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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플레시아의 덫 』
수필/ 『 라플레시아의 덫 』
- 유 민 자 -
악취가 난다. 가슴이 두근두근 무두방망이질을 친다.
그가 내 곁을 스치며 한 마디 툭 내뱉는다. “내일이 설날이야.” 나는 은밀한 그늘 속으로 기어든다. ‘오늘은 섣달그믐이 아니야. 또 왜 그는 누군가 사람이 그리운가?’ 기억의 한 조각을 끌어당기는 그의 혼잣말로 우리는 캄캄한 절벽으로 야멸차게 내몰린다.
삶에서 지녔던 것은 모두 내려놓아야 할 나이, 그는 맨몸이다. 지금 아랫도리를 벗고 거실 이쪽에서 저쪽까지 대소변을 질질거리며 흘린 다음에야, 변기뚜껑 위로 몸을 비스듬히 비튼다. 온 통 멀건 악취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멀거린다.
그가 다시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다시 거실에서 식당으로 건너와 냉장고 문 뒤로 숨어 우유 1000ML를 곽 채로 벌컥벌컥 입안으로 들이킨다. 그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안 먹었다고 말하며 나를 힐끗 쳐다본다. 그의 눈빛에서 알 수없는 서슬이 뿜어져 나온다. 내 무섬증이 도진다.
현실세계는 봄의 끝자락이지만 함께 춥다. 상상속의 하얀 눈발이 살아있는 송장되어 내려앉는다. 녹는다. 때로는 삶의 얼굴위로 눈발이 날린다. 언제부터인가 내게로 세차게 날아든 살얼음들, 난 생의 덫에 걸려 가슴이 시려 옥조여 든다.
‘98세의 치매, 시어른이 지닌 멀고 깊은 기억들을 내가 사랑해야지.’
영상/ 앵두나무와 나뭇잎에 숨은 노린재 모습
그가 외곬수가 되어간다 욕지기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똥은 누지 않았다 한다. 욕실은 똥칠된 바지로 첨벙이다 잠시 고요속이다. 순식간에 번진 비릿함은 온 사위로 삿대질이다. 볕 좋은 날, 바짓가랑이 털고 씻어 줄에 넌다. 마음 하나 길게 뉘고 빨래집게로 잠근다.
그 자리 광대노린재가 쥐죽은 듯 앉았다가 잡으려 눈독을 들이는 순간, 잡히지 않으려 허공을 가른다. 땅 밑 어둠을 뚫은 더듬이로 하늘 안테나 꽂고 가슴에 품은 독가스, 노린다. 쏜다. 경계령신호 3호 발사, 오늘이 간다. 내일이 오고 있다. 창창한 생 스치고 닿는 옷깃 툭툭 한숨을 건다. 현란한 어지럼으로 아우성이다.
설익은 앵두 몇 알 오물거리던 이웃이 먹어도 되냐고 묻는다. 그냥 웃는다. 앵두나무 옆 빨랫줄에 널린 시아버지의 누런 바지위로 가랑비가 슬쩍 내려앉는다.
붉은 앵두 세상 보고 인사한다. 앵두가 장마 비에 툭 떨어진다. 후 두둑 앵두나무 잎 흔들리더니, 영원처럼 엎드려 있던 광대노린재 허공을 쏜다. 내일은 또 다른 열매 맺히겠지. 정말, 사는 것은 애오라지 햇살 맞이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지우는 용기(勇氣)이다.
영상/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키나발루산 정상모습
나이는 마술처럼 되돌려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매는 영혼의 상실이다. 치매기는 삶의 질서를 깨며 혼돈의 무게를 재기도 하며, ‘아이다운 짐인가 , 어른다운 짐인가’를 생각하며 현실속의 가치관을 저울질을 하게 만든다. 비로소 코를 막던 역한 냄새에 내 몸을 슬쩍 담근다.
