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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수록 향기을 더하는 꽃처럼
牧丹峯下嬋娟洞 洞裡埋香草自春
若爲借得仙翁術 喚起當年第一人
모란봉 아래 선연동을 찾아가니
골짝에 향을 묻어 풀빛 절로 봄일세.
만약에 신선술을 빌릴 수만 있다면
그때에 손꼽던 이 불러 일으키련만.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지난 밤 책 속에서 허난설헌의 스승인 손곡 이달의 '선연동'이란 시를 만났습니다.
선연동은 평양 기생들의 공동묘지가 있던 곳의 지명입니다.
기생들의 무덤을 '향을 묻었다'하여 '매향(埋香)이라 칭한다는 말에 마음을 빼앗겨 생각이 깊어지던 참이었는데
바로 그때 고창에 사는 벗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습니다.
복분자 농사나 지으며 음풍농월의 여유를 즐겨보겠다고 고단한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낙향하여 나무를 심기 시작한 친구인데 시간내어 한 번 내려오라 합니다.
제가 매향(埋香)이란 말에 골똘해 있는 동안 가지를 뻗은 생각이
흐린 날이면 향나무로 된 목조삼존불에서 흘러 나온 향내가 경내에 자욱하다는
선운사 영산전을 참견하고 싶다는 데 닿았을 때 그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으니
이보다 더 묘하고 또 묘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닷물이 들고나는 개펄에 향나무나 참나무를 100년 이상 묻어두었다가 꺼내면 나무 전체가 향이 되는데
물에 띄우면 잠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 침향(沈香)은
사향노루에서 얻어지는 사향, 그리고 향유고래의 토사물에서 얻어지는 용연향과 더불어
옛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향이었다고 합니다.
내세에는 부디 극락정토에 태어나길 발원하며
백년, 혹은 천년 후에 올 누군가에게 향기를 전하기 위하여 향을 묻은 옛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선운사 영산전의 그윽하고도 맑은 침향을 흠향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내 안 가득 향내가 짙게 스미는 듯한 느낌입니다.
옛사람들은 선비가 사는 집을 일러 '난 향기가 나는 집'이라 하여 난형지실(蘭馨之室)이라 하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걸며, 꽃을 꽂는 일과 함께 운치 있는 4가지 일로 향을 피우고 즐겼다지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가 고창에 갈 때에는 선운사 골째기에 동백이 흐드러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점의 붉은 꽃빛이 간절해지는 요즘,
그윽한 침향을 맡으며 동백의 붉은 마음까지 훔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테니까요.
멀리갈수록 맑은 기운을 더한다는 향원익청(香遠益淸)이란 말처럼
오늘 하루도 그대의 맑은 향기가 보다 많은 이들을 그윽하게 하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고창의 벗이 좋아하던 박라연의 시를 옮겨 보았는데 그대도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침향(沈香)
박 라 연
잠시 잊은 것이다
생生에 대한 감동을 너무 헐값에 산 죄
너무 헐값에 팔아버린 죄,
황홀한 순간은 언제나 마약이라는 거
잠시 잊은 것이다
저 깊고 깊은 바닷 속에도 가을이 있어
가을 조기의 달디단 맛이 유별나듯
오래 견딘다는 것은 얼마나 달디단 맛인가
불면의 향香인가
잠시 잊을 뻔 했다
백단향白檀香이,
지상의 모든 이별이 그러하다는 것을
깊고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침향沈香을,
오늘도 좋은 하루!
댓글 6개
그윽한 향기가 느껴질 것 같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때로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한번 더 읽게 될 것 같습니다. 마음 닿는 편지글 고이 모셔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지요...제 블로그에 선생님 글을... 그래서 오늘도 고맙습니다. 남은 오후도 즐거운 시간되셨으면 하고요, 내일은 또 어떤 향기가 느껴질지 편안하게 기다리겠습니다.
깊고 깊은 곳에 숨어사는 그윽한 향기 언젠가 그 향기를 발하며 세상에 빛을 전하길 감사합니다. 백승훈님
물론 괜찮습니다. 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그또한 고마운 일입니다.
김현배 선생님 고맙습니다^^
매일매일 향기찾기는 생활의 일부분입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엷은 향기라도 전해졌다면 고마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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