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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전설 3

한민 2007. 06. 18. 오후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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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마리의 날랜 고양이들이 쏜살같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응원하는 고양이들의 앞발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팔월대보름 달이 환히 비치는 절망의 계곡을 가득 메운 고양이의 무리는 일제히 목청 높여 응원하기 시작했다.


  순간 열혈야옹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이며 눈가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던 바람돌이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았다.

  열혈야옹이 그들을 이끌던 시절, 인간들의 쇠발통은 소리만 요란했지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않았다. 도둑고양이의 첫 번째 덕목은 뭐니뭐니해도 민첩함과 대담함에 있었기 때문에 혈기왕성한 젊은 고양이들은 밤새 훔친 생선을 걸고 호기롭게 죽음의 경주를 벌이기도 했었다.


  열혈야옹은 다른 고양이와는 달리 직접 죽음의 경주를 벌인 당사자로서, 불과 바람돌이 주니어가 장성할 시간정도만 흘렀을 뿐인데 쇠발통이 내는 소리는 줄어들었고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진 것을 느낀 것이다. 눈을 지그시 감은 열혈야옹은 격세지감과 함께 자칫 발생할지도 모를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인간의 쇠발통은 상상이상으로 빨랐지만 담대한 두 마리의 검은 고양이들은 그들을 응원하는 고양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간발의 차이로 쇠발통 앞을 질러가자 절망의 계곡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제 순위다툼이 관건이었다.

  미리 건너가 있던 판정묘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히 드러났다.

  열혈야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바람돌이는 만감이 교차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바람돌이 가문의 시대가 열린다. 몸집대왕이 자신의 머리만 믿고 도둑고양이 본연의 자세를 저버린 것은 어찌보면 다행한 일일 수도 있다. 바람돌이 주니어 힘을 내라. 마지막 집중력을 발휘해라. 곧 우리 시대가 열린다.'

  두 고양이는 마지막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달리고 있었다.
  바람돌이가 주니어가 몸통하나 정도 앞서서 달려가고 있는가운데 양측 고양이들은 이들을 향하여 절망의 계곡이  떠나갈듯 피터지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순간 그들의 눈앞에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갑자기 반대 방향에서 상상할 수 없는 속력의 쇠발통이 나타난 것이었다.

  가장 날래고 담대한 고양이었지만 그들은 미처 이를 피하지 못하고 공중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둥근 보름달이 그들을 무대 위의 비운의 주인공처럼  처연히 비추고 있었다.


    “영희야, 무슨 소리 난 것 같지 않니?”

  “그래, 나도 들었어.”

  “언양 휴게소 잠시 들렸다 갈까? 점검도 할겸.”

  “너무 밟지 마, 무섭단 말야.”

  “여긴 직선 코스니까 괜찮아, 영남의 아우토반이잖아.”

  “언덕 너머에 속도감시카메라 있어.”

  “걱정 마, 안 찍혀 지금 시속이 230 km 거든. 번쩍하면서 플래시는 터지는 데 이미 우리는 없어지고 나서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절망의 계곡에 모여 있던 고양이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두 마리의 고양이가 쓰러져 있는 곳을 장시간 쳐다보다가 하나 둘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보름달을 향해 울부짖는 바람돌이의 울음소리가 밤새도록 절망의 계곡에 울려퍼졌다.

  다음날 아침 같은 장소.

 “저런, 고양이 두 마리가 같이 누워있네.”

 “한마리가 죽으니까 따라 죽은 건가?”

 “글쎄, 사연이 있겠지 뭐.”

   \"저쪽 길 건너편에 앉아있는 고양이는 뭐야?\"
   \"괜히 으스스하네, 빨리 가자\"

  그 날 이후 같은 장소에서는 그와 같은 고양이의 시체는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양산과 물금일대의 도둑고양이들은 거의 다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댓글 4개

포아풀 2007. 06. 18. 오후 09:46

인간의 쇠발통에는 고양이도 당해낼 재간이 없나봐요. 다시는 양산과 물금일대의 고양이 전설을 들을 수 없는 건가요. 쯧...

홍경택 2007. 06. 19. 오후 04:49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양이들을 보면, 정말 그들만의 세계가 있을 것 같아요. 재미있는 상상이네요.ㅋ

이옥경 2007. 06. 19. 오후 06:12

고양이 전설을 통해 뭔가 은밀한 의미를 제시한 듯...^^ 운전하다 보면 가끔 도둑고양이들의 시체를 발견하곤 하는데, 기분은 나쁘지만 그냥 지나치면 그뿐, 별 의미를 두지 않았지요. 하찮은 죽음에도 그를 통곡하고 그리워하는 눈길이 있었네요.

한민 2007. 06. 21. 오후 04:10

10여년 전 현대자동차를 다니던 시절에 찻길 한복판에 고양이들이 많이 쓰러져 있더군요. 혼자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하면서 온갖 공상에 잠기곤 했죠. 비장한 바람돌이 주니어를 너무 허망하게 보내서 안타깝네요. 가끔 깊은 밤 비상활주로를 지나면 바람돌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하곤 했습니다. 포아풀님, 홍경택님, 이옥경님 끝까지 읽어주시고 메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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