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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마귀
김재원 2008. 05. 11. 오후 10:31
3877
김재원 2008. 05. 11. 오후 10:31
3877
아주 가끔씩 가는 고향의 시골 장터를 지날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렸을때 5일장이 열릴때마다 나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따라 갔었는데
사실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따라 가는것이 더 좋았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는 장터에 나를 데리고 가실때마다 정작 사야 할 농기구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나에게 먹거리를 사 주시기에 바쁘셨다
먹거리라고 해봐야 시골 장터에서 흔했던 것이 엿이나 번데기 아니면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는 빈대떡 정도였지만 좋아 했던 엿만큼은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었다.
부모님을 생각할 때는 늘 품안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때 어머니 손이 아닌 아버지 손을 잡고 입학을 했었고
이런 저런 일로 학교에 오실때도 늘 아버지셨다.
겨울이면 나무를 깎아 팽이를 만들어 주셨고 (지금 생각해도 썩 잘 깎은 팽이는 아니었다)
어쩌다 학교에서 늦을라치면 마중을 나오시는 분도 아버지셨다.
아버지의 등에는 콩알만한 사마귀가 하나 있다
어렸을때 동생과 나는 그 사마귀를 만지며 낄낄 거리곤 했었는데 아버지는 그때마다
그 큰 등짝을 내 맡기시며 미소를 짓곤 하셨다.
이제 아버지의 등에는 사마귀가 없다
언제던가 아버지를 모시고 동네 목욕탕에 갔을때 등을 씻겨 드리며 그 사마귀를
찾았지만 나이들어 왜소해진 아버지의 등에는 실낱같은 사마귀의 흔적만 있을뿐
이제는 내 어린시절의 장난감은 없다.
언제던가 잠시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던 아버지를 번쩍 들어 침대에 뉘어 드린적이
있었다
그때 그 가벼움이란....
등에 난 사마귀를 만지며 놀던 때의 그 큰 등 그리고 목욕탕에서 등을 내 맡기시고 앞에
앉아 계시는 아버지의 작고 왜소한 등..
내가 확인한 것은 흘러간 세월과 내가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변화, 그런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때론 추억도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진다는데 부모님에 대한
기억만큼은 결코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언제던가 일찍 아버지를 잃은 어느 친구 하나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반신 불수의 아버지라도, 그래서 대소변을 모두 받아낼지언정 아버지가 내 곁에
살아 계시기만 해도 좋겠다\" 라고..
부모님이 오랫동안 자식들 곁에 살아 계시는 것 만큼 큰 복도 없을 것이다
내게 그런 큰 복이 있었던지 다행히 부모님 모두 생존 해 계신다
연로하신 탓에 늘 걱정이고 병원 나들이를 자주 하시지만 그렇게나마 오래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
눈앞에 보이는 아버지는 왜소하고 초라한 노인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큰 등을 가진 기둥으로 남아있다
그런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나는 그 어느날을 나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두어 달 전쯤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 친구 분 한 분이 돌아가셨다.
내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분은 고향에 마지막으로 한 분 계시는 친구 분이셨다
나는 그 사실을 차마 아버지에게 말씀 드리지 못하고 대신 다녀왔다
어디서 들어 알고 계신지 아니면 모르시는 것 인지 아직도 그 사실을 묻지 않으신다
평소같지 않게 문상 가는 그 길이 왜 그리 멀고도 멀던지.....
필연적인 인연이라 해도 언젠가는 헤어짐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월 타고 내 가슴속에 흘러온 것이 시디시린 가슴앓이라 해도 말이다
첫 만남의 장소로 되돌아가 아버지의 사마귀를 만지며 낄낄 거리고 싶지만
우리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참 오랜 세월 같은데 이제 한 순간의 기억만 같다
매달 얼마간의 용돈을 드릴라치면 아버지는 매번 그냥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꼭 몇번
사양을 하시곤 슬그머니 받으신다.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그 옛날 시골 장터에나 가봤으면 좋겠다
아버지께서 사 주셨던 그 엿이 먹고 싶고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께 사 드릴 수 도 있을것
같은데 그리운 시간들은 왜 그렇게 몽롱한 추억속의 시간들 뿐인지 모르겠다
위 글은 언젠가 아버지께서 생존 해 계실때
어렸을때 5일장이 열릴때마다 나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따라 갔었는데
사실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따라 가는것이 더 좋았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는 장터에 나를 데리고 가실때마다 정작 사야 할 농기구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나에게 먹거리를 사 주시기에 바쁘셨다
먹거리라고 해봐야 시골 장터에서 흔했던 것이 엿이나 번데기 아니면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는 빈대떡 정도였지만 좋아 했던 엿만큼은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었다.
