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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박성실 2011. 05. 18. 오후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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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박성실
재엽 선배는 나를 좋아했다. 갸름한 얼굴에 선한 눈을 가진 그가 남다른 농도의 눈길로 나를 쫓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마사지학 시간에 조를 나눴는데 재엽 선배는 우리 조였다. 우리는 모두 넷이었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돌아가면서 환자가 되어주어야 했다. 남자인 재엽 선배와 경석이가 각각 등과 다리를 맡고 나와 진아가 팔과 얼굴 환자를 맡기로 했다. 교수님이 근막을 풀어주는 마사지 방법에서부터 점점 강도를 세게 하는 마사지의 원리, 그 방향과 강도에 대하여 설명했다. 교수님이 칠판에 그리던 것을 멈추고 앞으로 나왔다. 환자로 자청한 동신 선배가 미리 준비된 탁자 위에 가로로 누워 있었다. 선생님은 설명한 대로 손을 비벼 따듯하게 하더니 능숙하게 오일 소량을 손에 덜어 정성껏 비빈다. 그러더니 엉덩이 윗부분부터 가볍게 밀어 올라가 어깨를 감싸면서 옆구리 방향으로 내려온다. 수퍼피살(superficial) 마사지였다. 동신 선배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교수님은 마사지를 이어가면서 마사지는 피부끼리 맞닿으면서 육체가 닿을 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치료까지도 가져갈 수 있는 치료법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앉은 탁자 위에는 재엽 선배가 엎드려 있었다.

언젠가 재엽 선배의 친한 친구인 영선 선배가 밥을 먹자며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물었었다.

“남자한테 관심 없어?”
“관심 많아요.”
“남자친구 있어?”
“왜요?”
“없지?”

내가 말이 없자 그가 말했다.

“너한테는 고백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네 마음 안에 누군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라고는 없어 보이거든, 지금의 너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사랑이라는 것이 뭐죠?”
“글쎄, 적어도 내 안의 공간을 내어 주는 것이겠지?”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나요?”
“용기는 승산이 있어 보일 때 내는 거야.”

“소영아” 진아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된 것이었다. 선배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긴장한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비비고 오일을 소량 덜었다. 그의 등은 사춘기 소년의 얼굴처럼 붉었다. 손이 선뜻 그의 등에 내려앉지 않았다. 그 때 실습을 돌아보던 교수님이 다가와 말했다.

“자, 시작해보지, 온기를 상대에게 주는 거야. 이것은 에너지의 교류야. 치료사와 환자, 이 만남을 느껴 봐. 일단 손을 나란히 얹어 봐. 그래, 체온이 느껴지지?”

교수님은 체온을 느껴보라고 했다. 재엽 선배의 몸은 긴장되어 있었다. 척주를 따라 위로 올라가 웅크린 어깨를 감싸면서 내려온다. 그의 몸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손은 조금 점점 깊고 빠르게 움직인다. 지그재그로 ‘J’ 자로 손이 오간다. 그의 뭉쳐 있는 등에서 나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듯 안간힘을 썼다. 그의 몸이 녹녹해지며 숨을 쉬고 있었다. 아파왔다. 우리가 하고 있는 등 바라보기, 나는 필사적으로 그 숙제를 풀고 싶었다. 어느새 그의 등은 말할 수 없이 붉어져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지난 계절 석찬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잡고 있었다. 재엽선배의 등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등을 보았다. 
\"소영아, 너 괜찮아? 땀을 그렇게 흘려\"
진아였다.  다른 팀에서 하나 둘 정리를 시작하자 교수님이 오늘은 그만하겠다며 마무리를 시작했다. 나는 그의 등을 간단히 닦았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마사지학 시간이 끝났다. 나는 힘이 빠졌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재엽 선배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말했다.

“고마워, 소영아.”

그의 말을 걸자 나는 움츠려 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차를 한 잔 사고 싶은데……”
“선배, 제가 지금 집에 가야 되요.”
“바라다 줄까?”

그의 눈을 보면서 간절함이 가지는 설득력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돈암역에서 내렸고 나란히 승강장에 섰다.

“소영아”

그때 고등학생 여럿이 내 뒤에서 달려오더니 나를 치고 지나갔고 나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재엽 선배가 나를 잡아준다며 잡은 것이 가방이었다. 나는 가방에 걸려 허리를 구부린 채 있었고 가방이 열려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어! 미안해.”

