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사랑과 야망 1부 회상 할머니의 죽음
현중의 아버지는 신흥 건설업체로 각광을 받던‘정동건설’의 사장이었다. 어릴 적 현중의 집은 항상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춘호라는 총무부장의 농간으로 부도가 나자 그 많던 방문객들은 하루아침에 발을 끊었다. 현중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친척들을 찾아가면 평상시 많은 도움을 받던 친척들조차 오히려 현중의 아버지에게 빌려준 돈 타령을 했다.
부도난 현중의 아버지가 해외로 도피한 직후 현중의 어머니는 밤마다 훌쩍거렸다. 정성우라는 사채업자가 현중의 아버지가 사라진 뒤‘사채 상환’이라는 명목으로 현중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현중의 어머니는 처음 그가 왔을 때 거실에서 머리를 숙이고‘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현중의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걱정 마시라.’라고 할 때만 해도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현중의 집을 찾는 일이 잦아지면서 현중의 어머니는 점차 그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노란 딱지들이 현중의 온 집안을 도배했을 때 할머니는 영치읍에 있는 친구의 소개로 과수원의 오두막집으로 이사를 했고 정성우가 현중과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자신이 사는 집 근처의 조그만 아파트에 데리고 갔다. 얼마간 새로운 안정이 찾아오는 듯 했다. 정성우가 늦은 저녁 무렵 찾아오면 현중의 어머니는 그와 할 얘기가 있다며 현중을 재웠다.
일 년 정도 지나면서 정성우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어머니를 때리기 시작했다. 현중의 어머니는 소문난 미인이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구타를 당하는 통에 그녀의 눈가에 시퍼런 멍 자국이 떠나질 않게 되어 얼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현중으로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의 어머니의 행동이었다. 그날도 정성우가 여지없이 찾아와서 만취상태에서 그의 어머니를 여러 차례 구타하는 것을 현중이 문틈사이로 보면서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현중이 이불 속에서 한참을 우는 동안 문사이로 거실의 불빛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현중은 잠들은 척 돌아누웠다.
그의 어머니는 이불을 정리하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억지로 잠을 청하던 현중은 목이 말라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향할 때였다. 안방 문이 조금 열려진 채로 이상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벌거벗은 정성우와 그의 어머니가 불이 환하게 켜진 채 부둥켜안고 있었다. 축구부에서 야간 합숙을 하는 날이면 친구들이 어김없이 밤잠 안자고 히히거리며 보던 잡지 책 속의 장면이었다. 문 틈 으로 지켜보던 현중은 어머니를 보호하지 못하는 모멸감과 주체할 수 없는 신체적 반응에 당황하며 밤새 뒤척였다. 다음날 현중은 처음으로 몽정을 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의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귀가한 현중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취한 상태로 그의 어머니를 마구 때리고 있던 정성우를 보면서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현중은 정성우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가격하자 맥없이 뻗어버렸다. 놀란 그의 어머니는 현중에게 돈을 쥐어주면서 빨리 도망가라고 했다.
현중은 돈을 뿌리치고 신음하는 정성우와 통곡하는 어머니를 두고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주섬주섬 짐을 꾸려 할머니를 찾았다. 현중이 할머니를 찾아 과수원의 오두막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는 하루 온종일 밤을 새워 울었다. 현중은 그 이후로 말수가 더 줄어들었다.
그는 매일 새벽 산정까지 오르고 또 올랐다. 다행히 현중과 그의 할머니는 읍에서 나오는 보조금과 과수원 주인의 배려로 학업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민채가 현중의 오두막집을 찾아왔던 시점이 이 즈음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과수원 주인이 할머니를 찾아와 큰 아들의 사업밑천을 위하여 과수원을 팔 수 밖에 없는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할머니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할머니의 친구는 얼마 전 눈을 감아 버렸다. 그 뒤로 현중의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봉황대기에서 어이없는 예선탈락으로 축구부는 초상이 났던 그해 겨울방학에 현중의 할머니는 눈을 감고 말았다.
현중의 할머니가 눈을 감고 일주일가량이 지났을 때 마침 그의 어머니가 정성우의 본처가 죽고 정성우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며 현중을 데려가기 위해 과수원 오두막집을 찾아왔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시신이 방치된 채로 놓여있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서둘러 장례절차를 밟았다. 장례식장에는 정성우의 손님과 어머니의 손님으로 넘쳐났다. 정성우는 밤늦은 시간에 눈을 벌겋게 뜨고 침을 흘리며 부조금을 세다가 현중의 눈빛을 의식하고는 헛기침을 하며 돌아앉아 돈을 세었다.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변한 조그만 상자를 안은 현중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현중에게 같이 살자고 애걸하였다. 정성우가 현중을 과수원까지 태워주는 길에 장례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투덜대며 그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현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할머니의 유해가 들어있는 상자만을 들고 내렸다. 그의 어머니가 봉투를 들고 다시 현중에게 쥐어주었지만 현중은 차안으로 봉투를 집어던졌다.
현중의 어머니를 태운 차는 그녀의 흐느낌은 아랑곳않고 굉음을 내며 급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댓글 0개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