부모님을 생각할 때는 늘 품안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때 어머니 손이 아닌 아버지 손을 잡고 입학을 했었고
이런 저런 일로 학교에 오실때도 늘 아버지셨다.
겨울이면 나무를 깎아 팽이를 만들어 주셨고 (지금 생각해도 썩 잘 깎은 팽이는 아니었다)
어쩌다 학교에서 늦을라치면 마중을 나오시는 분도 아버지셨다.
아버지의 등에는 콩알만한 사마귀가 하나 있다
어렸을때 동생과 나는 그 사마귀를 만지며 낄낄 거리곤 했었는데 아버지는 그때마다
그 큰 등짝을 내 맡기시며 미소를 짓곤 하셨다.
이제 아버지의 등에는 사마귀가 없다
언제던가 아버지를 모시고 동네 목욕탕에 갔을때 등을 씻겨 드리며 그 사마귀를
찾았지만 나이들어 왜소해진 아버지의 등에는 실낱같은 사마귀의 흔적만 있을뿐
이제는 내 어린시절의 장난감은 없다.
언제던가 잠시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던 아버지를 번쩍 들어 침대에 뉘어 드린적이
있었다
그때 그 가벼움이란....
등에 난 사마귀를 만지며 놀던 때의 그 큰 등 그리고 목욕탕에서 등을 내 맡기시고 앞에
앉아 계시는 아버지의 작고 왜소한 등..
내가 확인한 것은 흘러간 세월과 내가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변화, 그런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때론 추억도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진다는데 부모님에 대한
기억만큼은 결코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언제던가 일찍 아버지를 잃은 어느 친구 하나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반신 불수의 아버지라도, 그래서 대소변을 모두 받아낼지언정 아버지가 내 곁에
살아 계시기만 해도 좋겠다\" 라고..
부모님이 오랫동안 자식들 곁에 살아 계시는 것 만큼 큰 복도 없을 것이다
내게 그런 큰 복이 있었던지 다행히 부모님 모두 생존 해 계신다
연로하신 탓에 늘 걱정이고 병원 나들이를 자주 하시지만 그렇게나마 오래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
눈앞에 보이는 아버지는 왜소하고 초라한 노인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큰 등을 가진 기둥으로 남아있다
그런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나는 그 어느날을 나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두어 달 전쯤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 친구 분 한 분이 돌아가셨다.
내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분은 고향에 마지막으로 한 분 계시는 친구 분이셨다
나는 그 사실을 차마 아버지에게 말씀 드리지 못하고 대신 다녀왔다
어디서 들어 알고 계신지 아니면 모르시는 것 인지 아직도 그 사실을 묻지 않으신다
평소같지 않게 문상 가는 그 길이 왜 그리 멀고도 멀던지.....
필연적인 인연이라 해도 언젠가는 헤어짐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월 타고 내 가슴속에 흘러온 것이 시디시린 가슴앓이라 해도 말이다
첫 만남의 장소로 되돌아가 아버지의 사마귀를 만지며 낄낄 거리고 싶지만
우리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참 오랜 세월 같은데 이제 한 순간의 기억만 같다
매달 얼마간의 용돈을 드릴라치면 아버지는 매번 그냥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꼭 몇번
사양을 하시곤 슬그머니 받으신다.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그 옛날 시골 장터에나 가봤으면 좋겠다
아버지께서 사 주셨던 그 엿이 먹고 싶고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께 사 드릴 수 도 있을것
같은데 그리운 시간들은 왜 그렇게 몽롱한 추억속의 시간들 뿐인지 모르겠다
위 글은 언젠가 아버지께서 생존 해 계실때
댓글 2개
포아풀
2008. 05. 12. 오전 09:38
언젠가 장날 아버지를 따라갔는데 물씬 김 오르는 하얀 찐빵을 사주셨지요. 그때의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지요. 김재원 님의 글에 그때가 생각나네요. 세상 한 채 짊어지던 아버지의 넓은 등이 초라하고 가엾어 보이기만 하셨군요. 그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도 이제는 뵐 수 없으시다구요. 마음이 축축해집니다. 그리운 아버지를 되새기며 더 좋은 아버지, 훌륭한 부모로 남기를 다짐해 보는 것... 그리워하고 아프면서, 또 다른 그리움을 만드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어요. 따듯한 글, 잘 읽었습니다.
김문숙
2008. 05. 12. 오후 01:23
부모님의 죽음이란 무한 존재적인 아픔입니다. 그리움입나다. 세상 보무님 살아 계실 땐 읽어도 무슨 말인 지도 모르지요. 그저 그럴 꺼야 하는 ---.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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