-23**번 01:00 혐의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 한 시간
(경찰)010-4778-99**번 01:11 경찰관이 어디냐고 물으며 온 시간
이처럼 나열해본 결과 결국 신고 후 30분이 넘도록 경찰관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 것에 서글펐다.
신고 했을 때 핸드폰 위치 추적은 어느 때 사용하는 것인 지도 의문스럽다.
신고하면 경찰은 아무 때나 핸드폰 위치 추적과 동시 바로 출동하여 현행범을 체포할 만반의 태세가 준비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심야라 차도 안 막힌 상태이고 신산파출소와 불과 직선거리로 500~1000m 거리다.
물론 지구댄가 뭔가 하면서 경찰관이 축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만일 그 혐의자와 격투라도 벌여 어느 한사람이 죽이고 도망가고도 남는 충분 한 시간이다.
나는 그 출동할 경찰관이 잘못 했다는 생각보다 경찰손이 모자란 탓이라고 돌리고 싶다.
경찰 업무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경찰일손이 모자란 탓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내 작은 녀석도 그 순간 인천서 이와 같은 경찰업무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밤 일이 궁금해서 오늘11:09분에 어제 걸려 왔던 경찰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어제 확인 해 봤냐고 물었더니 그 전화기는 업무용으로 다른 경찰관이 가져 있었으며 당 경찰관은 오늘 오전 9시 교대하여 다음날 출근한다고 하였다. 고객이 신고를 했으면 그 것에 대한 결과를 알려 주는 행정서비스가 미흡한 탓도 경찰인력이 모자란 탓이라 하겠다.
신고하면 입체적으로 신고자의 핸드폰 위치추적과 동시에 5분 이내 현장에 즉각 출동하여 초동 수사로 큰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하고 치안 질서가 선진화 되어 범법자들이 이 땅에 발붙일 기회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필 / 백록 유태복
경찰 업무과중으로 출동시간 늦어 범인 잡을 수 있나?
차량이 적은 심야인 데도 신고 후 30분 넘다니.......
회원들과 볼링경기를 마치고 일도지구 펜코리아볼링장을 나선 시간이 0시15분이였다.
전천후로 25년간 늘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해 가고 있을 때 인화동 구행복예식장 뒷골목에서 미등이 없이 달리는 100CC오토바이가 내 앞을 달리고 있었다.
내가 조금 빨리 달렸다면 어두운 밤에 미등이 없는 그 오토바이를 부딪칠 뻔 했다.
나는 그 오토바이를 세울 것을 종용했다. 그는 무작정 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경적을 두 번 울리면서 그 오토바이 옆을 가면서 커브 길을 이용하여 세우게 했다.
그는 신산파출소 뒷길에서 멈추었다. 그의 나이는 내가 오토바이 탄 경력정도인 23~27세정도 보였다.
“왜 미등도 넘버도 없는 무적 차량을 어두운 밤에 타고 다니는 것이요? 헬멧도 안 쓰고요. 미등 없이 달리니 뒤에서 오다 부딪칠 뻔 했잖아요.” 그는 말대꾸하기를 “당신이 먼데 번호판 놓고 시비요. 당신이 먼데 헬멧을 쓰라 말라 차를 세우라 말라 하나” 하며 대들었다. “그럼 옆에 신산파출소에 가서 이야기 하자” 하니까 “그럼 남파까지 따라와 바 * 같은 세꺄!” 욕으로 직격탄을 날리고는 쏜살 같이 내 삐는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온 것도 있었지만 어둔 밤 범죄 행각을 벌이면 돌아 다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바로 뒤 쫓아 가며 세우라고 종용했다. 그는 일도동사무실 앞을 지나 사라봉 앞 동네 이 골목 저 골목을 요리조리 누비며 나를 놀리기라도 한 듯 계속 도망치는 것이었다. 영락교 앞 동네로 어느 골목을 달리는 중 앞에서 1톤 트럭이 오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젠 잡았구나. 했는데 그는 그 사이로 빠져 나갔다. 내 오토바이는 그 보다 좀 더 크지만 간신히 빠져 나갈 수가 있었지만 그러는 순간 그와 간격이 멀어 져서 한참 뒤쫓다 겨우 찾았다.
