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사랑에 관한 사색
“지구가 뭘 중심으로 돌지?”
“자전축”
“그래? 이상한데”
“왜?”
“요즘 나의 지구는 당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거든”
한 사람만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지구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고 그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나는 매순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고 그를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 수 있을까에 몰두했다. 그것은 가슴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강력하지만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욕구였다. 이 욕구는 곧 행복해질 것만 같은 황홀감을 불러들이며 심장을 움직였다. 그러나 동시에 때로 비이성적인 나의 태도에 대한 자괴감을, 무모하고 유치해지는 나에 대한 환멸감을, 이런 나 자신에 대한 저항을 느꼈다. 나는 고민했다. 아무리 토해내려고 해도 토해낼 수 없는 큼직한 것이 가슴에 들어앉아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성적인 나는 온데간데없고 무엇인가에 휘둘리고 있는 수동적인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 저항감이 가져 오는 괴로움의 이유가 상대가 내 욕구에 부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곧 그가 나의 사람이 되어 내 욕구에 응해준다면 이런 괴로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이 어긋났다는 것을 나는 곧 알게 됐다.
그는 멀지 않아 나의 사람이 됐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면서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휘말리듯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우리는 같이 있기를 열정적으로 바랐고 함께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으며 하나가 되려는 듯 서로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소소한 일상까지도 놓치지 않고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저항은 거세졌다.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항상성이라는 것이 있다.
항상성(恒常性), 곧 항상을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이 성질은 사람이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예를 들어 추운 날 몸이 추위에 노출되면 체온이 내려가지 않도록 몸 안에서 열을 발생해 체온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그것이 항상성이다.
흔히 교과서에서나 보던 이야기를 새삼 하는 이유는 항상성이 단순히 생리적인 현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환경이 변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외부의 압력이 거세질 때 사람들은 곧잘 저항을 느끼게 되는데 그 또한 항상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껏 사랑에 빠져 헤엄치지 못하게 하는 이 저항, 그래서 끊임없이 드는 의문과 두려움, 이 원천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나는 그것이 내 평상심과 예측 가능한 상태 곧 주체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성질, 항상성이라 결론지었다.
사랑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빠져들 때 나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는 나에게 당황했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젖혀 두고 그와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나를 점거했을 때 나를 평소의 상태로 돌려놓고자 하는 힘, 항상성은 일종의 두려움을 불러들여 저항을 느끼게 한 것이다.
교통사고처럼 외부로부터의 커다란 자극이 들어 왔을 때 항상성은 괴로움을 느끼게 해서 빨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도록 자극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고통을 통해 회복을 외치게 되고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극이 너무 크거나 지속적일 경우에는 아무리 항상성이 발휘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이런 경우, 사람은 또 다른 조건을 새로운 환경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흔히들 체질개선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항상을 유지하기 위한 다른 대안인데, 본질을 바꾸는 것이다. 곧 본질 자체를 다르게 재설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점이 사랑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본다. 사랑은 너무 지속적이고 커다란 자극이어서 항상성이라는 성질로는 막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저항이 불러들이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나의 가장 커다란 숙제였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성 때문이라 결론지은 후 대답은 간단해졌다. 체질 개선을 할 것, 곧 사랑에 더욱 깊이 빠질 것. 본래적인 것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저항에서 오는 괴로움이라면 결국 본래적인 것을 바꾸는 것이 최선이다. 곧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사랑이 시작되어 내가 원하는 것과 그가 원하는 것의 차이에서 생기는 갈등에 저항하지 말고 희생하도록 나를 내어주는 것, 곧 기꺼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참 어이없다. 항상성이라는 단어까지 끌어다가 고민 고민한 끝에 얻어진 결론이 너무나 당연한 진실이라는 것. 워낙, 머리를 굴리면서 납득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쁜 습성이 불러낸 사랑에 대한 사색은 결국 이렇게 맺는다.
사랑에 빠졌다면 더 사랑하라. 그것이 오히려 당신을 방어하는 길이며 사랑할 때 후회하지 않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길이다. 과감히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과 타협하라. 그리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라. 행복하게 사랑하는 방법은 사랑하는 상태로의 체질개선이다.
========
가을이 오길래, 시가 쓰고 싶어졌다.
큰 놈이 가슴팍에 들어 앉아 좀처럼 이렇다할 소리를 내지 못하길래 글방을 서성이다 오래전 써놓은 이 놈과 만났다.
항상성... 대상이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글을 나누고 싶어졌다.
