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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하기

백승훈 2012. 11. 20. 오전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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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주가 한껏 키를 낮춘 아침입니다.
하루하루 이곳에서 편지를 쓰면서 차츰 생각은 깊어지고 행동은 신중해져서 
어느덧 글쓰기에 대한 나의 포즈도 단정해졌습니다. 
나의 편지가 진정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랐고 꽃다발처럼 누군가의 아침을 환하게 해주길 원했습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지난 시간들이 새삼 아쉽고
다시 한 번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단 의욕이 자꾸 생기는 걸 보면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일이
내게도 나름의 의미있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점차로 하던 일 거두고 마음공부에 힘쓰고 싶습니다...... 스스로 살 날이 길지 않음을 알면서도 바깥 일에만 마음이 치달리니, 이는 주자(朱子)께서도 만년에 뉘우친 바였습니다.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고자 하다 보면 세간의 잡념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어지럽게 일어나 무엇 하나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으니,마음공부로는 저술보다 나은 게 없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이 때문에 문득 멈추지 못합니다.\"
 
다산 정약용이 50세가 되던  해에 흑산도에 유배 중이던 둘째 형님께 보낸 장문의 편지에 들어 있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다산의 '유배지에서 띄운 편지'를 읽다가 마음공부에는 글쓰기가 최고라는 다산의 생각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인용한 편지 속엔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알고 거기에 힘쓰고자 하나  복잡한 심사를 가누지 못해 저술 작업에 몰두 할 수 밖에 없던 다산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도 한때 그와 비슷한 생각을 품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십여 년 전 쯤, 그 어름이었을 것입니다.
몸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심한 요통에 시달렸고 정신은 극도로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밤이면 온갖 잡념이 어지럽게 일어나 머리 속에서 뒤엉켜 쉬이 잠들지 못했고
겨우겨우 잠이 들면 어김없이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하루하루가 고통이었고 들숨 날숨이 힘겹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나를 견디게 해준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글쓰기였고, 다른 하나는 들꽃탐행이었습니다.
낮에는 꽃을 보며 마음을 달랬고 잠 들지 못하는 밤엔 글쓰기에 매달렸습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꽃 앞에 앉아 있는 시간과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거짓말처럼 요통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온갖 상념으로 마냥 어지럽던 머리 속도 맑아졌습니다. 
들꽃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나는 꽃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하나씩 새롭게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꽃 잡고 길을 묻는 날이 잦아지면서 자연보다 위대한 스승이 없고 꽃보다 아름다운 책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에도 삼라만상의 오묘한 이치가 들어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도  있었습니다.
 
옛사람들이 말하던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넘어 이치로 읽으라 했던 관물(觀物)의 지혜를 꽃에게서 배운 셈이지요. 
관물(觀物)이란 사물 속에 담긴 무궁한 이치를 잘 살필 줄 아는 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물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 위해선
세심한 관찰과 오랜 응시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전 꽃을 통해 배웠습니다. 
일찍이 근세 실학의 거두였던 성호 이익 선생은
생활 속의 주변 사물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여 모두 77항목에 이르는 관물일기를 남겼습니다.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안산의 궁벽한 시골에 은둔하면서 재야학자로 생애를 마쳤지만
무심히 지나쳐 버리기 쉬운 사물에 담겨 있는 있는 이치를 캐어
이를 현실의 삶과 연관시켜 '관물편'이란 책을 썼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야생 거위를 잡아 길렀는데, 불에 익힌 음식을 먹이자 거위는 몸이 뚱뚱해져서 날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거위가 음식을 먹지 않고 한 열흘쯤 굶더니 몸이 가벼워져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성호 이익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먹어서는 안될 음식을 먹고 비만이나 소화불량에 걸려 끝내는 잡아 먹히고 마는
인간 거위가 많은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저 짧은 일화 속에 담긴 뜻이 산처럼 무겁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마음공부란 것이 딱히 책상머리에 앉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우리에겐 세상이 가장 큰 책입니다.
풀이나 나무, 작은 들꽃 한 송이가 살아 있는 불립문자입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내게 오는 모든 것들을 마음의 눈으로 살피고 생각을 궁굴리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낮에 꽃을 보고 깨달은 바를 밤에 글로 적을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마음공부도 없지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씩씩하게 지내시길....

댓글 7개

김문숙 2012. 11. 20. 오후 02:01

성서에서도 성을 빼앗는 것 보다 마음을 뱃기지 않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했읍니다 \"성\"이란 그들 나라들 토는 통치자들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었던 가요? 집에 돌아와서 단정한 내 집 구석을 보듯이 늘 내 마음도 그리 잘 정리정돈 되어지기를 바램은 인생을 알아가는 어느때 사람이던 같은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김영호 2012. 11. 20. 오후 03:16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꽃 2012. 11. 20. 오후 06:40

오늘도 역시 마음 닿는 글에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갈수록 생각은 깊어지고 밤이 되어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할 때가 저도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무작정 밖으로 나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마음으로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으로 찍어 두기도 하고,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것들이 아직은 너무나 많지만, 그것이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란 걸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세상이 책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저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기에 부족하지만 조금씩 한 가지라도 배우며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선생님의 마음 팬이 되었네요. 짧게나마 댓글로 고마운 마음 풀어놓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책이 있으시다면 담에 간직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실 수 있겠는지요. 못 쓰는 글이라도 있는 그대로 제 생각을 풀어놓으면서 스스로 위안이 되기도 했는데, 이제는 선생님의 글도 제 마음의 위안이 되네요. 하루를 시작하면서 때로는 하루를 마감하면서 한 가지라도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도 편안한 밤 되셨으면 하고요, 내일도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승훈 2012. 11. 20. 오후 07:46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멈추지 말아야 할 일이 마음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끝없는 자기성찰 속에서 자신을 잘 다스리는 일, 그것이 곧 마음공부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추운 날 건강하세요

백승훈 2012. 11. 20. 오후 07:46

고맙습니다.

백승훈 2012. 11. 20. 오후 07:54

에구 보잘것 없는 편지글에 팬이 되셨다니 송구스럽습니다. 비꽃님의 살뜰한 댓글 덕분에 이곳에 글을 올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사진을 찍는 일, 글을 쓰는 일, 모두 행복한 일이지요. 나 아닌 다른 대상에 눈길을 건네고 생각을 모으는 일은 스스로의 틀을 벗어나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하니까요. 남들은 저보고 시인이라 호명하기도 하는데 아직 시집은 낸 적이 없고 꽃을 좋아하다보니 '꽃에게 말을 걸다'란 산문집을 한 권 묶은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구입하실 수 있으실겝니다. 이토록 제 글을 아껴주시니 한 권 선물해 드리고도 싶은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비꽃 2012. 11. 20. 오후 10:43

검색을 해보니 바로 나오네요. 유명서점에 있는 걸 확인했으니 가끔은 대형서점에도 직접 들르고 싶어서 서울 광화문에 날 잡아서 한번 다녀오려고 한답니다. 새로운 책들도 두루두루 볼 수 있기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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