그는 곧 무릎을 구부려 급하게 4색 볼펜, 스프링 노트, 마사지학 책을 줍기 시작했다.

“선배, 제가 할게요.”
“아니야, 미안해.”

그가 주은 물건들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전철이 들어온다는 신호가 울렸다.

“소영아”

평정심을 찾은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선배, 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는 앞을 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전철 들어온다.”

그의 말이 승강장을 떠돌았다.

“선배……”
“야, 너는 선배가 후배 집에 바라다 주는데, 안 되는 거니?”

전철 안의 침묵은 길었다. 전철에서 내리자 내가 말했다.

“이제 됐어요. 고마워요.”
“그래”

나는 돌아섰고 그때 뒤에서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네가 좋아.”

너무 작게 말했기 때문에 내게 한 말인지, 혼자 중얼거린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다만 뭔가 가슴에서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났고 내 다리는 어떻게 걷는지 잊었다. 그러니까 생후 12개월부터 연습해 온 걸음마가 한 순간 무력해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알아, 네가 마음이 없다는 걸, 그래서 오늘 고마웠어. 간다.”

나는 앞을 본채로 뒤를 향해 서 있었고 그는 나를 향한 마음을 그 자리에 남겨두고 멀어져 갔다. 그의 남겨둔 진심의 크기가 내 마음 안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바람이 멎었다. 시간이 멎었다. 드디어 참았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댓글 14개

포아풀 2011. 05. 18. 오후 09:34

이 연애소설의 제목이 궁금한데요? 처음엔 성실님의 이야기라고 생가하며 읽다가 아참, 소설이지...로 다시 생각을... 장르를 두루 섭력하시는군요? 부러워라^^

정상근 2011. 05. 18. 오후 10:35

fiction or non fiction??? 저는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참 밉다 그 여자가....(남자 입장에서)

박동수 2011. 05. 18. 오후 11:39

60년대 연애극장에 와 있는 기분입니다. 지금은 \"One tuch Sense\"시대 오래 간직하고 머뭇거림 같은 것은 멸종 되었고 오직 Feel에의한 순발적 연애시대라고 하더군요. 너무 앞서가는 말인듯 하기도 하지만 사실 부정적인 연애 시절을 느낄 때가 있긴 있어요 아름다운 시절이 생각 납니다. 다시 올 수 없는...... 픽션이던 아니던 말입니다. 짧은 연애 감상 잘 했습니다. 건승있기를 바랍니다

박성실 2011. 05. 19. 오전 09:22

앗! 제목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쩜 딱 그걸 물어보시네요. 남편하고 한참 웃었습니다. 제목은 '개 새 끼' ㅋㅋ 바람둥이 친구를 모티브로 쓰게된 소설인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다소 부족하기도 하고 빨리 글을 마무리 하고 싶은 저의 모습이 역력히 들어나는 중편 소설, 그 중 한 장면이랍니다. 문학의 향기 게시판에서 소설도 보고 싶은 마음에 한번 올려 본 것입니다. 두루 섭렵이라니....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뭐 하나라도 잘 했으면 좋겠는 것이 솔직한 저의 마음인데요.. 부끄럽네요...ㅜㅜ 저는 왜 이렇게 해 보고 싶은 것이 많을까요?

박성실 2011. 05. 19. 오전 09:28

제 이야기는 아닙니다. 소설이죠. 다만 제가 많이 투영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 하하 그 여자가 참 밉군요! 일렬로 서서 등바라보기, 짝사랑이라고 하죠. 재엽은 여자를 여자는 석찬이라는 남자를, 저는 화자의 입장에서 석찬이라는 남자가 꽤 미웠는데...^^

박성실 2011. 05. 19. 오전 09:33

네, 저는 그 시대의 사랑을 잘 모르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견은 '침묵이 더 큰 감정을 전달한다' 입니다. 감정을 해부해서 적나라게 쏟아 놓을 때의 쾌감도 있지만, 더 큰 감정을 표현할 때는 그보다 침묵하는 것이 혹은 그 때의 기류나 사람들의 표정 도로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필을 쓸 때는 자세하게 소설을 쓸 때는 숨기면서 요렇게 나름대로 써 보고 있습니다. 뭐 맘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게 문제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미오새 2011. 05. 19. 오후 12:01

