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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며
백승훈 2012. 12. 01. 오전 10:35
3738
백승훈 2012. 12. 01. 오전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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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트!
마침내 12월의 첫날입니다.
새로 받은 이 한달을 어떻게 써야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이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익숙한 것들의 자장이 미치지 않는 아주 먼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뜬금없다 하실지 모르겠지만 지난 밤 인사동에서 비를 맞을 때 이미 마음 속엔 방랑의 바람결이 살아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낭송모꼬지에서 이생진 시인의 말씀을 들으며 성산포의 파도소리가 내 손목을 잡아 끌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덧 습관이 되어버린 날마다 편지를 쓰던 일을 잠시 미뤄두어야 하는 일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때로는 섭섭한 것도 아름다운 것으로 이해해 줄 그대임을 알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으렵니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김소연의 '마음사전' 中에서 -
늦은 밤, 외출에서 돌아와 김소연의 마음사전을 펼쳐 읽다가 나도도 모르게 밑줄을 그은 구절입니다.
'마음 경영이 이 생의 목표'라는 그녀의 말이 별똥별처럼 나를 관통할 때는 은빛 칼날에 베인 것처럼 환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한 자루의 감자를 썩혀 한 줌의 녹말을 얻듯이, 혹은 수많은 모래를 체에 받쳐 반짝이는 사금을 채취하듯 삶 속에서 캐어낸 마음의 결정들. 지천명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어둡기만 한 내 마음의 내면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마음을 읽는 일, 그리하여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이 생이 끝날 때까지 마음 경영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나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기는 할 것인가.
팔만대장경을 모두 태우면 마음 심(心)자 하나라고 했던 어느 선지식의 말이 장군죽비로 다가옵니다.
다만 생각하는 것은 이제라도 내 마음을 좀더 찬찬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눈뜬 장님으로 살았다는 뒤늦은 자각과 회한이 북풍처럼 몰아쳐 뼈를 시리게 합니다.
정작 마음에는 무지하면서 마음의 풍향계가 가리키는 곳만 바라보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늘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못한다고 불평을 했었는데,
그것이 내가 바라는 대로 오해해주지 않는 이들에 대한 허튼 욕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하거나, 누군가에게 이해받길 바라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다시 만나는 날, 꽃처럼 환한 얼굴로 만나지길 소망하며 김소연의 시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내 다섯 손가락으로 당신 손등을 꽉 감싸고
당신의 손바닥을 내 손바닥에 빈틈없이 맞붙이고
당신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와
봉합된 이 모양을
눈 떼지 않고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이 구겨진 길을 따라 걷는다
한 쌍의 다정한 말똥구리처럼
지구를 굴리며 걷는다 태양을 향하여 직진으로 걷는다
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지문 하나 남지 않게 닳고 닳도록
그러므로 말똥 같은 지구를
우주 벼랑 끝으로 굴려 떨어뜨리도록
당신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봉합된 채
이 조그만 지구에 그늘과 밤을 수천 번 드리울 때
우리 뒤에 깔린 반듯한 비단길을 아무도 걷지 말거라
벼랑 끝 노을이 우리 이마에 새겨주는 불립문자를
아무도 읽지 말거라
김소연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민음의 시 131
댓글 2개
비꽃
2012. 12. 01. 오후 07:45
저도 마음먹었을 때 어디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껏 살면서 여러 여건 때문에 그러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지난 달 저도 훌쩍 여행을 다녀왔었답니다. 전 섭섭한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여행 다녀오시고 어떤 것을 보시고 느끼셨는지 글로 풀어내시겠지요. 왠지 궁금해집니다. 12월을 시작하는 날에 떠나신 여행 잘 다녀오시고 소중한 시간 즐겁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날들 되시기를 바라며 담에 뵐 수 있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승훈
2012. 12. 07. 오후 01:17
12월의 여행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남도 답사 일번지라는 강진, 해남으로의 여행이었지요. 몇 번을 여행한 적 있었지만 이번처럼 여유롭고 꼼꼼하게 챙겨 여행하긴 처음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후일 글로 풀어낼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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