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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주의보
백승훈 2012. 11. 15. 오전 10:21
6071
백승훈 2012. 11. 15. 오전 10:21
6071
안개 자욱한 아침입니다.
마른 잠 속을 빠져나와 호수에 닿기까지
길 끝이 사라져버린 안개 속을 걷다보면 많은 생각들이 스쳐갑니다.
몇 조각을 잃어버린 직소퍼즐처럼 맞춰지지 않는 간밤의 꿈과
밋밋하기 그지 없는 어제의 일들과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오늘 하루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발길은 호수에 닿아 있습니다.
나의 보폭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만 길을 열어주는
안개 속을 걷다보면 우리 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가시 거리는 겨우 몇 발짝 앞에 지나지 않고
그저 묵묵히 희미한 길의 윤곽을 따라 발을 내딛아야 하는 안개 속 행보 속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익숙한 풍경들이란
살아오는 동안 마음 속에 그려 넣은 밑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스로 그려 가진 풍경의 존재를 믿으며 내딛는 발길에 체중을 얹는 일,
그게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안에서 살아간다.'
안개가 가득히 피어나는 호수를 바라볼 때면 이따금 소설가 김훈의 저 말을 생각합니다.
바깥의 풍경들이 내 안의 상처와 만나 재편성될 때 그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수 밖에 없다던
그의 말을 생각하면 나는 풍경을 지우는 안개를 만나는 일이
한편 다행스럽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수시로 앞길을 가로막는 자욱한 안개,
그 안개의 한 가운데에 오늘도 우리는 서 있습니다.
안개가 짙은 날 오후엔 햇살이 더욱 눈부시게 마련입니다.
사는 일이 오리무중일 때면 그 뒤에 올 햇살 부신 오후를 생각합니다.
함부로 내딛는 발길을 경계하지 않으면 허방 짚기 딱 좋은 시절,
내안에 수시로 안개주의보를 발령하면서......
안개 속을 걷다보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젖기 쉽습니다.
혹여라도 안개에 젖지 않도록 마음 단속 단단히 하십시오.
오늘도 좋은 하루!
사랑아
그대가 떠나고
세상의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나는
아직도
안개중독자로
공지천을 떠돌고 있다
흐리게 지워지는
풍경 너머 어디쯤
지난날
그대에게 엽서를 보내던
우체국은 매몰되어 있을까
길없는 허공에서 일어나
길없는 허공에서 스러지는
안개처럼
그토록 아파한 나날들도
손금 속에 각인되지 않은 채로
소멸한다
결국 춘천에서는
방황만이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다
- 이외수의'안개중독자' -
댓글 4개
김영호
2012. 11. 16. 오후 01:21
몸보다 마음이 먼저 젖는다는 말에 공감200%네요. 잘 읽고 갑니다.
백승훈
2012. 11. 16. 오후 09:52
공감 200%씩이나요? ^^ 고맙습니다. 안개 걷히면 햇빛 쨍한 오후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또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현배
2012. 11. 18. 오후 06:05
고통이 소멸하면 방황의 진실을 쫓는다 의미를 찾기도 만들기도 하는 우리의 인생 사 감사합니다. 백승훈님
백승훈
2012. 11. 19. 오전 09:13
고맙습니다.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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