그는 대로를 나와 앞 브럭 삼다도 호텔 옆 삼화아파트 골목길로 달렸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도 계속 골목길에서 숨 막히는 숨바꼭질은 계속 되었다. “야 차 세워봐. 나 기름 엄청 많이 들어 있거든. 끝까지 널 놓치지 않을 것이니 차 세워봐.” 몇 번이고 달리면서 종용해도 그는 ‘날 잡아 봐라’ 하는 식으로 막무가내였다. 이러니 경찰관들이 오토바이폭주족들을 잡는데 애를 먹는 구나하는 뉴스 들었던 생각을 하면서 내가 오늘 직접 그 체험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오토바이 경력도 그 나이 못지않을 정도 됐지만 나도 남 에게 뒤지지 않은 끈기를 가지고 살아온 인생인데 나를 비웃고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 분통이 터지고 입술이 마르도록 애가 타기도 했다.
하지만 범인을 꼭 잡고 말겠다는 추격자가 된 기분도 들었다.
‘도대체 도망가는 저 인간은 무슨 죄를 지고 있기에 이토록 도망가야 하는 것일까’ 혼자 무척 의아하게 생각 하면서 추격전은 계속되었다. 골목길이라 속도계는 20~40k정도를 오르내리며 있었으며 나는 10~15m정도 뒤에서 계속 추격하며 정차해줄 것을 간간히 말하며 추격했다. 영화를 찍는 배우들도 아니고 이 새벽에 ‘내가 미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접으로 다가 가기로 했다.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쉽지가 않았다. 손에 그의 옷을 잡히는 가 싶었는데 스치면서 또 내 빼는 것이었다. 삼화아파트 주변을 몇 번 돌았는지 모르겠다. 핸드폰 전화를 이용하여 112신고를 할여고 해도 저놈을 놓칠까봐 못하고 동네 서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면서 달렸다.
나는 다칠 각오를 했다. 정의를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나의 목숨은 늘 내 놓은 상태다. 그래서 나의 모든 장기는 1989년8월25일 가톨릭중앙의료원에 이미 기증된 상태로 그 증서를 늘 지니고 다닌다. 정의를 위한 죽음은 두렵지 않다.
계속 추격하는 도중 아파트 옆 커브 길에서 근접을 할 수 가 있어 나의 앞 타이로 그의 뒤 타이어를 슬쩍 밀었더니 그는 바로 넘어 졌다.
드디어 20여분동안 쫓고 쫓기는 숨 가픈 추격전은 막을 내린 셈이다.
다행이도 나의 오토바이는 안 넘어 졌다.
그는 쩔뚝 거리척 하면 일어났다.
나는 이때다 싶어 손 전화기로 112를 신고 하려는데 그가 내전화기를 빼앗으려고 했다. 내 전화기는 늘 목에 걸고 다녀서 쉽게 빼앗지는 못 할 것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누르는데 그가 또 잡아채는 바람에 전화기 줄이 끊어져 버렸다. 수색대 출신인 나는 사람을 제압하는 기술은 군에서 배웠던 것을 그 순간 써 먹었다. 그의 손목을 비틀어 잡고 다시 전화기를 빼고는 그 상태로 112번호를 겨우 눌러 ‘무적차량을 타고 다닌 사람을 잡았으니 빨리 와 달라’ 고 신고 했다.
그때 우리 들이 고성을 듣고 주변사람들이 여기 저기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오토바이를 일려 세우는 척 하며 도망가려고 했다.
그땐 주변 젊은 청년이 가로 막았다.
“당신이 잘못 없으면 도망 갈 필요가 없잖아요” 하며 나를 거들어 주었다.
“신고 했으니 좀 기다려 봅시다.”
그는 자기도 잃어버렸던 오토바이를 찾아서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키도 없고 선을 연결해서 타고 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워둔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범행을 저지르려는 느낌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몇 년 전 나의 아내가 성탄심야 미사를 다녀오는 도중 손가방을 오토바이 탄 사람에게 날치기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내 손가방은 다음날 현장에서 약 2k 떨어진 제주교육대 옆 원명사 길에 던져 져 있는 것을 법당 다녀오던 할머니가 발견하고 가방 에 든 성가 책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 해줘서 찾아온 일이 있다.
그 후부터는 심야에 차량번호판 또는 미등을 안 달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의심을 하며 주의 깊게 살피게 되었다.
장시간 경찰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보니 서로 숨 가품은 안정되었다.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냐고 하면서 출동할 경찰관이 또 전화 왔다.
순복음교회 옆 삼화아파트 뒤쪽 위치를 알렸는데도 소식이 감감이었다.
