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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까마귀의 꿈

황태영 2007. 07. 07. 오후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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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의 꿈

                                                   황태영

    


  \"울릉도 호박엿이여. 둘이 묵다가 한 놈이 뒈져도 모른다카이.\"
  벙거지를 쓰고 빨간 코를 우스꽝스럽게 매단 엿장수가 어깨춤을 추면서 큰 가위로 철컥철컥 엿을 자르고 있었다. 엿판 주위에는 아이들과 아낙네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간혹 가위 손잡이로 툭 쳐서 맛보기로 인심좋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 봉화댁 아줌마 모습도 보였다.
  \"까마귀다!\"
  입 주위에 허연 엿가루를 잔뜩 묻힌 채 누군가 소리쳤다. 거지 봉팔이가 무리를 헤치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 바람에 놀라서 나는 하마터면 손에 든 엿들을 떨어뜨릴 뻔했다.
  누더기 차림의 봉팔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엿장수의 새하얀 엿판 위로 검정 때가 묻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순간 엿장수의 인상이 험악하게 찌그러졌다. 엿장수가 큰 가위로 철커덕 소리내며 당장 까마귀 목을 두 동강 낼 기세로 봉팔이 앞으로 다가왔다.
  \"이 씨부럴 놈아. 걸배 주제에 무신 엿 타령이고? 모가지를 댕강 잘라버리기 전에 안 꺼지나. 어데서 굴러온 개뼈따구가 남의 장사에 초 치는 짓꺼리고?\"
  순식간에 허공을 가른 엿장수의 발차기 한방에 까마귀는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그 바람에 그의 소중한 생계수단인 양철깡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뒤이어 발길질이 이어졌다. 너무나 일방적인 폭력이었지만 아무도 말리는 이는 없었다.
  \"어디 빌어묵을 데가 없어 여기까지 나타나노? 맞아도 싼기라.\"
  봉화댁이 영주댁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말했다. 누더기옷에 묻은 흙을 툴툴 털며 일어난 봉팔이는 양철깡통을 두리번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그가 불쌍해 보였는지 영주댁이 얼른 양철깡통을 주워서 까마귀 손에 쥐어 주었다.
  깡통을 받아 들더니 엿장수를 째려보며 봉팔이가 침을 퉤, 하고 뱉었다. 그리고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붕어빵 파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그, 저카다가 또 맞으면 우짤라꼬.\"
  영주댁의 동정어린 행동에 영향을 받았는지, 혀를 쯧쯧 차는 봉화댁의 말투엔 연민이 묻어 있었다.


   그날 밤이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오는 길이었다. 물레방앗간 안에서 발정난 들고양이 울음 같은 소리가 났다.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나는 호기심에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 들어갔다. 방앗간 구석 볏단을 쌓아둔 곳에서 들썩거리는 허연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등짝이었다. 떡메로 철썩철썩 떡치는 듯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여자가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으으으…… 봉팔이, 아까 장터에선 억수로 미안했는 기라. 영주댁이 눈치 빨라서 나서지 못한 기라. 으으으…… 영주댁 보는 눈깔이 음탕하데. 니 건드린 거 아이가?\"
   귀에 익은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봉화댁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허연 등짝이 봉팔이의 등이었음에 더더욱 놀라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돈……\"
   \"에구구, 맨날 걸배 신세 못 면하면서 무신 돈타령이 이토록 심할꼬? 돈 걱정 말더라고. 와 이레 등더리에 식은 땀이 흥건하노. 약 좀 사 묵어라.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아이가.\"
   나는 내려놓은 술주전자를 손에 쥐었다. 이때 주전가가 탈곡기에 부딪혀 작은 소리가 났다. 인기척을 느낀 봉팔이가 벌거벗은 몸으로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니 아랫말 사는 놈이제? 나는 닭을 잡아도 간만 꺼내 묵는다. 오늘밤 본 걸 나불거리면 말이다, 니 간을 빼서 잘근잘근 씹어 먹을 끼다. 알것나?\"
   까마귀가 갈고리 같은 다섯 손가락으로 내 가슴 아래를 피가 나도록 긁어대며 협박했다. 마음이 변하면 당장이라도 내 가슴을 후벼 파서 간을 빼 먹을까 봐 두려워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얼이 나가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른다. 저 놈이 오다가 도깨비를 봤나 왜 저래, 하는 아버지의 술 취한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가위 눌리는 꿈을 꾸느라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