댓글 10개
안녕하세요 박성실 작가님 오랜만에 좋은 글로 뵙습니다. 사랑의 축은 마음안의 생각의 축으로 돌고 있다고 합니다. 항상성은 한사람의 가슴안에 안식의 터를 잡고 돌고돌아 오늘까지 살아온 우리들인것 같습니다 제법 쌀쌀한 날씨, 그리고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건강한 시간 나시기를 빕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박성실님/
네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게 됐네요 ^^ 저는 사실 틈틈이 와서 뵜는데, 헤헤 죄송합니다. 하워드 제어라는 분의 책을 읽고 있는데, 이런 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해자가 범죄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가해자에 의해 자신의 삶의 주체성이 부인된 것이다. 곧 자신의 삶은 더이상 예측가능하지 않는 두려운 상태가 된다는 거죠. 아기들이 반복되는 것을 재밌어하는 것도 예측 가능한 상태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도 하더군요. 사람들은 그만큼 심리적으로 안정을 추구합니다. 물론 그 불안을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삶을 자신이 꾸려갈 수 있다는 주체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뭐 말이 길어졌지만, 불안한 상태마저도 선택한다는 주체성, 그것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잠시 가져 봤습니다. 시인님, 저는 작가라는 말이 조심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선된 적은 있지만 등단은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글 쓰시는 작가분들에게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날이 바뀌고 있습니다. 건강을 빕니다. 인사 건네주셔서 참 반갑고 감사합니다.
hi~ 성실 님! 제가 지금 손 내밀며 웃고 있는 모습 보이시죠..^^ 반갑습니다.. 이래저래 경황이 없다보니 간만에 인사 나누네요.. '항상성' 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긴 하지만 성실 님의 논리적인 글을 쭉 읽으니 대략 이해가 가네요.. 사람이 늘 한결 같다가도 사랑이 찾아오면 주저없이 체질개선을 시도해 두려움 없이 사랑하라!! 꼭 명심합지요.. 성실 님~! 계절이 바뀌며 쌀쌀맞게 구네요.. 여름의 질투에 당하지 마시고.. 굳건하게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무언가 순수한 목적을 위해 기존의 항상성을 거부하고 몸을 내던지는 사랑도 있겠다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사랑에 빠져들 때의 위험요인은 그와 그녀 외에는 아무도 몰라준다는 거다 오랜만입니다. 박성실님
아 인구님! 반가워 내민 손 잡기 전에 포옹이라도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래서 여럿 당황 시켰죠;;;; 여수는 잘 다녀 오셨나요? 도통 시간이 맞지 않아 그 많은 인파에 섞이지 못했습니다. 가을입니다. 쌀쌀한 날이 매서운날에 압도당하기 전에 질투를 받던 안받던 즐겨봐야겠습니다. 이 가을 아름다운 사랑도 하시면서 만끽하시길 기원합니다--- 건네주신 손 감사합니다---
네 오랜만입니다^^ 항상 이곳에 오면 뵐 수 있어 좋습니다. 위험한 것, 그래서 항상성이 작용하는 것이죠^^ 가을, 좋은 날 되십시요----!
*성실님.. 배율좋은 현미경으로 사랑을 임상관찰한 결과물을 읽고 있는 느낌입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에는 자전거가 넘어 질려는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조작하므로 그만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전거가 넘어질려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주면 비틀비틀 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넘어지지 않을려는 본능과 물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방향이 서로 충돌하는 현상때문에 겪게되는 혼란이겠지요.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몸이 그 동작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쳐야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는 것 처럼, 감미롭고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사랑도, 저항성을 극복하면서 부터 가속도가 붙는 것 같군요. 순리에 순응하는 자세를 갖추기까지 겪어야 하는 성장통과 비슷한... 사랑과 항상성을 설명하는 성실님의 모습...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 성실한 자세와 지적 예리함과 깊은 통찰력이 돋 보입니다. 사랑을 받는 그 사람, 무척 행복하겠다.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도 무지 행복해 보인다. 부럽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시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질투 하지 않으며 --- 성서는 사랑을 하는 데 배워야 할 것이 거의 19가지에 해당한다는 말씀을 들었지요. 사랑처럼 인간성숙에 가장 좋은 도구가 있을 까 합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미오새님, 잘 지내셨나요? 현미경, 이라는 말이 와 닿네요. 환원주의적인 방법은 한계가 있는데, 생각이 깊어지면 넓어지기도 해야하는데, 여기서 생기는 오류가 분명히 있을 거 같습니다. 의도는 아니셨지만, 저 말이 도전이 되네요^^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가을이 벌써 왔다는 것과 거울 속의 얼굴이 더이상 어떻게 해도 어려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지금이 2012년 가을이라는 실감하고 있습니다. 흑;;;; 유치환님의 시 '행복'이었나요?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다. 윤영선님의 '키스'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고독한 두 존재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간단한 대사로 다루고 있는 이 희곡은 남 녀가 어떤 지점에서 만남(키스)을 가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답니다. 마음과 마음, 영혼과 영혼이 닿는 경험은 언어적, 문화적 장애를 거뜬히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그 장애라 불리는 것들이 위에서와 같이 항상성과 더불어 작용하는 것이죠. 날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더 많이 존재하시는, 그리고 더 많은 것과 교감하면서 사랑을 나누시는 가을되시길 바랍니다.
네 시인님, 성서에서 말하는 사랑을 읽으면 저는 단 한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이는 탈자아가 사랑이라고 하던데,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 할까요? 사랑처럼 인간성숙에 좋은 도구는 없다 공감합니다. 오늘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그분 여주신 사랑, 따라갈 수 있도록 해 보아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인님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