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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야망 1부 회상 보라색 향기
어느덧 민채가 2학년이 되어서도 현중과 같은 반이 되어서 뛸 듯이 기뻤지만 현중이 그리 밝은 표정이 아니어서 다소 섭섭했다. 민채는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미리 중간고사를 준비해 두기 위해 새벽운동을 잠시 접어두고 현중과 함께 일찍 집을 나섰다.
둘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버스를 탔다. 공단이 조성되고 유입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30분 간격으로 배차되던 시내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증편되었다.
맨 뒷자석의 민채는 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버스를 보면서 '다들 부지런히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민채와 현중의 다음 정거장에서 한 여학생이 민채 바로 앞에서 의자 손잡이를 잡고 섰는데 민채가 가방을 받아 주자 다소곳이 목례하는 그녀에게서 상큼한 향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밤낮의 기온 변화가 심한 계절이라 보라색 자켓을 교복 위에 입고 있었다.
버스가 겨우 콩나물시루를 면해 갈 무렵 점잖게 보이는 한 신사가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었다. 민채가 한마디 하려는 찰나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조용한 버스 안에서 울려 퍼졌다.
“아저씨, 제 엉덩이에서 손 치워주시겠어요.”
당황한 신사의 느끼한 중저음의 목소리는 차내를 폭소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가만있어!”
승객들의 시선이 그 신사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는지
“에이, 재수 없어!”
하며 내리려는 신사를 향해 싸늘한 목소리가 다시 버스 안을 정적 속으로 몰고 갔다.
“사과하고 내리세요. 경찰을 부르겠어요.”
“참내, 내리려는 중에 스친 걸 가지고 너무 하는 거 아냐 ?”
버스 기사는 비상 깜빡이를 켜고 도로 가에 차를 세웠다.
\"어이 학생 나도 밥 먹고 살아야 하니까 10초 안에 끝내.”
승객들이 모두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진퇴양난에 빠진 신사는 비굴한 표정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 하면서 버스에서 떨어지듯 내려서 얼굴을 가리고 새롭게 형성된 상가가 늘어선 골목사이로 꽁지가 빠지게 내달았다.
현중은 창밖으로 그 신사가 뛰어가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을 부르르 떨었다. 민채는 당당하고 차분한 그녀에게서 뭔지 모를 좋은 느낌을 가져보지만 신사가 만지고 지나간 엉덩이가 안타까웠다.
그녀는 시선을 느꼈는지 앉아있는 민채를 내려다보았다. 민채와 눈이 마주친 그녀의 얼굴빛이 발갛게 변했다. 가방을 건네주던 민채는 교복 위에 덧입은 보라색 재킷과 얼굴 색깔이 잘 어울린다고 느끼며 그녀의 이름표를 훔쳐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이 지현’ 이었다.
민채는 그 후 매번 부딪히는 그녀를 '보라색향기'라 불렀다. 그녀와 함께 공통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즐거움이 되어버린 민채는 버스 안에서 그녀를 만나면 온 종일 기분이 좋았고 어디서든 그녀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채는 그녀의 등교 시간에 맞추어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혼자 웃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야간 자율학습 때 3학년 선배들이 현중을 찾아왔다.
자율학습이 끝날 때 쯤 들어온 현중은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리던 민채에게
“형들이 도와 달래서...” 하며 씩 웃어 보였다.
다음 날 학교에 K 고와의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옆 동네 K 고 애들이 우리 학교 애들에게 왕창 당했데.’
‘2학년에 현중이 혼자 다 하드래.’는 말들이 떠돌았었다.
그날 오후에 현중은 담임선생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았다.
민채가 현중에게 걱정 어린 눈빛을 띠며 물었다.
“왜 안하던 짓을 하냐?”
“민채야, 폭력이란 것이 말야, 때릴 때나 맞을 때나 속이 후련하다는 거 아냐?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으면 맞는 대로. 어머니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시험기간이면 누구나 예민하기 마련이어서 민채는 더 이상 현중에게 물어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민채는 왠지 보라색향기가 행운을 가져다 줄 것만 같았다.
현중은 민채가 잡아주면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민채에게 그것을 강요할 순 없었다.
현중 역시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민채야, 내 힘으로 안되는 세상에 있어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니!'
댓글 1개
벌써 허무주의... 너무 일찍 세상을 알게 된 현중의 미래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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