  거지 봉팔이의 움막은 웃골과 연결되는 시멘트 다리 밑에 있었다. 거적때기와 가마니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움막이었다. 평소 나는 움막 안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두려움도 컸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그래서 몇 번 가마니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럴 때마다 까마귀는 이불을 깁고 있었다. 여자도 아닌 그가 언제나 이불을 깁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봉팔이가 눈치 안 채도록 뒷걸음질치다가 오십 걸음쯤 떨어져 있는 빨래터로 줄행랑을 놓고는 했다.
  그날도 호기심에 움막 안을 엿보았는데 까마귀가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누더기옷 아랫단을 뒤집어 이를 잡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빨래터로 달아났다.
  강가에는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며 동네아낙네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대단한 한파가 몰려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연일 반복되는 터여서, 강추위가 몰려오기 전에 빨래를 다 해놓으려는 심산인 듯했다.
  \"거지 봉팔이가 웃골장터를 다 사고 만다 카데.\"
  \"뭐라꼬, 영주댁이 우째 아노?\"
  \"우,우,우째 알다니? 봉화댁, 까마귀 그 기 빌어묵고는 있어도 속은 야무진 거 말사람은 다 아는 긴데, 우째 봉화댁만 모리노. 거 참 이상타.\"
  까닭없이 큰 목소리로 영주댁이 말했다. 조금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우째끼나 밤이고 낮이고 노름에만 빠져 있는 남정네들 보이 복장이 터져서 하는 말 아이가. 겉만 뻔드르한 서방들보다야 꿈이라도 야무져서 좋다 이 말인기라, 내 말뜻은. 참, 글고 안있나, 순동이가 점점 봉팔이 빼 닮아가데. 영판 붕어빵인기라.\"
  영주댁이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글탐 소문이 사실인가베?\"
  실실 웃던 동네 아낙들 얼굴에서 한순간 웃음기가 싹 가시고 말았다. 어느새 나왔는지 까마귀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까마귀는 마른 나무를 주워다가 빨래 삶는 솥 근처에 던져놓고 있었다. 아마 밥때가 되면 솥 내놓은 집으로 가서 밥을 쉽게 얻어 먹을 요량인 모양이었다. 영주댁의 눈이 은근슬쩍 봉팔이 엉덩이를 훑었다.
   \"요새 날씨 참말로 요상체?    지난 주에 억수로 추웠을 때 복길이네는 개가 죽었는 기라.   이 무신 변고고? \"
   \"이카다가 사람도 얼어죽는 거 아이가?\"
   \"오늘 저녁부터 억수로 추워진다 카더라. 간밤에 웃골 장씨 할배가 죽었다 카던데 봉화댁, 저녁 묵고 나캉 안 가볼 끼가?\"
   \"가봐야제. 봉팔아, 니도 상가에 가보거라. 묵을 게 많을 끼다. 오늘밤 억수로 추워진다는데 배라도 든든해야 추위를 견디제.\"
   봉화댁이 까마귀를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날 아침, 들창문 밖이 소란스러웠다.
  \"저 화상이 엊저녁 장씨 할배 상가에 와서 코 삐뚤어지게 술 처묵더니 결국 저렇게 인생 종치는구먼. 그 술을 묵고 화기라곤 하나도 없는 움막 안에서 나뒹그라졌으니, 까마귀 그 놈이 아무리 장사라케도 그 추위를 어떻게 당한단 말고.\"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정신없이 뛰어갔다. 움막 주위에는 어느새 마을사람들과 아이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거적때기가 올려져 있어서 움막 내부가 다 보였다. 이불을 덮고 잠자듯이 까마귀는 누워 있었다. 술냄새, 발꼬랑내가 뒤섞여 악취가 심하게 났다.
  \"요즘 봉팔이 몸이 영 안 좋아 보이더니……\"
  봉화댁이 영주댁에게 속삭이다가 말끝을 흐렸다.
  \"거참 요상타 아이가. 솜이불 덮고 잤는데 얼어 뒤지다니 참말로 요상타.\"
  이불을 만지던 구멍가게 최씨 아저씨가 소리쳤다.
  \"어, 이게 뭐꼬? 솜이 아니라 돈 아이가?\"
  그는 이불 호청을 뜯기 시작했다. 이불 속에서 무엇인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폐였다.
  \"어허, 이 놈이 어데서 이렇게 많은 돈을 모았을꼬? 숨길 데가 없어서 솜 꺼내고 돈으로 채우다가 이 한파에 얼어죽어 삔 거 아이가? 지 죽고 나면 돈이 다 무신 소용있노, 미련한 놈.\"
  시끌벅적하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섞여 순동이 아버지의 목소리도 어렴풋하게 들렸다.
  \"이 놈이 그렇게 괄시를 받고 다니면서도, 웃골 장터를 다 사고 말끼라더니 그게 사실이었던 가베.\"
  봉화댁과 영주댁의 꽉 다문 입에서 요란한 울음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즈음이었다.
                                      ■ 끝 ■


댓글 4개

포아풀 2007. 07. 08. 오전 02:28

봉화댁과 영주댁이 공유하는 비밀... 재미있네요. 사투리 묘사가 흥미에 양념을 더해줍니다.

최희성 2007. 07. 09. 오전 12:36

언제나 좋은글 써주시는 황태영 선생님이 어떤 분인가 몹시 궁금합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인사 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재미있고 유익한 글에 감사 드립니다

황태영 2007. 07. 10. 오전 11:52

작품 내용 중 대부분이 fiction이지만, 마지막 결말 부분의 거지의 종말 부분은 실제로 부산에서 발생했던 일입니다. 70년대에 발생했던 슬픈 사건이지요. 이름도 모를 어느 거지의 한많았을 인생이 이 꽁트로 인해 여러 분들에게 기억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서흥식 2017. 06. 03. 오전 03:13

재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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