*성실님.. 연애의 1법칙. 여자의 아니오는 부정의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첫 고백에 딱지를 맞았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연애의 2법칙. 애착이 가는 대상일수록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연애의 3법칙. 사랑은 눈물의 씨앗. 그 사랑 마음에 심고, 눈물 한 번 흘릴 각오로 시작한다. 재엽의 구애를 소영이가 거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성편력이 심하다는 이유인가요? 비록 소설속의 인물이지만...딱지 맞고 돌아서는 재엽이의 등이 측은해 보이는 것은, 실상은 완전한 사랑을 찾아 갈등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첫 걸음에 다녀가신 포아풀님의 말씀처럼, 장르를 두루 섭력하시는 성실님의 야망은 어디서 멈출까요?

김현배 2011. 05. 19. 오후 03:15

그와 그녀 사이의 사랑의 감정, 그리고 힘의 대결이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재미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최인구 2011. 05. 19. 오후 04:21

성실 님! 안녕하셔요? 꽤 긴 글인지라 어제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작가가 정성들여 쓴 글을 성의 없이 읽는 것은 나름 죄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변명ㅋㅋ) 성실 님, 혹 전직 스포츠마사지사였나요? 제가 왜 이런 질문을 하냐면,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표현하기 힘든 묘사와 전문용어가 나와서입니다. 만약 마사지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도 이 글을 쓰셨다면 성실 님은 작가적 기질을 타고난 게 아닐까요??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라고 하더군요.. 그런 면에서 성실 님은 진정 행복한 여인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지원이도 있으니 말입니다. (윗집에 다녀가신 미오새 님께서 연애에 대한 몇 가지 훈수를 하셨는데.. 아무래도 작업의 달인이 아닐까 싶습니다.ㅎㅎ)

박종영 2011. 05. 20. 오전 01:51

한편의 단막극을 보고 갑니다. 세련된 마사지 언어와 사람의 의식구조를 적절하게 배합한 연애소설,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박성실 2011. 05. 20. 오전 09:11

ㅎㅎ미오새님 연애법칙을 보니 남자분이 맞으시군요... 저희 남편도 처음 저를 만났을때 했던 거절을 그냥 하는 걸로 여기고 공을 들였다고 했지요... 그런데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거절은 거절이었어요 남편의 오해가 용기를 주어 지금의 우리가 있지만 말이예요 ^^ 그렇죠 완전한 사랑 어쩌면 우리는 뭔가 만들어 가면서 완성해 가는 사랑보다 안전한 사랑을 원하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현실은 다르네요 소영은 그런면에서 자신과 닮아있는 재엽의 모습이 아팠던 것은 아닐까요? 감히 위로하고 싶었을 거예요 어쩌면 자신이 위로받을 수 있는 길은 그 뿐일 수도... 장르를 넘나들며 쓰는 건 단지 쓰고 싶어져서 입니다... 그런데 써 놓고 나면 항상 하나라도 잘했으면 하고 생각한답니다.... 미오새님 들려 주셔서 감사해요^^ 건강 조심하세요... 전 감기가.. 콜록 콜록

박성실 2011. 05. 20. 오전 09:16

아, 감사해요 재미' 저는 요 말을 참 좋아한답니다 호호^^ 이 소설의 이 부분을 올린 이유는 하나 가장 독립적인 부분이기 때문이예요 사실 이 소설은 석찬과 소영에 관한 것이고든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성실 2011. 05. 20. 오전 09:23

아, 이런! 안타깝네요...저의 전공은 물리치료 랍니다...( 미오새님의 신비주의가 저는 왜 안되는지...) 고로 타고난 재능은 아니네요 히히히 그게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해요^^* 아 그리고 한가지, 연애 상담은 남자들끼리 말고 여성에게 할것! 여자가 여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답니다... 주변에 터놓고 얘기할 여성이 없으시다면 언제든 환영이니 연락 주세요^^ 인구님과 미오새님의 주고 받는 대화를 읽는 재미가 좋습니다 헤헤

박성실 2011. 05. 20. 오전 09:27

시인님 오셨네요^^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청명한 님의 시어랑 견줄까요? 부끄롭네요 문학의 향기가 요즘 풍성해져 행복합니다만 좀 부담스러워지기도 했어요 훌륭한 글들이 많아져서요^^ 봄날 만끽하세요 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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