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박쥐의 눈흘김

유민자 2011. 07. 22. 오후 07:27
3761

박쥐의 눈흘김




                                                                                                                                           
                                                                                                                                                                    
                                                                                                                                
                                                                                     
                                                    왜 나야?
                   왜 나만 졸졸 따라만 다니는 거야?
   기이한 밤이다. 잠시 나는 그 어떤 병증으로 죽을 만큼 아팠는지, 내가 벌써 죽을 나이인지 가늠한다. 일상에서 사악한 일을 해서 하늘의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망상 속에서 헤매다가 사방을 훑는다. 분명 꿈속에 내가 있는 것이라 단정한다. 
   저승사자다. 내 곁으로 다가와 윙크한다. 분명히 밤의 혼령이다. 그는 슬금슬금 자꾸만 나를 보면서 숨었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슬쩍 또 웃는다. 천국 문을 잘못 찾아든 귀신인양 내 주변을 흘깃댄다. 
 
   커다란 거미가 내 발밑으로 툭 떨어진다. 왕거미가 여덟 개의 홑눈으로 불을 밝히고 나를 유독 찾아낸 것은 아닐까? 기절초풍이란 말은 이럴 때 써먹어야 하는 것인가. 고개를 치켜든다. 
   자작나무 가지와 길쭉한 열매 주변에 거미줄이 즐비하고, 수를 셀 수 없는 박쥐가 자기 세상인양 노닌다. 길 한 귀퉁이에는 호박여우꼬리 원숭이가 누런 호박 위에 앉아 재롱을 떤다.   왠지 현실이라는 느낌이 밀려온다. 
 
  칼바람이 거리 따라 마음 따라 분다. 하늘은 오색 트리 불빛 따라 별빛 따라 호화롭다. 나는 그 거리 한켠의 따뜻한 모닥불 곁으로 급히 피하며 알 만한 사람을 찾는다. 나 홀로 수선스럽게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아는 놈, 물어볼 놈, 한 놈도 보이질 않는다. 나도 모르게 입속에서 욕이 마구 샌다. 하늘 위로 형광 박쥐가 날아다니고 올빼미가 나뭇가지 끝에 앉아서 나를 빤히 본다. 나는 그가 달려들지도 않는대도 훠이훠이 허공을 향한 헛질을 해댄다. 안개비가 내리더니 비보라가 인다. 
   어느 틈에 내 등 끝에 그가 달려왔다. 붉은 피를 흘리는 드라큘라다. 혼령 하나가 새까만 옷을 입고 거미 망을 치듯이 얽어맨 기이한 얼굴로 다가와, 왕 갈퀴 손으로 내 얼굴 위로 뛰어든다. 그는 잡아먹을 듯한 괴성을 지르며 내게로 불쑥 달려든다. 여우비가 부슬거리는 거리마다 길가의 분위기가 혼비백산이다.

  
   아는 사람이 그립다. 내 목소리가 입 밖으로 말을 꺼내려다가, 그 어떤 적막한 떨림으로 혀 안으로 말린다. 두터운 스웨터 속으로 초겨울비의 냉기가 서린다. 나는 온몸이 한파로 오돌돌 떨려서, 눈에 띄는 가게에 뛰어들어 푸른 우비 하나를 사서 걸친다. 몸의 한기를 우비로 여미고 나니까 이제는 마음이 외로움을 탄다. 밤바람 결에 휘휘 날리는 가문비나무 잎새마다 거미줄이 엉켜 붙어 거미맨이 튀어나올 것 같다. 금방이라도 의로운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타고 와서 나를 아는 척할듯하다.

  헛수고다. 스파이더맨이 나타난다는 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고블린(도깨비)이 중세기사 한 사람을 동여맨 채로 유령의 집으로 서둘러 들어가는 것이 또 보인다. 요란스런 굉음이 요란하다. 불빛이 팡팡 터진다. 갑자기 불꽃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하늘 끝으로 솟는다. 폭죽 하나가 영혼 세상으로 날아오르려는 몸짓으로 축복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희망의 빛으로 날아오른다. 내 눈길이 다채로운 빛을 보며 호강을 한다. 불꽃놀이는 빛의 축제다.

   “당케쉔”이라는 언어, 인간의 말소리가 축제마당에 퍼진다. 어디선가 꿈결처럼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곡이 온 사방으로 퍼지며, 내 가슴으로 묘하게 깔린다. <박쥐 서곡>이다. 피겨 스케이팅 요정 김연아 선수가 우승 당시 사용했던 곡이다. 그 곡이 낯설지가 않다. 19세기 ‘환락의 도시’ 빈을 무대로 펼쳐지는 귀족들의 유쾌한 해프닝을 그린 작품으로 즐거운 왈츠곡이 마음을 달뜨게 이끈다. 섣달그믐날 벌어진 <박쥐 서곡>이다. 나는 잠시 전의 놀람을 잊고서 박쥐서곡의 폴카 음률에 발장난을 치며 흥겹게 어깨마저 들썩인다.