시어른의 치매기인 삶의 덫을 사랑하자. 끝없는 하늘사랑으로 푸근히 감싸 안는다. 내 덫을 사랑하자. 그 덫을 또 다른 이름으로 ‘라플레시아의 덫’이라 부른다.
신비로운 꽃, 라플레시아여.
산봉우리 아래 바다를 닮은 하늘이 있고 파도가 일렁이는 구름이 드리운 깊은 산. 열대 우림 속에 핀 왕 중 왕의 꽃, 라플레시아. 거대한 나무에 슬쩍 기대어 두 손을 땅에 딛고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내려앉은 그대여. 짙은 향을 품고 성난 슬픔을 뿜어내는 그 어떤 깨달음의 꽃이여. 악취의 제왕으로 활짝 핀 앉은뱅이 꽃이여.
눈부신 꽃, 라플레시아 (Rafflesia)여.
커다란 다섯 꽃잎 사이로 흰 점을 찍어낸 붉은 꽃. 환한 나팔꽃 미소로 피어 파리 떼가 꽃봉오리로 몰려와야 수정을 이루어 내는 라플레시아. 그대의 아릿한 향내를 그네에 태우고 행운의 땅으로 멀리 퍼져 약용으로 되살아나는 꽃이여. 너에게는 상한 고기 맛의 향취가 꽃가루를 실어 나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인가. 지독한 향내가 그대의 필사의 노력인가. 방자한 향기의 주인이여.
고약한 꽃, 라플레시아여.
상한 맛을 피워서 파리를 유혹하여 꽃가루를 옮겨 번식하는 가련한 꽃. 밀림의 정글 속에서 눈부신 햇살인 태양에너지를 마다하고 나무에 기생하여 수액을 빨아먹고 살아가는 라플레시아. 너는 아름다운 덫인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수줍게 있으면 너는 죽는가. 또 다른 그대의 필명인 시체 꽃이여.
서러운 꽃, 라플레시아여.
꽃 한 송이의 지름이 1미터ㆍ무게가 10킬로그램의 거대한 몸을 등짐 지고, 잎과 줄기 없이 땅위로 치솟은 꽃. 홀로 고독을 즐기는 그대여. 15개월 동안 꽃 봉우리 되어 숨어 살다가 화들짝 피어 7일 만에 져버리는 라플레시아 (Rafflesia). 나를 알리기 위한 악취를 만들어 파리를 부르고 사람향기를 부르는가. 순간을 영원으로 사는 희귀한 꽃이여.
나는 신비로움으로 뭉친 그 꽃잎의 깨달음을 만진다. 너에게서 생명의 덫을 느낀다. 라플레시아의 악취는 자신의 살아있는 손짓이다. 시어른의 악취도 나를 보듬어 달라는 몸짓이다. 아직 만져볼 수 없는 99세의 세월나이를 바라보며, 나는 단순히 미래로 향하는 나이여행 예행연습 중이라고 중얼댄다. 마음이 말캉해진다.
‘내 마음결에 예리한 칼질을 그만두어야지’
라플레시아가 사는 풀숲의 바람과 공기와 흙 그리고 새소리를 부른다. 비릿한 치매기의 슬픔도 그들 따라 올망졸망 내 창안으로 다정히 들어선다. 삶의 길벗을 반긴다.
내 밑동에 ‘어둠의 갈퀴’를 묻는다. 마음 풍경에 어린아이가 즐기는 만화경을 돌려 세상의 빛과 색을 조각하여 속삭인다.
일상의 숲에 태양이 뜨고 미세한 바람이 인다. 어제와 똑같이 일렁인다.
- 끝 -
영상/ 코타미나발루의 밀림, 유민자드림
댓글 9개
그래요. 그대가 바로 참 시인입니다. 99세 치매의 시어른이 풍기는 악취를 라플레시아의 꽃으로 피워 내는 용기. 그 인생을 오랜 기다림의 봉오리 끝에 겨우 7일 피워내고 숨지는 가여움으로 수용한 당신은 용기 있고, 재력있고, 품위를 갖춘 참 그리스도인 참 시인입니다. 언젠가 감추인 당신의 향기가 지상에서도 참 빛과 사랑의 표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날을 미리 더욱 축하드립니다.
