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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야망 1부 회상 가출
민채는 시험이 끝나자 새벽운동을 재개하면서 잠시 보라색향기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감내해야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험결과의 발표가 늦어지고 있었다. 한편 축구부는 본격적인 합숙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현중은 갑자기 합숙 도중 짐을 꾸려서 합숙소를 빠져 나갔고 여러 날 수업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민채는 방과 후 진우와 함께 현중의 집을 찾아가기로 약속했다. 남선생이 민채를 불렀다. 남선생은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무거운 표정이었다. 그는 현중의 자존심을 배려해서 민채 혼자 갔다 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중이 중간고사시험지를 백지상태로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은 민채는 큰 충격을 받았고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 현중의 어두웠던 얼굴들이 단순히 중간고사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란걸 알게 되자 그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기 시작했다.
현중이 합숙하고 있는 동안 새 과수원 주인이 여러 번 찾아왔다. 새 과수원 주인은 과수원을 돌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주인이 바뀐 날 이후 과수원 뒤쪽으로 큰 길이 난다며 여러 손님들과 같이 와서는 자랑만 하다가 짐짓 다정한 채 현중에게 다가와 ‘갈 곳은 알아봤냐?’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곤 했던 그는 과수원 오두막집이 비어있자 학교까지 와서 현중을 조용히 다그치곤 했던 것이었다.
현중은 더 입을 열지 않았다. 평소에도 말이 없던 터라 합숙하던 축구부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현중은 더 이상 어디에도 머무를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현중은 몰래 합숙훈련장을 빠져나와 오두막집으로 돌아왔다. 현중은 할머니가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들을 정리하여 유해가 들어있는 작은 상자와 함께 자신만 아는 바위틈에 안전하게 보관하고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모아서 고물상에 내다팔고 약간의 돈을 마련했다.
저녁 무렵 혼자 있는 민채는 현중의 오두막집을 찾았다. 불이 꺼진 오두막집은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았다. 민채는 큰 소리로 현중을 불렀다. 현중은 어두운 얼굴로 사립문을 열었다.
\"왜 이렇게 어두워?”
“어차피 세상은 어두운 거야.”
“무슨 소리야, 그런데 할머니는?”
“돌아가셨어.”
담담한 현중의 대답에 민채는 차마 어떠한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미처 그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다시 한번 원망하고 있었다.
“왜 연락 안했어?”
“......”
긴 침묵이 이어지고 어둑해진 골목을 바라보면서 민채가 입을 열었다..
“어쩌려고?”
“권투 할 거다.”
“늙은 중아, 지금 나랑 한판 붙자.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나는 정식으로 배워서 돈 벌 거다.”
“그래도 나를 이기면 그 길로 가라.”
“그래, 졌다. 그래도 갈 거다.”
둘은 어두운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앉아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하염없이 긴 시간을 보냈다. 어두워진 과수원 뒷산의 바위들이 거대한 괴물처럼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둘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현중이 소리 없이 흐느끼며 말했다.
“민채야, 그나마 네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허전함이나 서운함은 없다. 그리고 널 실망 시키지 않으마. 약속할게.”
“내가 학생인 게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나저나 네가 빠지면 금년 봉황대기가 걱정이다. 작년에도 어이없이 깨졌는데 ....”
“네가 있잖아, 그리고 홍철이도 가세했고. 너랑 오랫동안 발 맞췄으니까 나보다 오히려 나을 거야.\"
민채는 현중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오는 길에 처음 현중의 집을 놀러갔다가 돌아올 때의 아쉬움과는 다른, 오히려 실감나지 않는 덤덤함까지 느꼈다.
그 이후로 현중은 보이지 않았다.
현중은 민채가 찾아왔을 때 마침 오두막집에 있었던 것을 운명처럼 다행이라 여기며 짐을 챙겼다. 그리고 그는 마른 나무들을 가지고 와서 차곡차곡 방안 가득히 채우고 성냥을 긋고 마른 종이에 불을 붙였다. 조심스럽게 방바닥에 내려놓아진 종이불은 서서히 마른나무로 옮겨 붙기 시작했고 불기운은 서서히 거세지고 있었다.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집을 나서는 현중의 뒤로 산바람이 을씨년스러웠다. 그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 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현중이 공중전화부스로 가서 명함 안의 전화번호를 천천히 누를 때 굵은 빗방울이 공중전화 유리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명동 패러다임 호텔.
현중은 정삼식이 내민 신체포기각서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했다. 정삼식은 현중이 K고와의 패싸움 할 당시 우연히 지나가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현중에게 돈을 벌게 해 준다며 명함을 그의 손에 쥐어 준 적이 있었다.
거만한 표정의 정삼식은 현중의 닉네임을‘스콜피온’으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중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현중은 없는 거야.'
댓글 1개
민채와 현중 그리고 보랏빛 향기 이지현... 다음을 기대해봅나다. 기다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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