   불쑥 볏짚으로 얽은 허수아비 인간이 내 곁으로 다가와 사진 한 방 찍자고 한다. 피에로처럼 싱긋 웃는 허수아비. 그놈만은 소박한 눈길로 손을 내민다. 괜찮은 놈이다. 내가 그와 우리 되어 그 혼령의 일행에 끼어든다. 이제야 나는 두려움을 벗고 허수아비 혼령과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으며 웃는다. 잠시 그 물결에 흥청거린다. ‘휴’ 하는 찰나, 또 다른 저승사자가 내 곁을 불뚝거렸지만 처음처럼 놀랍지 않다. 나 자신이 재미난 영혼 퍼레이드를 구경하듯 구경꾼이 되어간다.
   내가, 딸아이가, 누가 길을 잃은 것인가? 시커먼 혼령들의 놀람을 쓰다듬으며 혼잣말한다. 이제야 동행했던 딸아이를 찾는다. 무서우니까 아닌 척을 하고 외로우니까 사람을 찾는 것이 틀림없다. 나 홀로 벌린 해프닝이다. 우연히 그날은 10월 31일, 할로윈데이(Halloween Day)였다. 
  딸아이는 따끈한 커피를 사오겠다고 멀리 간 시간에 엄마 홀로 겪은 박쥐사건이라 부른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한 시간가량을 가면 유로파 파크, 공원입구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악령을 맞이하는 날이다. 공원거리는 어른과 아이가 천국의 문을 못 찾은 영혼 사랑으로, 낮과 밤의 얼굴이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닮은 날이었다.

   할로윈데이(Halloween Day), 기독교 아일랜드 풍습이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 유래되어 각지로 흩어진 풍습이다. ‘악령과 죽은 자의 영혼을 기리는 날’에서 ‘성인과 아이들의 삶을 경축하는 날’로 바꾸어 가는 21세기의 우리다. 투명한 생시 같은 날, 제왕 박쥐가 새초롬이 나를 보며 눈을 흘기던 그날을 떠올린다. 
   웬일인지 그 매섭던 ‘박쥐의 눈 흘김’이 무섭지 않다. “당케쉔” 내가 혼령들에게 ‘감사해요.’ 독일어로 인사한다. 내가 무섭던 그네들에게 정겨이 눈을 흘긴다. 기억 속의 저승사자의 모습이 코미디 한 조각을 닮았다. 놀람으로 떨던 내가 우습다. 비로소 내가 그들로 변복하여 다른 사람들의 놀라움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생각을 거꾸로 하면 재미나다. 즐겁다. 새로운 꿈이 튀어 오른다. 독특한 할로윈데이(Halloween Day) 맛 하나로, 오래도록 웃는다. 내 나이 속으로, 추억 속으로, 경험의 벽돌을 하나 나지막하게 쌓으며 내일을 맞이한다.

            미쁜 오늘, 꿈 하나가 튀어 오른다. 
  꼬리별 따라 별찌를 따라 그루잠을 자고 일어난 하루를 닮았던 그날. 다 흰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한 번쯤은 하늘가에서 줄타기를 펼치던 박쥐 모형들을 향해 눈바라기를 한다. 불쑥 얼굴을 들이밀던 저승사자 거미, 원숭이 행렬의 포로롱거림에 생각의 날개를 퍼르퍼르 날리던 그날. 
   매서운 바람과 함께 내려주던 산돌림, 그 소낙비의 기억 속을 흐르던 그날! 
            온 누리에 싱거운 무섬증으로 내 감성의 빛을 발하던 그날!
* 뜻이 좋은 ,순 우리말
꼬리별-혜성
별찌-유성
그루잠-깨었다가 다시 든 잠
다흰- 흰 눈꽃같이, 세상을 다 희게 하는 사람
산돌림 :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오는 소나기


글과 영상/ 유민자드림

댓글 8개

박종영 2011. 07. 23. 오전 05:07

뜻이 좋은 순, 우리말 \"매서운 바람과 함께 내려주던 산돌림, 그 소낙비의 기억 속을 흐르던 그날! 온 누리에 싱거운 무섬증으로 내 감성의 빛을 발하던 그날!\" /산돌림/이 이리저리 황망하게 내리는 소나기임을 알고 나서 순 우리말의 기쁨을 얻습니다. 주말 아침에 읽는 귀한글 감사합니다 유민자 작가님.

별안개 2011. 07. 23. 오전 06:42

왠지, 길벗(?)인양 아름다운 동행인 한 분을 맞이하는 느낌이예요. 지금처럼. 졸필의 제가, 사어(死語)에 된, 좋은 느낌의 우리말을 세상밖으로 꺼내들어요. 박종영시인님께서는 늘 이렇게 부족한 제게, '귀함이라는 언어'로 추켜주시며 글힘을 안겨 주시네요. 은혜로운 아침. 그 고운 결을 메만지는 지금 이 순간이 사랑스러운걸요. ^&^

김현배 2011. 07. 23. 오후 01:10

할로윈데이의 이색체험. 상징속에 담긴 진실. 축제는 우리를 바로 그 진실로 데려다 주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별안개 2011. 07. 23. 오후 02:33

정말로 놀람이란 언어 곁에서 숨을 헐떡였던, 상징적인 그 날의 체험 이야기예요. 오늘도 그 날처럼, '축제 한마당'을 벌이며 크게 웃고 싶은걸요. 김현배시인님...

미오새 2011. 07. 23. 오후 09:33

*별안개님.. 유선생님의 글앞에 서면 왜 작아지는 것일까요? 번번히 돌아서기만 하였지만 오늘은 다녀간 흔적으로 느낌표라도 남기렵니다. !..

김문숙 2011. 07. 24. 오전 06:08

많은 칭찬들이 있군요 축하드립니다 아마도 한줄기로 솟지만 여러 방향을 탐색 하게 되겠지요

별안개 2011. 07. 24. 오후 10:10

느낌표도 좋지만 쉼표가 더 좋은걸요. *^-^* 그냥 부족한 제 글이 쉬어가는 자리였으면 희망해요. 그윽한 감성이 느껴오는 미오새님의 흔적에, 제가 감흡해요. 왠지, 진심어린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별안개 2011. 07. 24. 오후 10:15

마음을 주고가시는 소리에, 그저 고개를 푹 숙이는 오늘이예요. 축복의 언어에, 은혜로운 김문숙선배님....^&^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