아픔이 그대로 드러난 글, 참으로 부끄럽지요.... 왜? 썼는지...스스로에게 반문해 보는 오늘입니다. 송구해요. 정겨운 인사를 해주시는 김문숙시인님, 제가 '인내의 끝'을 실험중인걸요. ^&^
아픔이 드러나는 글은 수치가 아닙니다.저는 글은 모쪼록 진실해야 하고 거기 인간본연의 사랑과 존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픔을 구박하고 외면하고 아닌척하는 것은 병입니다. 우리는 그런 분을 복음의 진수로 치유시켜야 하지요. 아픔에 당당히 맞서면서 그를 끌어 안은 용기, 그리스도의 사랑과 소망과 신뢰를 가진자가 이룰수 있는 참 인간다움, 승리의 표현입니다. 병을 미워해야 하고 사람은 긍휼히 여김,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픈 시어른, 인간존엄에 대한 아픔이 오히려 향기롭게 풍깁니다. 이글을 읽으며 우리도 그분을 존경케 하고 민자씨와 그 가족, 인간에 대한 아픔을 안타깝게 합니다.
고장 잦은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듯 지나온 길 일일이 짚어주어도 무거운 생을 덜어내려는지 그는 얽힌 넝쿨을 자꾸만 걷어냈다 훵한 기억의 숲, 되짚어 읽어갈 길 막막한데 철부지 아이들이 던진 돌팔매에 와장창 깨진 유리창처럼 날 선 햇빛에 환하게 열리기를 기다리는 망각의 창가엔 어린아이가 된 천진한 그가 가족들의 근심을 입은 채 서성이고 있었다... 착한 분, 아름다운 분... 유민자 선생님의 글이 공감의 한자락을 끌어당겨요. 가슴 한켠을 아프게 헤집어요. 먼 시절, 저도 그런 기억으로 써본 글이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시부님과의 한살이... 그러나 그것도 이제 웃음으로 말하지요.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선생님의 한살이...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렇기에 더욱 장한 분입니다. 선생님의 참모습을, 마음을, 글을 사랑합니다.
라플레시아라는 생소한 꽃과 고운글 잘 보고 갑니다~
인간을 궁훌히 여기는 마음이 생명의식인 듯해요. 김문숙님덕분에 눈시울이 시큰거려요. 진심이 다가서는걸요. 사실은 제가 시어른덕분에 , 나다운 삶의 가치를 생각해요. 아마도 긍정적인 인식이 최고 최상의 인간의 덕목임을 알아갑니다. 웃으려해요.
기억의 숲에 우리가 되어, 함께 앉아 있네요, 포아폴님. \"어린아이가 된 천진한 그가 가족들의 근심을 입은 채 서성이고 있었다.\"... 아마도, 천진스러움을 넘어서는 것이 치매증인듯 한걸요. 치매증는 그 어떤 삶의 독기를 뿜을 때가 있어요. 아련한 기억속에 존재하는 아픈 잔상을 흘리는 듯, 현세의 눈빛이 아닌걸요. \"와장창 깨진 유리창\"을 닮은 몸짓이지요...맞아요....공감해요, 포아폴님 이임영선생님. 어두운 글느낌으로 제가 숨고 싶어집니다. 함께하는 공감언어에 감사인사드립니다. ^&^
존경하는 유민자 님이 웃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하나님도 웃으셨다.
\"오늘의 핫 이슈\" 소식이 될까봐, 자꾸만 제가 죄스런 마음이 들어요. 오늘. 부족하기만한 제가 그대(?)덕분에 킥킥대며 길게~~~ 웃어요. ♩♬♪ ♩♬♪ 오늘의 핫 ★ 이슈님. 이제는,,,제가 환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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