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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쓸쓸함에 대하여
벗들아,
이제 헤어져야할 시간이다.
늙은 江의 下流에서 나는 너무 오랫동안 주저 앉아 있었다.
그러므로 벗들아, 이제 헤어지자.
나는 江을 거슬러서 上流로 가려 한다.
모든 낱말과 시간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그 始原의 물가로.
- 2006년 봄에,
김훈은 쓰다.
하늘의 별들이 꼼짝없이 얼어 붙을 것만 같이 몹시 추웠던 지난 밤,
나는 공연히 쓸쓸해져서 책을 뽑아 들었다가 순백의 속 표지에 그려진 원고지 칸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듯한 작가의 말과 마주친 순간, 나는 한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압 전류에 감전된 충격이 이처럼 얼얼할까요?.
몇 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강산무진'을 다시 한 번 읽고난 뒤
바라 본 밤하늘엔 반달이 밝았습니다.
불행히도 나는 이 소설의 소재가 된 조선 후기의 화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직접 대한 적이 없습니다.
작가가 친절하게 달아 놓은 각주에 보면
비단 화폭에 수묵 담채로 그려진 강산무진도는 화가의 시선이 천지간을 정처없이 떠돌며
시간과 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끝없는 산천의 전개와 운동,
시간의 운행 사이사이에 해운, 어로, 하역, 농경, 주거의 풍경을 묘사한
가로 856cm, 세로 44,1cm나 되는 두루마리 그림으로는 가장 긴 가로 화폭의 대작으로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림이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생각 외로 그림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겨우 찾아낸 그림이 이 글 앞에 걸어 놓은 것인데 이미지가 워낙 작아서 그림의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천상 하루 날을 잡아 박물관 나들이를 해야지 싶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김창수는 의류회사에서 수출 담당 상무인 57세의 남자입니다.
병원의 종합 검진에서 간암 판정을 받고 생을 정리해가는 과정을
잔인하다 싶을만큼 냉정하게 사실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 보입니다.
남의 일만 같았던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나의 현실이 되어 버린 것에 대한 절망이나 분노,
자기 연민이 끼여들 법도 싶은데 정작 작가는 언제 사직을 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한지,
보유주식의 매도 방법과 적금 해약 시점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카메라처럼 담담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김훈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란 '적막강산'에 던져진 외로운 존재란 사실을 일깨우고
그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생이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것 같은 소중한 사람을 잃어 버리고도 끼니 때가 되면 어김없이 입 속으로
밥숟가락을 밀어 넣는 것이 생이란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화가의 시선이 천지간을 정처없이 떠돌며
시간과 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펼쳐지는 강산무진도처럼
우리들의 삶 또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렇게 흩어졌다 모이고 접혔다 펼쳐진다는 것을 아프게 일깨우며
유한한 목숨을 지닌 존재로써 살아있음에 대한 축복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림을 볼 때 가장 좋은 감상법은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 화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풍경일지라도 평면의 사진으로 보면 그 감흥이 반감되듯이
제대로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선 그림 속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강의 안개를 밀고오는 습한 바람의 결을 느끼고,
비에 씻긴 바위와 이끼의 풀비린내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글도 그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풍경들을 살폈던 것 같습니다.
육십 갑자를 한 바퀴 돌아 나온 작가답게 그가 펼쳐보이는 세상 풍경은 쓸쓸하지만 거기,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삶의 진경이 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외기가 매우 차갑습니다.
이제 마음의 고삐 단단히 조이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책을 읽은 잔감으로 쓸쓸해진 가슴을 따뜻한 모과차 한 잔 하면서 달래면서...
오늘도 좋은 하루!^^
댓글 10개
네 삶이 참 쓸쓸합니다. 요즘과 같이 추운 날엔 더..
너무 쓸쓸해하진 마세요. 그 쓸쓸함 뒤엔 모과차 같은 따뜻한 이웃이 있으니까요^^
쓸쓸함. 어떤 감정이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란 그냥 있음을 향해 가는 과정인 듯합니다. 그냥 있음에서 무엇을 하고 있음 사이를 오가는 일, 태어나 사라지는 동안 수없이 되풀이 되는 듯도 합니다. 모과차와 그냥 있음과 따뜻한 이웃,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외로움, 쓸쓸함은 누구에게나 다 오는 것이지만 가족, 친구, 일이 있기에 용기를 얻고 잘 이겨내며 또 살아갈 내일이 있는 것이겠지요. 따뜻한 생강차 한잔 마시고 또 그렇게 남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러 갑니다. 기운나는 글 감사합니다.
조금은 쓸쓸한 게 인생이지만 굳이 외면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쓸쓸함을 즐기는 일, 그러면서 그 순간에 충실해 보는 일, 그게 우리들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연님 반갑습니다. 따끈한 생강차.. 모과차만큼이나 좋은 차입니다. 멋진 하루 마무리 하시길...
겨울이 되면 유난히 차가워지는 손인데, 저는 따뜻한 보이차 한잔 마시면서 선생님의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었답니다. 한 번밖에 없고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의 소중한 시간을 나름대로 의미 부여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찾아드는 쓸쓸함까지 잘 이겨내고서 좋은 분들과의 인연도 그리면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렵니다. 글을 읽다 보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림을 그릴 재주는 없으니 글로나마 마음을 풀어보게 됩니다. 짧게나마 편지를 띄우는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도현 시인이 말했지요. '외로움도 오래 껴안고 뒹굴다 보면 애첩이 된다'고요^^ 쓸쓸병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조금은 외롭고 쓸쓸해야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되니까요. 인연의 소중함도, 벗에 대한 고마움도 그런 시간을 보낸 뒤에야 절실함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장갑 꼬옥 끼시고요. 늘 행복한 날 지으세요. 고맙습니다.
네 공감입니다. 때로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 삶의 소중한 시간을 진정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 혼자 있을 때가 더 좋았을 때가 많았습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을 때도 있었고... 하지만 이제는 혼자보다는 다른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그리면서 이렇게 글로나마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 오히려 제가 더 고마움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홀로 있을 때 명상하고, 함께 있을 때 대화를 나누는 삶이 멋진 삶이겠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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