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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생겼어요!

백승훈 2012. 11. 26. 오전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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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트!
어제는 고향의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중증의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내 얼굴, 내 이름만은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게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빗속으로 차를 달리며 평생을 사랑과 헌신으로 일관한 마더 테레사 수녀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마더 테리사 수녀는 \"사랑은  사람을 품위 있게 살게 하고, 품위 있게 죽게도 하는, 그런 신비한 것\"
이라고 했습니다.
 품위 있게 살기 위해, 혹은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사랑을 원한 것은 아니었으나  가만히 뒤돌아보니 언제나 사랑은 내가 사는 이유였습니다. 반생을 살도록  잠시도 내게서 떨어진 적 없는 그림자 같은 사랑,  그  사랑의 이름으로 항상 나를 설레게 하던 소중한 존재가 '애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애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굳이 사전적 해석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사랑의 대상은 무한대로 그 폭을 넓힐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세상의 모든 집은  그 누군가의 옛애인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고향의 뒷동산에 올라 저녁 연기 피어오르는 고향 마을의 지붕 낮은 집들을 내려다 보면 괜스레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합니다. 한때는 누군가의 가슴을 마구 설레게 했을 그 누군가의 옛애인의 집들을 하나 둘 헤아리다가 어딘가에서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저녁밥을 짓고 있을 옛애인의 따순 저녁을 떠올려보 보십시오.
따뜻하고 눈물 겨운 풍경 너머로 
조금은 쓸쓸한 저녁이 찾아올 것입니다.
 
사랑의 추억 한조각도 없이 어찌 세상에 달이 뜨고  별이 뜨겠습니까?

딱히 시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이라도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달이 뜨고 별이 뜨고 바람 불고 비 오는 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을 것입니다. 초가지붕 위의 눈 녹은 물이 고드름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도, 밤새 문풍지를 울리고 가는 북풍의 소란스러움마저 불쏘시개가 되어 그리움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까닭은 어딘가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인이 생겼어요.
언젠가 나즉하지만 또렷한 음성으로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본 적 있습니다.
그 눈빛이 얼마나 어여쁘고 당당해 보이던지요.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춥고 긴 겨울도 어느덧 봄쪽으로 기울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시로 편지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애인
 
 
        장석주


누가 지금
문 밖에서 울고 있는가.
인적 뜸한 산 언덕 외로운 묘비처럼
누가 지금
쓸쓸히 돌아서서 울고 있는가.
그대 꿈은
처음 만난 남자와
오누이처럼 늙어 한 세상 동행하는 것
작고 소박한 꿈이었는데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세상의 길들은 끝이 없어
한번 엇갈리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것
메마른 바위를 스쳐간
그대 고운 바람결
그대 울며 어디를 가고 있는가.
내 빈 가슴에 한 등 타오르는 추억만 걸어놓고
슬픈 날들과 기쁜 때를 지나서
어느 먼 산마을 보랏빛 저녁
외롭고 황홀한 불빛으로 켜지는가.

댓글 6개

이남훈 2012. 11. 26. 오후 04:32

참 가슴에 얹어 놓고 한동안 멍하게 하는 글을 읽네요. 남편은 늘 애인처럼 먼 별이였어요. 늘 함께 하지 못하고 어긋나는 길... 멍하니 돌아올 수 없는 길 바라봅니다.

백승훈 2012. 11. 26. 오후 07:40

누군가를 가슴에 담고 사랑하는 일, 그리고 그 누군가의 애인이 되는 일은 분명 설레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늘 아픔을 동반하고 오는 것이어서 그것을 수납하는데엔 얼마간의 결심을 필요로 합니다. 이남훈님의 애인처럼 먼 별이란 모순형용에 답글을 다는 일이 쉽지 않군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의 말씀처럼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니 그 또한 순간에 지나가리라'는 것입니다. 좋은 날 되십시오.

비꽃 2012. 11. 26. 오후 11:25

마음 안에 사랑을 품고 사랑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일지라도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일만큼 세상이 달리 보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이 아닐지라도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날씨는 추워도 마음만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백야 2012. 11. 27. 오전 04:47

백승훈님! 좋은글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애인... 참 따듯한 단어입니다. 설레이기도 하고 아프기 하고 그래서 눈물이 흐리기도 하고 그렇지만, 애인은 정다운 그림자입니다. 언제나 따라 다니는.. 백승훈... 내가 사랑하는 손자의 이름이 백승진이지요.. 승자로 이어지는.. 아무튼 감사합니다.

백승훈 2012. 11. 27. 오전 09:17

사랑을 품고 사는 일은 세상의 온도를 높이는 일입니다. 사랑은 때로는 깊은하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그 상처가 우리를 살게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요. 스스로를 품위 있게 살게 하는 사랑 가득한 겨울, 그리하여 마음밭이 따뜻한 겨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백승훈 2012. 11. 27. 오전 09:20

아, 백야님, 손자가 저와 같은 항렬이시군요. ^^ 이런 공간에서 만나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늘 좋은 날 되십시오.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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