모두가 마치 숨넘어가는 환자를 옆에 두고 119를 기다리는 심정인데 경찰은 오지도 않고
‘신고했는데 경찰은 왜 안 오는 거야’ 하며 옆에 있던 주민 들은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내 달리 한쪽 의족인데 낼 진단서 청구할 거요” 하며 협박 같은 소리도 했다.
“그래 청구 해봐 그 보다 더 한 것도 치료 해 줄 테니…….\" 했다.
몇 십 분이 지났을까 그는 말했다. “아저씨 헬멧 안 쓰고 번호판과 미등 없이 탄 것은 내가 잘못이고 낼 번호판 달고 아저씨에게 알리겠고 경찰관도 지금 안 오니 오늘은 이만 헤어지는 것이 어떻소?” 하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럼 당신 핸드폰 번호로 나에게 지금 전화 걸어 보시오”라고 했다. 그는 “내 전화는 걸 수 없는 전화기니 아저씨가 걸어 보세요.” 라고 해서 내가 그의 번호를 알려 주는 대로 걸었더니 그의 전화기에 도착 음 소리와 내 전화번가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에게 “좀 전 이런 식으로 수리 하겠다고 했으면 왜 우리가 시간 낭비하며 위험한 짓을 했겠소.”
“헬멧도 안 쓴 당신 같은 사람이 있으니 설량하게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욕먹지 이 사람아”
어디 사냐고 물으니 신천지 호텔 쪽에 산다고 하였다.
나는 핸드폰전화번호만으로도 서로 신분이 다 확인 됐다는 생각을 하며 그가 시동을 거는 순간 내가 늘 소지한 디지털카메라로 그이 오토바이를 3장 찍고는 그가 출발 하는 것을 보며 집에 왔다.
옷을 벗고 땀을 씻을 여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경찰관 전화였다.
“위치가 어디요.”
“기다리다 지금 막 들어 왔어요.”
그 상활을 전화로 이야기 하고는 그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서 그가 범죄에 가담된 실적이 없는지 확인하여달라고 하였다. 그때 경찰관은 출동이 늦은 것은 업무량이 많아서 그런 것 이라면서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 바로 밝은 곳에서 내 폰에 적힌 전화번호를 시간대 별로 나열해 보았다.
(경찰)112 신고시간 00:41이며,
(경찰)010-4778-99**번 00:46 위치를 알기 위해 걸려온 시간
(경찰)010-4778-99**번 00:50 왜 아니 오냐고 내가 전화를 걸었던 시간.
(혐의자)016-742-23**번 01:00 혐의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 한 시간
(경찰)010-4778-99**번 01:11 경찰관이 어디냐고 물으며 온 시간
이처럼 나열해본 결과 결국 신고 후 30분이 넘도록 경찰관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 것에 서글펐다.
신고 했을 때 핸드폰 위치 추적은 어느 때 사용하는 것인 지도 의문스럽다.
신고하면 경찰은 아무 때나 핸드폰 위치 추적과 동시 바로 출동하여 현행범을 체포할 만반의 태세가 준비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심야라 차도 안 막힌 상태이고 신산파출소와 불과 직선거리로 500~1000m 거리다.
물론 지구댄가 뭔가 하면서 경찰관이 축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만일 그 혐의자와 격투라도 벌여 어느 한사람이 죽이고 도망가고도 남는 충분 한 시간이다.
나는 그 출동할 경찰관이 잘못 했다는 생각보다 경찰손이 모자란 탓이라고 돌리고 싶다.
경찰 업무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경찰일손이 모자란 탓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내 작은 녀석도 그 순간 인천서 이와 같은 경찰업무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밤 일이 궁금해서 오늘11:09분에 어제 걸려 왔던 경찰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어제 확인 해 봤냐고 물었더니 그 전화기는 업무용으로 다른 경찰관이 가져 있었으며 당 경찰관은 오늘 오전 9시 교대하여 다음날 출근한다고 하였다. 고객이 신고를 했으면 그 것에 대한 결과를 알려 주는 행정서비스가 미흡한 탓도 경찰인력이 모자란 탓이라 하겠다.
신고하면 입체적으로 신고자의 핸드폰 위치추적과 동시에 5분 이내 현장에 즉각 출동하여 초동 수사로 큰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하고 치안 질서가 선진화 되어 범법자들이 이 땅에 발붙일 기회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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